[기획취재] 협동과 공동체로 건강한 마을 만들기
2. 한국 의료생활협동조합의 시초, 경기도 안성의료생협

▲ 안성의료생협 본점의 모습.

의과대학생들의 주말진료소 활동이 시초

한국의 주민참여형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대부분은 출자금을 1구좌(1만원) 이상에서 총출자금의 20% 이내로 내면 가입할 수 있다. 조합원이 되면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주치의 사업을 통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으며, 비보험진료에 대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자원봉사와 건강 관련 소모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의료생협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곳은 경기도 안성시로, 1994년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 시작은 1987년부터다. 당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기독학생회 학생들이 경기도 안성국 고삼면 가유리에서 주말진료소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2주에 한 번 하는 진료소 활동의 한계로 큰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에 주말진료를 하던 의료인들이 의료기관을 설립해 지역주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1차 보건의료 활동을 전개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여기에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3년 5월 공동의원 추진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7월 24일 발기인대회, 8월 28일 추진위원회 결성식을 진행했다. 추진위에서는 지역주민이 만들어가는 의료기관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자본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채택했다.

이렇게 조합원 300여명과 출자금 1억 2000여만원으로 시작한 안성의료생협은 2001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의한 비영리법인으로 재 창립했다. 2008년 4월에는 지역사회의 공공의료 실현과 취약계층에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안성시 인구 10%를 조합원 만드는 게 목표

▲ 안성농민한의원 서정욱 원장이 진료를 하고 있다.
현재 안성의료생협은 조합원 4200세대와 출자금 8억 1000여만원, 직원 90여명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이다. 운영하는 기관은 안성농민의원ㆍ건강증진센터ㆍ안성농민한의원ㆍ생협치과의원ㆍ우리생협의원ㆍ재가장기요양기관이다. 우리생협의원ㆍ재가장기요양기관을 제외한 모든 기관들이 인지동 인지사거리 한 건물에 함께 있다. 최근 신도시가 들어선 공도지역에 올해 안에 서안성의원과 서안성한의원을 세울 계획이다.

현재 안성시의 인구는 19만명 정도. 안성의료생협의 조합원은 1만 4000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은 3~4년 안에 인구의 10%가 조합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성시의 의료기관은 안성의료생협 설립 당시 지방공사 의료원 1개소와 민간의료기관 15개소로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2000년 82개에서 2007년 132개, 2010년 138개로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요양시설과 복지기관도 늘어났다. 하지만 의료기관이나 노인요양시설, 복지기관은 주로 시내 권에 집중돼있어 면단위 노인과 저소득층이 이용하기에는 많이 불편하다. 이 때문에 보건지소 10개와 보건진료소 10개가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은 공공의료가 못하고 있던 방문 간호나 진료 서비스를 초창기부터 진행해왔다. 안성의료생협 김보라 전무는 “공공의료기관이 방문 진료는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방문 간호를 하다 의사의 왕진이 필요하면 안성의료생협으로 연락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안성의료생협은 지역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가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며 2007년 11.61%로 증가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가사ㆍ목욕 등의 간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이 운영하는 재가장기요양기관의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윤미숙(43)씨는 “다른 요양기관에서는 정해진 시간에만 어르신을 만나게 하는데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기관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재활의료나 간호 교육도 받고, 성희롱이나 혈압체크 방법 등 만나는 어르신들을 위한 전문성을 갖추도록 교육과 간담회를 진행해 좋다”고 말했다.

안성의료생협은 고혈압ㆍ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에 대한 투약, 합병증 관리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만성질환자 관리 프로그램은 정기적으로 투약상태를 확인해 전화하기, 집단ㆍ개별 교육, 가정방문, 관리수첩을 통한 자기 관리능력 배가, 교육용 책자와 팜플릿 제작 배포, 당뇨 시식회 등을 진행한다.

또한 ‘해바라기’라는 환자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뇌졸중으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일상생활능력을 유지ㆍ증진하도록 하고, 환자 간호로 지친 가족들에게 휴식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2007년부터는 관절염 환자를 위한 ‘타이치’체조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이 환자자조모임의 특징은 환자ㆍ의료인뿐 아니라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참여한다는 것이다.

환자 이동을 위한 차량봉사자와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봉사(미술치료, 식사준비, 이ㆍ미용, 활동보조 등)자들이 서비스 질과 효율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건축업을 하는 조합원을 중심으로 자원봉사팀을 구성해 ‘사랑의 집 고치기’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건강은 개인이 아닌 지역의 문제

▲ 안성의료생협 조합원들이 포크댄스 소모임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은 건강을 개인이 아닌 지역의 문제로 보며, 이를 위해 건강한 마을 만들기 활동도 활발히 진행한다. 개인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활습관ㆍ환경ㆍ제도ㆍ사회경제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하며,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건강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취지다.

그 일환으로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 늘어난다고 보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공동으로 실천해 건강한 생활을 하도록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소모임은 건강모임뿐만 아니라 취미 문화, 자원봉사활동, 자기개발을 위한 모임이 있는데, 소모임 9개에서 조합원 2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12년째 포크댄스모임을 하고 있는 조합원 송창호(63)씨는 “일본의 의료생협을 방문했을 때 포크댄스모임의 즐거운 공연 모습을 보고 우리도 해보자며 소모임을 만들었다”며 “조합원 10명이 함께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웃고 떠들면 정신도 몸도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안성의료생협은 정기적인 건강학교로 지역주민에게 올바른 건강ㆍ의료 정보를 제공해 스스로 건강관리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의료정책과 의료기관 이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이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기적인 강좌 외에 다양하게 진행되는 지역모임에서도 건강관련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메뉴’를 개발, 2009년에는 마을과 아파트를 찾아가 건강지역모임을 연 100회 가까이 열기도 했다.

▲ 이정찬 안성의료생협 이사장.
또한 건강박람회와 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도 열고 있다. 아울러 지역 조합원과 함께 원하는 마을 지도를 그리는 ‘꿈 지도 그리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도로 턱 없애기’, ‘화단 가꾸기’, ‘마을 축제’ 사업 등으로 하나씩 현실화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 이정찬 이사장은 “안성의료생협은 지역구 대의원이 120명이다. 이들이 각 지역에서 건강 모임을 진행하며 건강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역의 대의원과 이사들이 민주주의와 민주적인 의사결정 등을 배우고 다른 조합이나 단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안성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생협은 정신ㆍ육체ㆍ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많이 양성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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