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프첸치 브리지(Old French Bridge)에서 쌍콩마을(Ban Xang Khong)로 (2)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길에서 만나는 라오스의 도시 주택들

라오스의 전통적인 주택은 땅에서 높이 짓는다. 보통 1.5~2.5m 높이의 나무 기둥 위 2층에 2~3개의 방을 만든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은 나무나 대나무 등으로 1층의 기둥 높이가 낮은 자그마한 집을 짓는다.

이렇게 집을 땅에서 높이는 이유는 우기에 침수를 대비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 그리고 온갖 벌레와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며, 기둥이 높아 바람이 쉽게 통해 시원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 전통주택(경제적 여건이 좋은 집)
라오스 전통주택(경제적 여건이 좋은 집)
라오스 전통주택(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집)
라오스 전통주택(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집)
라오스의 전형적인 도시 주택과 유럽의 건축 방식이 도입된 라오스 주택.
라오스의 전형적인 도시 주택과 유럽의 건축 방식이 도입된 라오스 주택.

대체로 이렇게 높게 지어진 집들의 1층은 가축을 기르거나 창고 또는 직물을 짜는 베틀을 놓고 작업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한다. 2층은 방으로만 이루어진 집도 있지만 보통은 기능에 따라 우리나라 대청마루와 같은 공용의 공간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는 일단 기본적인 배수시설을 갖췄기에 집의 1층을 그냥 비워둘 필요가 없다. 그래서 1층은 시멘트나 벽돌로, 2층은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많다. 1층의 공간을 살펴보니 거실이나 창고 또는 방을 들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양철로 지붕을 한 집들은 2층이 더워서인지 1층에서 가족들 모두 잠을 자기도 한다.

물론 이런 방식의 주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주택들을 볼 수 있는데, 왔다 갔다 하며 사진도 찍고 건물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길을 걷는 자만의 재미이리라.

라오스 전통주택 방식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주택.
라오스 전통주택 방식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주택.

우연히 담장 너머로 라오스 전통주택을 보게 됐다. 그러나 담장에 죽 늘어선 열대 나무들의 넓적한 잎으로 인해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생일날 쌍콩마을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전통주택이 있는 집 대문이 빼꼼히 열려있는 걸 봤다.

분위기를 보니 인기척도 없고 포장지들이 집 주변에 널브러진 것을 보아 이사를 간 것으로 보인다. 마당에 들어가 다양한 방향에서 사진을 찍고 내처 2층에 올라가 방들까지 다 찍었다.

방들은 창문이 닫혔음에도 덥다는 느낌이 없다. 아마도 삐쭉하니 솟은 지붕에 나무로 천장을 올려 태양의 직접적인 열을 차단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정도면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어도 무더위를 날 것만 같은 집 구조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심지에서 이런 전통주택을 찍을 수 있는 생일선물을 준 것 같은 행복한 기분이다.

라오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보호령으로 있었기에 유럽의 건축 방식이 도입돼, 라오스의 전통 건축물과 적절하게 융합되며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루앙프라방에는 새로 짓는 주택들도 이러한 영향으로 두 문화가 혼합된 양식의 건축물 형태가 많다. 거의 매일 주택들을 쳐다보며 다니니 이제 조금씩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눈에 들어온다.

길에서 또 만나는 사찰, ‘왓 빠카 싸이야람(Wat Pakha Xaingaram)’

‘빠카 사찰’의 대나무 문.
‘빠카 사찰’의 대나무 문.

‘판 루앙 사찰(Wat Phan Luang)’을 지나 길을 따라 늘어선 다양한 집들을 보며 400여m 정도 가면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 위에 ‘빠카 싸이야람 사찰(Wat Pakha Xaingaram)’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400여 m를 가면 왼쪽에 ‘폰사앗 팟타야몽쿤 사찰(Vat Phonsa-at Phattiyamongkhoun)’이 나온다. 이 길은 중간중간 집들이 없고 야자수 등 열대의 나무들이 쭉 뻗어있어 마치 울창한 수림 속을 걷는듯한 착각이 들어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빠카 사찰’은 일반적인 사찰과 다르게 대나무를 엮어 문을 만들었다. 사찰에 들어가며 뭔가 을씨년스런 분위기에 약간 소름이 돋는 분위기다.

