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신의 행복배움학교 이야기 ⑤

▲ 백화현 교사의 ‘독서 동아리 잘하는 법’ 강연.
‘포커페이스’ ‘덕서’ ‘Book Talk’ ‘MSG조미료’ ‘깨우침 독서’ ‘책과 함께 라면’ ‘콩가루’ ‘도널드 덕’ ‘소설동아리’ ‘독서혁명’ ‘이 구역 책벌레는 나야’ ‘비타파워에너지’

이게 뭘까? 바로 우리 학교의 자율 독서동아리 이름이다. 동아리별로 함께하고 싶은 친구 4~7명이 모여 책 읽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올해 초 선학중학교가 ‘행복배움학교’(=인천형 혁신학교)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위해 어떤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논의했는데, 학생 자율 동아리 활성화를 주요 사업의 하나로 정했다. 이는 학교가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해주면 진로와 꿈에 대한 고민이 넓어지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행복한 공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학생들에게 자율 동아리 운영 방안을 홍보하고 희망서를 받았다. 밴드ㆍ난타ㆍ기타ㆍ연극ㆍ수학ㆍ마을벽화그리기ㆍ독서동아리(12개) 등, 자율 동아리 총19개가 만들어졌다. 그중 독서 동아리들은 교육혁신부와 국어과 교사들 그리고 인천학교도서관 담당교사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석 교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숨은 노력으로 탄생했다.

독서는 어휘력을 향상시키고, 배경지식을 넓혀 학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한 많은 지식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을 향상시키며, 깊고 넓은 사고력을 길러준다. 정보 연결로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도 향상시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내면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한다.

이런 변화와 성장이 있는 학생들을 행복배움학교에서 더 많이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수없이 많이 들어온 학생들이지만,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책 읽기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하고 있는 고교 다양화 정책은 특수목적고교의 비중을 30%로 만들어 중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다양한 고교를 선택, 진학하게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시작부터 걱정했던 것처럼 중학교를 입시경쟁교육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일반고교에서 근무하다 작년에 중학교로 오면서 3학년 담임을 맡아 생활해보니 대학 수시 전형 준비를 위한 스펙 만들기 경쟁이 중학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신 성적 관리와 학교에서의 온갖 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입시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대학 입시 뺨치는 특목고 입시를 위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독서동아리를 하자는 이야기가 학생들을 망설이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율 독서동아리를 모집하며 우선 동아리의 취지와 목적 홍보가 필요했기에 다양한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4월 중순, 학교도서관 활동을 꾸준히 해왔던 이성희 인천시교육청의 장학관을 초청해 특강을 만들었다. 1학년 전체 학생 76명과 2~3학년 희망자를 모아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3시간 동안 강연하고, 독서동아리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학교차원의 독서동아리 지원 방안을 만들어 전교생에게 안내하고 수업시간을 활용해 적극 홍보했다.

“동서양의 고전 문학과 철학ㆍ종교ㆍ신화ㆍ역사ㆍ정치ㆍ경제ㆍ사회ㆍ과학ㆍ환경 등 여러 영역의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글을 쓰며 토론하는 과정으로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히면 학과 공부도 더불어 잘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로 독서동아리를 권유했다. 한 달간 노력한 결과였는지, 지금 운영되고 있는 자율 독서동아리 12개가 만들어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해 고맙고 다행이다.

하지만, 인천시의회의 행복배움학교 발목 잡기로 예산이 전무한 상태에서 동아리 지원을 위한 예산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 학교도서관을 담당하는 김영석 교사의 ‘책의 수도 인천’ 사업 응모였다. 다행히 예산 500만원을 확보해 독서동아리들을 지원할 수 있었다.

▲ 이철환 작가 초청 강연 후 책은 선물 받은 학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
자발적으로 조직된 동아리지만 막상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활동해야할지 몰라 하는 학생이 많아, 구체적인 활동방법을 안내할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학교도서관 활성화와 독서교육운동에 힘을 쏟고 있는 백화현 교사를 초청해 ‘독서동아리 잘하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독서동아리 학생 60여명을 대상으로 방과후 도서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했다.

