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게을리 하고, 기존시설에서 ‘단물’ 뽑을 대로 뽑으려는 것”

경상용차 단종 배경, 알려진 사실과 달라

지엠(GM)이 쉐보레 브랜드를 2015년 말까지 유럽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지엠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지난 12월 5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같이 밝혔다.

지엠은 향후 2년간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판매를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내수시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이는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쉐보레 차량이 유럽에서 잃은 물량 만큼을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 그리고 내수 시장에서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발표 후, 의문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내수 시장의 경우 ‘라인업’이 중요한데, 국민 상용차로 인기를 끌었던 다마스와 라보 단종 계획이 당초 알려진 것과 다른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다마스와 라보는 누적 판매량 30만대에 달하는 국내 최장수 모델 중 하나다. 퀵서비스ㆍ음식 배달ㆍ식자재 납품ㆍ꽃 배달․전통시장 등 다방면에서 중소자영업자들에게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국지엠은 지난 8월 한국정부의 환경규제 기준이 높아져 다마스와 라보를 올해 말까지만 생산하고 내년부터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엘피지(LPG) 차량인 두 차량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강화되는 배출가스와 차량안전 기준에 따라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단종 소식은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 가을 자동차산업 뉴스의 이슈로 등장했다.

다마스와 라보에 적용되는 환경ㆍ차량안전 기준은 크게 네 가지로 이중 ‘LPG KOBD’와 ‘Head Restraint’는 2014년 1월과 3월에 각각 적용되고, ‘TPMS(tire pressure monitoring system)’와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는 2015년 1월부터 적용된다고 했다.

‘LPG KOBD’는 엘피지 자동차가 배출가스자기진단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Head Restraint’는 개선형 머리지지대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선형 머리지지대는 자동차 시트 상단 머리지지대가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넘어 앞뒤로도 움직일 수 있어야한다.

한국지엠은 이 조건 두 가지를 개선하는 데 2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TPMS는 타이어 공기압 경고 장치다. 타이이 공기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일컫는다. 한국지엠은 이 기술 개발에 2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ESC’는 자동차 안전성제어장치다. 자동차가 곡선구간을 주행할 때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이때 조향장치가 자동으로 바퀴를 안으로 감아주게 함으로써 원심력을 줄이고 차선을 이탈하지 않게 해준다. 한국지엠은 차체 구조상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환경부, “환경규제 대응비용이 단종 원인 아니다”

▲ 다마스와 라보(왼쪽부터)
한국지엠은 해당 차종이 서민 생계형 차량임을 강조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규제 유예를 요청했으나, 승인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단종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1월 27일 환경부는 보도 자료를 내 한국지엠이 발표한 ‘정부규제에 의해 단종하게 됐다’는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환경부는 쟁점이었던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 의무화와 관련해 “일정기간 규제 완화와 경상용차 관리보호 대책 요청 등에 관계부처(=국토교통부ㆍ환경부)와 자동차 제작사 간 완료된 사항”이라고 한 뒤, “2014년부터 의무화가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 개발 기간(=약 2~3년) 동안 장치 부착을 추가 유예했다”며 유예기간 이후에는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를 부착한 차종을 생산할 것을 주문했다.

심지어 환경부는 “환경규제 대응비용은 단종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보인다”며 “안전규제 대응에 따른 기술개발 비용은 190억원으로 추정되나,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 신규 개발비는 20억~30억원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지엠이 사실상 다마스와 라보를 생산하지 않기로 내부 결정을 내린 뒤, 정부의 규제를 단종의 핑계로 삼았다고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이 같은 의혹은, 환경부가 2009년 7월 ‘2014년 의무화’를 공지해 자동차 제작사에 미리 충분한 준비기간을 줬고, 당초 2006년부터 의무화하려했으나 기술 개발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2014년 의무화’로 늦췄다고 발표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지엠이 두차종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를 게을리 하거나 포기한 셈이다.

지엠이 유럽에서 쉐보레를 철수하기로 한 뒤 내수 시장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개발비용 20억~30억원 투자가 어려워 다마스와 라보 생산을 중단한 것이라,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지엠의 발표를 더욱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초 한국지엠은 두 차종의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었지만, 중소자영업자들이 단종을 막아달라고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국토부와 환경부가 이를 유예해준 셈이다.

한국지엠의 속뜻은 따로 있다?

정부는 유예를 해주는 대신 환경ㆍ차량안전 기준 충족을 위한 회사의 신규 투자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국지엠은 유예기간 동안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와 개선형 머리지지대, 타이어 공기압경고장치(TPMS), 자동차 안정성제어장치(ESC)를 도입해야한다.

그러나 한국지엠이 여기에 투자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네 가지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발기간 2년여와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하다. 업계에선 대체로 1000억원 대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두 차종은 900만~1000만원 대에 출시되고 있고, 연간 평균 1만 4000대가 팔린다. 그렇다면 연간 매출액이 약 1400억원 규모인데, 투자 대비 발생이익이 있을 것인가는 ‘환경부로부터 공식 입장을 듣고 난 후 계산이 가능하다’는 게 한국지엠의 입장이다.

이에 관련해 한국지엠 홍보실은 “환경부가 그런 발표를 했더라도, 우리는 아직 환경부로부터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 받지 못했다”며 “유예기간이 언제까지이고, 항목마다 구체적인 조건이 어떤 것인지 현재까지 모른다. 환경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받아야 투자 기간, 투자 대비 이익 등의 계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차량 딜러와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다마스와 라보 단종 사태에는 한국지엠의 다른 속내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마스와 라보를 생산하는 곳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이다. 창원공장에는 생산라인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스파크(=옛 마티즈) 생산라인이고 다른 하나는 다마스와 라보, 마티즈(=스파크 직전 모델)를 생산한다. 한국지엠은 구형 마티즈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창원공장의 스파크 생산량은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스파크의 인기가 높다. 그래서 지난 8월 다마스와 라보 단종 발표가 있었을 때, 다마스와 라보를 생산하던 라인에 스파크 생산라인을 깔려는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많고 수익성이 더 좋은 스파크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게 당연히 더 이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부 규제를 핑계로 이참에 정리하려했던 것”이라며 “내수를 늘리겠다면 라인업을 강화해야지 단종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스파크 후속모델이 M400시리즈인데, 생산라인이 필요하다면 추가 증설할 일이다. 결국 투자는 게을리 하면서 기존 시설과 인원으로 뽑아낼 단물은 최대한 뽑아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지엠 본사가 있는 인천의 쉐보레 딜러들도 라인업이 줄어들면 차종의 다양성이 실종돼 내수 판매를 더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익명 처리를 요구한 쉐보레 딜러 A씨는 “경상용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른 차종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서 내수는 라인업 구성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한국지엠이 내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라인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형차(=스파크)와 준중형(=크루즈), 중형차(=말리부) 외에 중대형차(=현대차 제네시스와 에쿠스 급)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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