아마도 굵게 자란 노거수와 숲속에 무너져 벽만 남은 사찰의 분위기, 인적이 거의 없는 고요함이 이런 느낌을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또 가보니 ‘카오판사(Khao phan sa)’라는 축제일을 맞이해 철문을 달고 우거진 숲속의 풀들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문을 들어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법당이 정면에 보이는데, 이곳도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지의 여신인 ‘낭 토라니(Nang torlany)’ 여신상이다. 그것도 사찰 옆면에 하나와 정면에는 지붕을 씌운 것 하나가 있는데, 지붕 밑의 ‘낭 토라니’는 젊고 요염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낯선 이방인의 방문 때문인지 강아지들이 옆에 와 짖기 시작한다. 사찰의 을씨년스런 분위기에 개들의 성정마저 변한 것 같다.

‘빠카 사찰’ 법당.
‘빠카 사찰’ 법당.
‘빠카 사찰’ 법당 앞의 요염한 낭 토라니 여신상.
‘빠카 사찰’ 법당 앞의 요염한 낭 토라니 여신상.

사찰의 법당은 조금 높은 기단 위에 올렸기에 법당에 들어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계단 난간석 위는 뱀 모양의 장식물이 난간을 따라 길게 올려져 있다.

그리고 뱀의 머리는 하나로 된 것도 있지만, 삼두사(三頭蛇)가 가장 많고 오두사(五頭蛇)나 칠두사(七頭蛇)를 올린 사찰도 있다. 이 뱀이 바로 ‘나가(Naga)’인데 라오스에서는 ‘낙(Nak)이라 부르며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루앙프라방 사람들은 메콩강에 일곱 종류의 뱀이 살았다고 말한다. 그 뱀들이 ’낙(Nak)’으로 물속 깊이 용궁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데, 용왕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용(龍)은 아니란다.

반신격의 낙은 사람의 형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착한 사람은 보호해주고 악한 사람은 벌을 준다고도 한다. 그리고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내려주는 역할을 한단다. 이 낙이 불교 경전에 나오는 나가와 연결돼 더욱 강력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된 것 같다.

(윗사진) ‘빠카 사찰’ 법당 계단 난간에 올린 삼두사 낙(Nak)_과 머리 하나 낙, (아랫사진) 오두사인 낙과 칠두사인 낙.
(윗사진) ‘빠카 사찰’ 법당 계단 난간에 올린 삼두사 낙(Nak)_과 머리 하나 낙, (아랫사진) 오두사인 낙과 칠두사인 낙.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에 잠겼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며 태풍이 불었다. 이에 보리수에 머물던 낙(나가)의 하나인 뱀의 왕 무찰린다는 자신의 몸을 일곱 번 휘감아 석가모니를 보호하고 머리의 갓을 펴서 일주일 동안 비바람을 막아주었다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명상에서 깨어나자 젊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예를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 낙(나가)은 부처의 호법신 역할을 하는 신성한 동물을 뜻한다. 이런 불교적 내용이 이곳 토속종교와 결합해 낙의 지위를 한층 상승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 절 법당 왼쪽으로 길이 나 있는데 화장장으로 문이 연결된다. 라오스에서 장례는 망자가 천국으로 가고 환생을 하는 것으로 믿기에 정성을 들일뿐만 아니라 일종의 축제처럼 지낸다.

‘빠카 사찰’과 연결된 화장터.
‘빠카 사찰’과 연결된 화장터.

