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는 섬과 무관 ··· 인천연구원, 비판 일자 서둘러 삭제
연구원이 인용한 ‘2002년 인천시사편찬위원회’도 엉터리
지명에 일제 잔재 남아 있는 한 ‘엉터리 지명 정설’ 계속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인천 지명에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가 이번엔 시책 연구기관의 ‘엉터리 정설’ 발표로 확산됐다. ‘소나무가 많아’ 송도가 됐다는 엉터리 얘기다.

인천연구원은 6일 뉴스레터에 ‘재미있는 인천 지명 이야기’를 발송하면서 송도 지명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나무가 무성하게 많은 섬’이라고 소개했다.

인천연구원이 발송한 뉴스레터 ‘송도 지명 해설’.

‘송도’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소나무가 무성하게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연수구의 송도 역시 일제강점기인 1937년 수인선(水仁線) 기차가 개통할 때 생겼다. 일본인들이 소나무가 많은 이곳에 수인선이 지나게 되자 역 이름을 송도역이라고 붙였던 것인데, 이는 멀리서 볼 때 이곳이 ‘소나무가 우거진 섬’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엉터리 해설이다. 연수구 송도(松島) 지명은 인천 지명에 남아 있는 일제의 대표적 잔재다.

‘송도’가 지명으로 쓰인 계기는 일제가 1930년대 후반에 ‘송도유원지’를 만들면서부터라는 게 정설인데, 이는 일본제국주의 군함에서 비롯했다. 송도는 섬도 아녔을 뿐더러 ‘소나무섬’이라는 뜻의 송도는 실제로 섬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도는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인 미야기현(宮城縣) 마츠시마(松島)를 뜻한다. 일본은 이 3대 절경을 기리는 뜻에서 군함 ‘삼경함(三景艦)’을 취역시켰다. 이중 송도함 즉, 마츠시마함은 조선에서 치러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했다.

송도는 일제가 1930년대 후반에 ‘송도유원지’를 만들면서 사용했는데, 인천에만 송도가 있는 게 아니다. 의정부와 부산에도 같은 지명이 있고, 학계는 이 명칭들을 모두 일본 군함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인천을 대표하는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인천연구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인천연구원은 비판이 제기되자 뉴스레터로 보낸 지명 9개 중 송도를 뺐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엉터리 정설’ 확산 원인을 인천시가 제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천연구원은 시가 2002년 발행한 ‘인천시사(仁川市史)’에서 인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2002년 ‘인천시사’를 편찬한,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엉터리로 편찬했다는 얘기다.

중구ㆍ동구 등 방위개념 행정구역도 일본식

송도만 일제 잔재가 아니다. 인천 중구ㆍ동구 등도 일제 잔재에 해당한다. 인천에 방위 개념이 도입된 시기는 1968년으로 동구ㆍ중구ㆍ남구(현재 미추홀구ㆍ남동구ㆍ연수구)와 북구(현재 부평구ㆍ계양구ㆍ서구) 등 4개 구가 설치됐다. 당시 인천시청이 소재한 중구 신포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

이 방위 개념의 명칭은 일본 행정구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천연구원이 발간한 ‘인천시 행정구역 명칭 정비 방향’을 보면, 일본 도도부현(都道府縣, 한국의 광역시ㆍ도급 행정단위) 산하 자치구는 대부분 방위 명칭을 차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중구가 6곳, 동구 10곳, 서구 12곳, 남구 14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도 중구 5곳, 동구 6곳, 서구 5곳, 남구 5곳, 북구 4곳이 있다.

방위 개념의 행정구역 명칭이 일본식이라는 문제 외에도 해당 지역 역사ㆍ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명칭이라는 한계가 있다. 동서남북에서 지역 정체성을 찾기 어렵고, 인천의 경우 방위에도 맞지 않는다.

이중 남구는 지난해 미추홀구로 바뀌었다. 2015년 행정구 명칭 변경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서구의 경우 서곶구 37%, 연희구 33%, 검단구 16%로 나타났다. 중구는 제물포구가 6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동구의 경우 화도구가 49%로 가장 높은 지지를, 남동(南洞)구의 경우 구월구로 바꾸자는 의견이 46%로 우세했다.

지명에 일제 잔재는 동 명칭에도 남아 있다. 일본인들이 새로 지명을 만들 때 조선시대 동리(洞里) 두 개 이상을 합쳐 하나의 동리를 만드는 방식을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추홀구 도화동은 도마리(道馬里)의 ‘도’와 화동(禾洞)의 ‘화’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고, 남동구 간석동은 간촌리(間村里)와 석암리(石岩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남동구의 기원이 된 남동면(南洞面)은 조선시대 남촌면(南村面)과 조동면(鳥洞面)을 합쳐 생긴 이름이다.

이밖에도 만석동(萬石洞)ㆍ선화동(仙花洞)ㆍ경동(京洞)ㆍ도원동(桃源洞) 등이 일제 잔재인데, 우리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부천시 또한 마찬가지다. 부천군은 현재 중구ㆍ동구ㆍ강화군 일대를 제외한 인천시 대부분과 현재 부천시 전체, 시흥시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관청이다. 부천군은 일제가 1914년 3월 1일 부평군의 ‘부’와 인천군의 ‘천’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한 ‘엉터리 지명 정설’은 계속 확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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