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또 직장 내 괴롭힘이 사람을 죽였다. 2019년 7월 16일부터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괴롭힘의 양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묘해지고, 극단적 형태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인천 연수구 소재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법인대표는 고인의 피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가 지난 5월 20일부터 7월 1일까지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사회복지노동자 3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에서 응답자 59.1%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 결과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파악된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비율 29.6%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응답자의 50.7%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목격한 뒤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분노나 불안을 느끼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수준을 물었더니 49.8%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퇴사를 고민했고 병원을 찾았다”라고 응답했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괴롭힘의 가해자는 “시설장·사무국장 등 시설의 고위관리자”가 32.9%로 가장 많았다. 이어 팀장·과장 등 중간관리자(23.1%), 비슷한 직급의 동료(12.5%), 법인 관계자(6.2%) 순이었다.

이런 결과는 사회복지시설(기관)의 수직적인 위계질서와 평등하지 못한 조직문화가 직장 내 괴롭힘의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사회복지 노동자 대다수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냐’는 질문에 “참거나 모른 척했다”라는 대답이 25.3%로 가장 많았다.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했다”라는 응답은 고작 5.1%에 불과했다. 만약 고용노동부나 관계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감독하고, 피해 대책이 마련됐다면 이런 설문 결과는 나올 수 없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전국정보경제서비스연맹 다같이유니온 소속 고 김경현 조합원의 유가족과 다같이유니온이 고용노동부에 김경현 조합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전국정보경제서비스연맹 다같이유니온 소속 고 김경현 조합원의 유가족과 다같이유니온이 고용노동부에 김경현 조합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실효성 있는 법이 되려면 다음 네 가지를 서둘러야 한다.

첫째, 사회복지 노동자를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로 묶어두고 노동자로서 인권과 노동권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직장 내 괴롭힘이 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직장 내 괴롭힘 등 부당한 대우의 대응 결과로 자신의 일터 뿐만 아니라 동종의 사회복지시설(기관)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드는 취업 방해행위 즉, 불법적인 블랙리스트 운영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셋째, 현재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법적 근거가 있는 최소한의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회사에 남녀고용평등법에서처럼 노동위원회가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형벌이 아니더라도 제재는 필요하다.

넷째, 5인 미만 사업장 등 일터 약자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을 더 많이 당하고 신고나 대처가 어렵다. 5인 미만의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 구제 절차 지원시스템도 함께 마련돼야 피해 신고 등 대응도 그나마 가능해진다.

지금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고용, 복지 등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배제되고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터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괴롭힘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 “직장에서 괴롭히는 상사가 있어”라는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는 게 우리 사회다. ‘월급에 욕값 포함’ ‘회사는 지옥’이라는 섬뜩한 곳이 우리 사회다. 더는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자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인천시와 연수구청은 사회복지시설(기관)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기관에 대한 지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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