장례의 주관은 당연히 스님들이 하는데, 남자 자손들은 머리를 깎고 열흘 동안 출가한다. 이는 망자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라 한다. 관 주변에는 지폐로 꽃장식을 하고 나중에 스님들에게 주는데, 이도 망자가 천국에 가는 노잣돈이라 생각한다.

화장(火葬)할 때 가족 중 여자가 종이돈을 뿌리고 동네 아이들이 주워가는 것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아무튼 아무도 없는 화장터에 들어가 불구덩이까지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니 뭔가 등이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기록을 위해 사진은 찍어야 한다.

앉아있으면 편안한 사찰,
왓 폰사앗 팟타야몽쿤(Vat Phonsa-at Phattiyamongkhoun)’

 ‘폰사앗 사찰’ 입구.
 ‘폰사앗 사찰’ 입구.
‘폰사앗 사찰’ 낭 토리 여신상과 소년상.
‘폰사앗 사찰’ 낭 토리 여신상과 소년상.

‘빠카 사찰’을 나와 계속 길을 가면 왼쪽으로 공원을 조성하느라 굴착기가 땅을 다듬는 것과 잇대어 ‘화이 캉 브리지’가 나타난다. 남칸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냇물 정도의 지류가 다리 아래로 흐른다.

다리를 건너 150여 m를 더 가면 왼쪽으로 둔덕 위 ‘폰사앗 사찰’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긴 배가 놓여있고 그 위로 범종처럼 생긴 나무통을 걸어놓은 누각이 있다.

이 절도 역시 언덕 중앙에 법당이 있고 그 뒤로 큰 탑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법당 앞쪽으로 거목의 아래 낭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옆으로 벌거벗은 아이의 조각상이 배 위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다. 워낙 절마다 다양한 신상들이 있어 아이의 조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궁금증만 키운다.

사찰에 가면 대략 법당을 중심으로 많은 건물이 지어지는데, 우리나라 사찰처럼 커다란 누각과 같은 건물이 있어 그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이 신자를 만나 시주를 직접 받고 경을 읽어 축복해준다.

‘폰사앗 사찰’ 법당.
‘폰사앗 사찰’ 법당.
‘폰사앗 사찰_ 법당 너머 둔덕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
‘폰사앗 사찰_ 법당 너머 둔덕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

이곳에서 스님에게 시주하고 스님이 축원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돼 사진 몇 장 찍었는데 아쉽게도 난간 기둥에 가려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외에도 스님들이 머무는 건물들과 북을 보관하는 누각, 영가천도를 기원하는 탑들을 대체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정갈한 느낌이 드는 ‘폰사앗 사찰’의 진가는 사찰보다 법당 너머 둔덕 아래로 보이는 남칸강과 건너편의 아름다운 주택들, 우거진 숲과 그 뒤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세, 메콩강과의 합류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일 것 같다. 이곳에 앉아있으면 명상이 따로 필요 없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잃는다. 스님들도 이를 아는지 이곳에 긴 의자를 두 개 마련했다. 스님들이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시간과 공간을 나도 함께 나눈다.

라오스의 독특한 불교문화 ‘탁밧(딱밧, Tak Bat)’

평상시 동네 탁밧 풍경.
평상시 동네 탁밧 풍경.

라오스에는 탁밧 또는 딱밧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 불가(佛家)에서는 거의 사라진 탁발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라오스에서 승려는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할 수 없기에 일종의 구걸 형식인 탁밧을 한다.

이는 수행 방식 중 하나로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버리고 무욕(無慾)과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탁발한 음식을 제일 먼저 고아나 구걸하는 사람에게 다시 역으로 시주를 하고, 사찰에 돌아와 불단과 불탑에 공양한다. 그리고 기르는 개와 고양이에게 나누어준 후 승려들은 남은 음식으로 하루 두 끼 공양한다.

하지만 시주를 하는 라오스 사람들로서는 일종의 수행 방법인 '보시 바라밀'을 체득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어느 날 새벽에 비가 내려 탁밧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창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적 사고방식(상식)에 오히려 내가 깜짝 놀랐다고나 할까. 언제쯤 나는 미리 재단하는 사고방식을 떨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동요하지 않을 것인지. 여기가 라오스라는 걸 순간 잊었다.

