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42주년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42년 전인 1982년 3월 27일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가 출범했다. 

한국 프로야구리그는 1979년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당시 전두환(1931~2021, 90세 사망) 독재정권이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던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공수부대까지 투입해 진압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기만적인 유화정책으로 출발했다.

인천SSG랜더스 홈구장 랜더스필드(문학경기장).
인천SSG랜더스 홈구장 랜더스필드(문학경기장).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목표로 이른바 3S(screen, sex, sports)정책을 실시했는데, 한국프로야구 등 스포츠 리그가 출범은 이 3S 정책의 일환이었다. 

1982년 출범 당시 프로야구팀은 인천·경기·강원도를 연고로 하는 삼미슈퍼스타즈, 서울을 연고로 하는 MBC 청룡, 호남을 연고지로 둔 해태타이거즈, 대구·경북 지역을 연고로 하는 삼성라이온즈, 부산·경남 연고 구단 롯데자이언츠, 대전·충청 연고의 OB 베어즈 등 팀 6개로 리그를 시작했다. 

출범 초기 구단 6개는 2024년 현재까지도 각각 인천SSG랜더스(삼미슈퍼스타즈), LG트윈스(MBC 청룡), 기아타이거즈(해태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롯데자이언츠, 두산 베어스(OB베어스) 등으로 전신 구단을 계승하고 있다.

단, 두산 베어스는 전신 구단 OB 베어스의 연고인 대전·충청을 떠나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아울러 인천SSG랜더스도 인천 연고 구단을 온전히 계승했다고 보기 어렵다. 인천 연고 구단은 삼미슈퍼스타즈에서 청보핀토스와 태평양돌핀스를 거쳐 현대유니콘스로 계승됐다.

그런데 이 현대유니콘스가 수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인천에 구단이 없게 됐고, 이때 1997년IMF 경제불황으로 구단 운영이 어려워진 전주쌍바울레이더스를 SK가 인수한 뒤, 연고지를 인천으로 옮기면서 인천SK와이번스가 탄생한다.

현대유니콘스는 결국 나중에 해체됐고, 당시 일부 선수들이 오늘날 서울키움히어로즈가 창단할 때 입단했다. 현대유니콘스가 사라진 수원에 다시 새로운 연고 구단으로 등장한 게 수원KT위즈이다.

이와 달리 삼성과 롯데는 KBO 리그 원년 창립 구단 중 구단명과 연고지를 변경하지 않고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는 중이다. 해태타이거즈는 1997년IMF 경제불황에 따른 모기업 부도로 기아자동차가 인수해 구단명을 기아타이거즈로 바꿨다.

1982년 3월 27일 KBO 리그 출범과 동시에 개막전이었던 MBC청룡과 삼성라이온즈의 경기는 아직까지 야구팬들이 회자하는 전설적인 경기다. 

당시 두 팀은 10회 말까지 7대 7로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은 건 MBC 청룡이었다. MBC 청룡은 10회 말 공격 때 ‘투아웃 만루’ 상황을 맞이했다. 

이 때 MBC청룡의 타자 이종도(71, 당시 20세) 선수가 기적 같은 만루홈런을 쳤고, MBC 청룡이 11대 7로 10회 말 연장 혈투 끝에 승리를 거뒀다. 

첫 개막전부터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인 KBO 리그는 이후 승승장구해 한국의 명실상부한 제1 프로스포츠로 자리를 잡는다. 

이와 함께 80년대 KBO 리그는 많은 간판선수들을 배출했다. 1982년 리그 출범부터 투수로 22연승을 거둔 OB 베어스의 전설 ‘불사조’ 박철순(70), MBC청룡의 4할타자 백인천(81) 등 걸출한 선수들이 등장했다.

이후에도 삼미슈퍼스타스의 수호신이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30승 투수 장명부(1950~2005, 향년 54세), 그리고 한국 역대 투수 중 최고의 2인, 롯데의 ‘고무팔’ 최동원(1958~2011, 향년 53세)과 해태의 ‘무등산폭격기’ 선동열(61) 등 한국 야구의 별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야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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