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일본식 ‘동서남북’ 방위개념 자치구 명칭 바꾼다

동구와 중구, 남구와 서구의 명칭이 바뀔 예정이다. 우선 남구와 동구, 서구가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인천시와 해당 자치구는 내년 1월 ‘자치구 명칭 변경 실무지원단’을 구성해 토론회와 주민설명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7월에 행정자치부에 명칭 변경을 건의할 예정이다.

남구와 동구, 서구, 중구는 방위 개념이지만 동구와 중구는 인천 서쪽에 있고, 서구는 인천의 북쪽에 해당한다. 남구는 연수구와 남동구보다 북쪽에 있다.

방위 개념을 도입한 자치구 명칭이 현재 방위에 맡지 않을뿐더러, 일제 잔재라는 비판과 함께 지역 정체성이 반영되지 않은 명칭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시와 해당 자치구들은 ‘인천 가치 재창조와 지역 정체성 찾기’ 정책 일환으로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 인천시와 자치구 3개는 지난 14일 자치구 명칭 변경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사진 왼쪽부터 강범석 서구청장, 이흥수 동구청장, 유정복 인천시장, 박우섭 남구청장.<사진제공ㆍ인천시>

50년간 일본식 방위개념 따른 행정구역 명칭

인천에 방위 개념이 도입된 시기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인천은 중구, 동구, 남구, 북구 등, 4개의 구가 설치됐다. 당시 인천시청이 소재한 중구 신포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

인천시는 1981년 경기도에서 분리돼 인천직할시로 승격됐다. 시청은 1985년 지금의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했다. 현재 시청을 기준으로 하면 방위가 전혀 맞지 않는다.

인천에 인구가 늘면서 1988년 북구에서 서구가 갈라져 나왔고, 같은 해 남구에서 남동구가 탄생했다. 그리고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격한 1995년에는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뉘었고, 같은 해 남구에서 다시 연수구가 탄생했다.

이 방위 개념의 명칭은 일본 행정구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천발전연구원이 발간한 ‘인천광역시 행정구역 명칭 정비 방향’을 보면, 일본 도도부현(都道府縣, 한국의 광역시ㆍ도급 행정단위) 산하 자치구는 대부분 방위 명칭을 차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중구가 6곳, 동구가 10곳, 서구가 12곳, 남구가 14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도 중구 5곳, 동구 6곳, 서구 5곳, 남구 5곳, 북구 4곳이 있다.

방위 개념의 행정구역 명칭이 일본식이라는 문제 외에도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명칭이라는 한계가 있다. 동서남북에서 지역 정체성을 찾기 어렵고, 인천의 경우 방위에도 맞지 않는다.

이에, 해당 지역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담은 명칭으로 변경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제기 됐고, 또 실제로 바꿔야한다는 여론도 높게 나타났다.

인천발전연구원이 지난 7월 공무원과 단체,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구, 동구, 남구, 서구, 남동구에선 현재 명칭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부적합과 매우 부적합이라고 답한 의견이 중구 69.8%, 동구 79.1%, 서구 76.7%를 기록했다. 반면 명칭에 방위 개념이 없는 부평구와 계양구, 연수구, 강화군, 옹진군 등에서는 적합 의견이 훨씬 많았다.

‘문학, 미추홀, 화도, 제물포, 연희’ 대안 명칭 부각

방위 개념의 대안 명칭으로 역사성과 지역성을 고려한 다양한 명칭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내년에 명칭을 변경하기로 한 동구의 경우 설문조사 결과 화도구가 49%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화도구는 과거 화도라는 옛 지명을 회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구는 지금도 옛 명칭을 딴 ‘화도진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송림구와 송현구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역시 내년에 바꾸기로 한 남구의 경우 문학구가 58% 지지를 받았다. 문학구는 과거 문학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는 점과, 비류가 문학산에 비류백제로 일컫는 미추홀국을 세웠다는 상징성을 강조한 이름이다. 26%를 받은 미추홀구 역시 비류백제와 관련이 깊다.

서구의 경우 서곶구 37%, 연희구 33%, 검단구 16%로 나타났다. 중구는 제물포구가 6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남동(南洞)구의 경우 구월구로 바꾸자는 의견이 46%로 우세했다.

명칭이 바뀌려면 시가 행자부에 건의한 뒤, 행자부가 가칭 ‘인천시 ○○구 등 구의 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해야한다. 법이 공표되면 본격적인 명칭 변경 행정절차가 시작된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 뒤에도 여전히 남는 ‘일제 잔재’

시는 인천 가치 재창조와 지역 정체성 확보를 위해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치구 명칭만 바꾼다고 되는 것일까? 이참에 인천 곳곳에 숨어있는 ‘일본식 지명’과 방위 개념이 맞지 않는 경인선 전철역 이름도 바꿔야하지 않을까.

인천의 대표적 일본식 지명은 송도(松島)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는 송도국제도시로 일컬어지는 국내 경제자유구역을 대표하는 도시다. 그러나 ‘소나무섬’이라는 뜻의 송도는 실제로 인천 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도는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인 미야기현(宮城縣) 마츠시마(松島)다. 일본은 이 3대 절경을 기리는 뜻에서 군함 ‘삼경함(三景艦)’을 취역시켰고, 이중 송도함 즉, 마츠시마함은 조선에서 치러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다.

송도가 지명으로 쓰인 계기는 일제가 1930년대 후반에 ‘송도유원지’를 만들면서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송도유원지는 일본인들의 최고 휴양지였다. 즉, 일제의 유산이 송도국제도시라는 경제자유구역의 첫 머리말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명칭에서 일제 잔재는 송도뿐만이 아니다. 김락기 강화고려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인들이 새로 지명을 만들 때 조선시대 동리(洞里) 두 개 이상을 합쳐 하나의 동리를 만드는 방식을 널리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남구 도화동인 도화리는 도마리(道馬里)의 ‘도’와 화동(禾洞)의 ‘화’를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고, 남동구 간석동은 간촌리(間村里)와 석암리(石岩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남동구의 기원이 된 남동면(南洞面)은 조선시대 남촌면(南村面)과 조동면(鳥洞面)을 합쳐 생긴 이름이다.

부천시 또한 마찬가지다. 부천군은 현재 중구ㆍ동구ㆍ강화군 일대를 제외한 인천시 대부분과 현재 부천시 전체, 시흥시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관청이다. 부천군은 일제가 1914년 3월 1일 부평군의 ‘부’와 인천군의 ‘천’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밖에도 만석동(萬石洞), 선화동(仙花洞), 경동(京洞), 도원동(桃源洞) 등이 모두 일제의 유산인데, 우리는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유정복 시장은 일본식 지명을 변경하는 문제는 차후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인선 전철역 이름도 현재와 맞지 않다. ‘제물포역에 동인천고등학교가 있고, 동인천역에 제물포고교가 있다’는 농담은 불일치의 전형이다. 경인선 동인천역은 인천의 맨 서쪽에 있으며, 제물포역에는 포구가 없다. 이 또한 인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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