라오스는 겨울에도 18도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곳이라 눈은 없기에, 승려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매일 탁밧을 해야만 한다. 탁밧은 많은 헐벗은 이들과 승려들에게 최소한의 생존 양식이다.

비 오는 날 동네의 탁밧 풍경.
비 오는 날 동네의 탁밧 풍경.

아마도 승려들은 새벽 5시 반쯤이면 사찰을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시주를 받으면 꼭 시주를 한 사람들 앞에서 승려들이 불경을 외우며 축복해준다.

마을에서 보는 탁밧은 '왓 시엥 통'이 있는 시내 중심가 탁밧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승려의 행렬과 길게 늘어서 시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장엄함을 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런 소박한 탁밧의 모습이 좋다.

서로를 소중히 여겨 빗속에서도 길에 나와 시주하고, 그 답례로 게송을 하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리라.

얼마 전 8월 1일은 '카오판사(Khao phan sa)'가 시작되는 날로 라오스에서는 일종의 축제일이라 할 수 있다. ‘카오판사’는 우기가 시작되는 음력 6월 15일부터 스님들이 3개월간 두문불출 용맹정진을 시작하는 날이다.

불교를 믿는 라오스 사람들은 이날을 축하하고 3개월 동안 자신들도 술을 먹지 않는다거나 육식하지 않는다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5계)을 결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은 사찰에서 예불을 드리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탁밧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것도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

카오판사(Khao phan sa) 시작 날 동네 탁밧 풍경.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축제처럼 즐긴다.
카오판사(Khao phan sa) 시작 날 동네 탁밧 풍경.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축제처럼 즐긴다.
카오판사(Khao phan sa) 시작 날 동네 탁밧 풍경.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축제처럼 즐긴다.
카오판사(Khao phan sa) 시작 날 동네 탁밧 풍경.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축제처럼 즐긴다.

예불을 구경하러 사찰로 가려고 새벽에 문을 연 순간 ‘오매, 이것이 뭔 일이여?’ 온 동네사람들이 깔끔하게 전통 복장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동네 길 앞에 늘어섰다.

평상시 어르신 몇 분 정도 드문드문 앉았었는데, 오늘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왔는지 입추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앉아계신 분들도 서로 사진을 찍으며 즐기니 이방인인 내가 사진을 찍어도 당연하다는 듯 여긴다.

실제 탁밧하는 것을 봤을 때 스님들이 '언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주해주지? 아마도 사찰 부근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은 현장에서 본다. 오늘은 완전 축젯날이다.

시주하는 분들의 옆에 아이들이나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 앉아 빈 바구니를 들고 있으면, 시주를 받는 스님들이 시주받은 것을 다시 꺼내 빈 바구니에 넣어준다. 동자승이 또래 아이에게 넣어주는 것을 보자니 묘한 감정이 든다.

동자승이 시주받은 것을 또래 아이에게 다시 시주하는 모습.
동자승이 시주받은 것을 또래 아이에게 다시 시주하는 모습.

시주를 하는 물건들을 보니 밥만이 아니라 과자 등 매우 다양하다. 오늘이 '카오판사(Khao phan sa)'를 시작하는 날이라 그런지 어른들은 시주하는 물건들과 함께 돈도 같이 넣는다.

그리고 워낙 많은 사람이 시주하니 스님 뒤에는 아이들 몇 명이 뒤따른다. 이 아이들은 큰 소쿠리에 끈을 달아 목에 걸고 시주받은 물건들을 챙긴다. 아, 이 아이들도 시주받은 것을 스님처럼 빈 바구니에 역으로 시주한다.

시주하고 받는 것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모습의 라오스 사람들이 너무 좋다. 이를 보고 있는 나 또한 절로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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