독서모임을 왜 하는지, 책모임을 잘 하는 방법,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독서활동일지 작성법과 독후감 쓰기, 독후감 발표 후 주제 토론하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강연 후 동아리별로 이름을 정하고 구체적인 활동 시기와 방법을 정한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은 1주일에 1시간 이상 동아리별로 함께 모여 독서활동 시간을 갖고, 활동한 내용을 독서활동 기록장에 자유롭게 적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도서관에 보관함을 만들어 독서활동 기록장을 언제든 자유롭게 작성해 보관하게 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인 지난 7월 10일에는 1박 2일 밤샘 독서캠프를 학교도서관에서 진행했다. 사전에 전체 모임에서 밤샘 독서캠프 운영을 안내했고, 가정통신문으로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신청서를 받았다. 독서동아리 12개 중 11개, 학생 54명이 참가했다.

고두한 혁신부장 교사가 진행한 공동체놀이로 마당을 열었다. 오후 5시 학교 강당에 모여 미니올림픽 게임을 시작으로 다른 동아리 회원들과 얼굴을 익히고 팀별 단합 시간도 가졌다. 빨대를 이용한 멀리 던지기,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풍선 멀리 날리기, 풍선 떨어뜨리지 않기, 종이컵 탑 쌓기 등도 진행했다. 사전에 신청을 받아 주문한 중화요리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 작가의 강연을 진행했다.

이 작가는 강연에서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미래는 다르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어 독서를 하면 생기는 힘 세 가지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힘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꼽아 설명했다.

강연 후 작가와의 질의응답으로 궁금한 것도 해결하고, 학생 15명은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에서만 보던 작가를 직접 만나 강연을 듣고, 함께 사진도 찍고, 책에 서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뿌듯함이 묻어났다.

강연 후엔 책을 주제로 한 부채 만들기를 진행했다. 우리 학교 방지현 미술교사의 설명으로 색연필과 파스텔 등을 이용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각자의 부채를 만들었다. 먼저 책을 읽으면서 감명 받았던 내용이나 문장을 생각하게 한 후 그 내용을 부채에 담아서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다. 동아리별로 작품을 발표할 때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학생들에게서 느껴졌다.

부채 만들기 작업을 마친 후 모둠별로 그림책을 한 권씩 선정해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약 1시간 정도의 독서 후에는 발표하는 시간을 진행했다. 책을 선정한 이유, 의미 있었던 문장이나 내용, 작가의 의도와 느낀 점을 간단한 문장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 한 학생이 책을 주제로 한 부채를 만들어 선보였다.
밤 11시가 되자,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학생들에게 간식으로 준 치킨은 인기 폭발이었다. 자정부턴 영화를 상영했다. 영화 감상 중 늦게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에 하나 둘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새벽 2시께 남학생들은 2층 도서관에서, 여학생들은 3층 평생학습실에서 각자 준비해 온 침낭과 돗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운동장에 모여 체조를 하고 학교 앞 승기천을 산책한 후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동아리별로 여름방학과 2학기 활동계획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독서캠프를 마치며 느낀 소감문을 작성했다. 열대야에 힘든 하룻밤을 보냈지만 동아리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독서동아리에 대한 자부심도 느낀 보람된 시간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학생들이 여름방학 전 주말에도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겠다며 도서관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해왔다. 주말에 학교에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독서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워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고 있다. 글을 쓰는 오늘도 여름방학 중이지만, 두 개 동아리 학생들이 나와서 책을 읽고 있다.
덥다고 아우성치는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줬더니 행복해한다. 독서동아리 학생들을 시작으로 앞으로 우리 학교 모든 학생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학교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더위에도 책을 읽는 학생들의 미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미래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 학생들이 만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으로 더위를 잠시 잊고 오늘도 행복배움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 성기신 교사는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된 선학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복배움학교 이야기는 월 1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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