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호 시의원, “일제 창지개명 여전한데 시와 시교육청은 뭐하나”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인천 행정구역과 지명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이 인천시의회에서 다시 나왔다.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 맞아 올해 초 시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일제 잔재 청산을 주창했던 신은호(민주, 부평1) 의원은 올해 마지막 본회의 때 신상발언으로 일제 잔재 청산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신 의원은 “연 초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제언을 드린바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친일잔재 청산에 대한 시와 시교육청의 행위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생활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반드시 정책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신은호 시의원

신 의원은 “일제는 조선의 민족혼과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과 동화를 위해 창씨개명을 추진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개조했다”며 “행정구역 명칭과 함께 산지, 하천, 평야 등의 이름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담긴 중요한 장소도 지명을 변조하는 등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단행했다”겨 청산을 주장했다.

신 의원은 “일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말살하기 위하여 산봉우리 이름 중 왕(王)이던 지명을 왕(旺)이나 황(皇)으로 변경해 천왕봉(天王峰)을 천황봉(天皇峰)으로, 설악산 토왕성(土王城) 폭포를 토왕성(土旺城) 폭포로 왜곡했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또 “일부가 마을을 부락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부락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천민집단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일제가 상하 관계를 설정하고 우리 민족을 천민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행위였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부연했다.

일제 강점기 인천의 지명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고유의 땅 이름에 일본식 행정단위 명칭에 정(町)을 붙이거나 일본에서 흔히 사용해 오던 지명들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문학면과 남동면을 살펴보면 일본식으로 바뀐 지명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일제는 문학면에서 ‘문학리’를 ‘문학정’(文鶴町)’으로, ‘연수리’를 ‘연수정’(延壽町)으로, ‘동춘리’를 ‘동춘정’(東春町) 등으로 변경했다.

남동면에서 ‘만수리’를 ‘만수정’(萬壽町)으로, ‘장수리’를 ‘장수정’(長壽町)으로, ‘논현리’를 ‘논현정’(論峴町) 등으로 변경했다.

일제는 또 지명을 만들 때 조선시대 동리(洞里) 두 개 이상을 합쳐 하나의 동리를 만드는 방식을 널리 사용했는데, 이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미추홀구 도화동은 도마리(道馬里)의 ‘도’와 화동(禾洞)의 ‘화’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고, 남동구 간석동은 간촌리(間村里)와 석암리(石岩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남동구의 기원이 된 남동면(南洞面)은 조선시대 남촌면(南村面)과 조동면(鳥洞面)을 합쳐 생긴 이름이다.

이밖에도 만석동(萬石洞)ㆍ선화동(仙花洞)ㆍ경동(京洞)ㆍ도원동(桃源洞) 등이 일제 잔재인데, 우리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가 군함침몰 후 심어놓은 지명 ‘송도’ 대체 언제까지

가장 대표적인 잔재가 송도국제도시의 송도 지명이다. 송도(松島)는 ‘소나무 많은 섬’으로 잘못 알려졌는데, 인천에 송도(松島)란 이름의 섬이 없었다. 실은 일제 군함 이름에서 따왔다.

송도는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인 미야기현(宮城縣) 마츠시마(松島)를 뜻한다. 일본은 이 3대 절경을 기리는 뜻에서 군함 ‘삼경함(三景艦)’을 취역시켰고, 이중 송도함 즉 마츠시마함은 조선에서 치러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했다.

송도함은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던 4000톤 급 순양함으로 선내 폭발로 침몰한 지 28년이 되던 1936년 인천부 문학면 옥련리의 정명(町名)으로 부활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신은호 의원은 “육지를 소나무섬이라 칭한 것은 군국주의 일본이 전승을 알리는 한편 위세를 암암리에 과시하고자 한 것”이라며 “정명(町名)에 군함 이름을 14개 차용한 것을 보면, 일제가 얼마나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을 말살하려고 했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광복 직후 인천시 당국은 정명개정위원회를 구성해 ‘정(町)’을 ‘동(洞)’으로 고치고, ‘정목(町目)’을 ‘가(街)’로 개칭하기로 결정하고, 1946년 1월 1일 시행했다.

하지만 인천시 연수구지명위원회는 송도가 송도유원지, 송도국제도시 등으로 시민들에게 익숙하고 굳어진 이름이며, 주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송도동으로 확정했다.

송도만 일제 잔재가 아니다. 인천 중구ㆍ동구 등도 일제 잔재에 해당한다. 인천에 방위 개념이 도입된 시기는 1968년으로 동구ㆍ중구ㆍ남구(현재 미추홀구ㆍ남동구ㆍ연수구)와 북구(현재 부평구ㆍ계양구ㆍ서구) 등 4개 구가 설치됐다. 당시 인천시청이 소재한 중구 신포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

이 방위 개념의 명칭은 일본 행정구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천연구원이 발간한 ‘인천시 행정구역 명칭 정비 방향’을 보면, 일본 도도부현(都道府縣, 한국의 광역시ㆍ도급 행정단위) 산하 자치구는 대부분 방위 명칭을 차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중구가 6곳, 동구 10곳, 서구 12곳, 남구 14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도 중구 5곳, 동구 6곳, 서구 5곳, 남구 5곳, 북구 4곳이 있다.

신은호 의원은 “행동해야 변하고, 변해야 바뀐다. 정부와 인천시,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청이 그동안 왜곡된 지명을 청산하는 일에 손 놓은 것에 반성해야 한다. 아직도 이 땅에 일본제가 박아 놓은 용어와 지명의 쇠말뚝이 녹슨 채 존재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뽑아내야 한다”며 “지명뿐만 아니라 사무관, 서기관 등 일제가 부여한 공직 용어도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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