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신의 행복배움학교 이야기 ①

며칠 전 단비가 내렸다. 언론이 연일 공개한, 바닥을 훤히 드러낸 소양호의 인공위성 사진에서 가뭄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뉴스를 접하고 문득 어린 시절 농촌 생활이 떠올랐다. 봄철 새싹이 제법 오르고 야산 나무들도 연두색으로 조금씩 물들어갈 무렵, 뻐꾸기가 울었다. 그 소리는 본격적인 농번기임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런데 뻐꾸기가 울면 한결같이 비가 오지 않았다.

겨울을 이겨낸 보리 싹도, 흙을 비집고 올라온 감자 싹도 말라가고, 모내기를 해야 하는 논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한해 농사의 성패가 갈리는 중요한 때인데, 어른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달갑지 않은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늘만 바라보던 그때 찾아온 봄비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며칠 전 내린 봄비가 더 반가웠던 건 어린 시절 추억 덕분이리라.

인천교육에도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혁신학교’다. 지난달 2일부터 ‘행복배움학교’라는 이름의 인천형 혁신학교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인천시교육청은 인천형 혁신학교로 초등학교 6곳과 중학교 4곳을 지정했다. 단비를 맞이한 농부의 마음과 같을까? 혁신학교를 갈망한 많은 사람에게 정말 신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대학 진학률 83.8%로 2위 미국의 64%와는 비교가 안 되는 압도적 1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읽기ㆍ수학 1~2위와 과학 2~4위, 교사 평가 상위 5%. 그게 우리나라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린이ㆍ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최하위,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업능력 최하위, 교사의 자기 효능감 최하위를 비롯해 청소년 자살사망률 세계 1위인 나라라는 오명 또한 지니고 있다. 무한 입시경쟁 교육 속에서 학업에 흥미를 잃고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학업스트레스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이 늘어나는가 하면, 마음의 상처와 고통으로 명예퇴직을 희망하는 교사가 급증하고 있다.

학생도 교사도 행복하지 않은 곳이 돼버린 학교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6년 전에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인천은 다른 지역보다 더 오래 기다렸기에, 많은 사람이 단비처럼 반갑게 느꼈을 것이다.
 

▲ 선학중학교 학생들이 수업 전 환호하고 있다. ㄷ자로 배치된 책상이 눈길을 끈다.

내가 올해 전입한 선학중학교(연수구 선학동)는 시교육청이 지정한 ‘행복배움학교’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우려 속에 한 달을 보냈다. 새 학기, 학생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며 “혁신학교에서 여러분과 생활하게 돼 정말 반갑습니다”라고 하자, 학생들이 물었다. “선생님, 혁신학교가 뭐예요”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예요?”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우리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으로 학교 변화를 꿈꾸는 교사들이 모여 혁신학교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학교다. 나는 학생들에게 “학생 단 한 명도 배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질 높은 배움이 이뤄지는 학교다”라고, 내가 생각하는 혁신학교를 이야기했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도 수업을 바꿔 모두 행복한 혁신학교를 만들어보자”고 덧붙였다.

‘배움의 공동체’는 일본의 사토 마나부 교수가 주창해 1998년 후쿠오카 하마노고 소학교를 시작으로 현재 일본 공립학교의 약 20%가 실시하고 있는 21세기형 학교의 비전이다. 우리나라도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하는 학교가 300개를 넘었고, 전국 34개 지역에서 연구회가 운영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 회원 약 600명이 매달 석남중학교와 선학중학교에서 회의를 열고 수업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에 많은 교사가 참여하는 이유는 첫째, ‘배움의 공동체’ 만들기는 학교 현장 교사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밑으로부터의 학교 개혁이라는 점이다. 교사들의 자율 의지로 수업을 바꿔 학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호응을 얻고 있다. 둘째, 교사가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에 중심을 둔 수업을 학교 개혁의 중심에 두고 있다. 셋째, 동료 교사로부터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21세기는 창의적이면서도 협동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 기업에서도 팀 단위로 일한다. 인재 채용에서도 개인의 능력보다는 얼마나 협동할 줄 아느냐가 더 중요한 잣대가 됐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은 네 명이 한 모둠이 돼 서로 묻고 답하며 협력하고 표현하며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사는 학생들의 모둠 활동에 귀 기울이고, 문제 해결에 어려움 느낄 때는 되돌리기와 연결 짓기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학생들이 수업 속에서 창의력과 서로 협력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학교도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책상을 ‘ㄷ’자로 배치하고 모둠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해 말을 잘 하지 않는 학생이 있고, 마주 보고 앉은 친구와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연신 웃고 떠드는 학생들도 있어, 교실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말되, 멈추지 않으며 조금씩 수업을 바꾸고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동료 교사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잠자는 학생을 일으키고, 학생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이제 막 씨앗을 뿌린 혁신학교에서 학생들과 좌충우돌하며 만들어갈 ‘행복배움학교’ 이야기를 앞으로 이 지면에서 나누고자한다.

※ 성기신 교사는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된 선학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복배움학교’ 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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