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고용보험 중 건강보험만 ‘외국인 등록일’ 기준
외국인 등록, 입국 후 최대 3개월 간극 발생 병원비 생돈
상용직 조건 이주노동자 상대로 일용직 적용 보험료 누락
미얀마 군부쿠데타 난민, 아파도 병원비 감당 못해 참을 뿐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며 개시한 총파업을 기리는 노동절이 133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희생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법과 제도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발표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외국인은 41만4045명이다. 지난 2013년 18만3106명이었는데, 10년새 2배 넘게 늘었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서 다소 주춤했던 숫자는 지난해부터 다시 크게 늘기 시작했다.

올해 3월 기준 취업을 목적으로 국내 합법 체류하는 외국인은 총 46만8018명이다. 이들 중 주로 ‘코리안 드림’을 품고 들어온 외국인은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은 38만2550명이다.

E9 비자 발급자는 동남아·중앙아시아 등 지역에서 온 27만7543명이다. H2 비자는 중국과 구소련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로 10만5007명이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인천에만 6만2528명 존재한다.

그런데 불법체류는 말할 것도 없고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조차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엔 지난 2019년 7월 시행된 외국인노동자 건강보험 의무가입 제도 허점에 대한 상담사례가 많다.

입국 여권 자료사진.
입국 여권 자료사진.

#사례1. 입국 후 3개월 이내 다치면 건강보험 미적용 쉽상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고 지난해 10월 방글라데시에서 입국한 A씨는 11월 중순 일하다 다쳐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병원비는 100만원 가까이 나왔지만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회사는 A씨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신고했어도 소용없었다.

이는 이주노동자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적용 시점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입국한 날부터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각종 고용보험을 든다. 이 중 유일하게 건강보험만 입국일 기준이 아니라 ‘외국인 등록일’을 기준으로 한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체류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기준’ 고시를 보면 E9 비자 외국인 노동자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자격 취득일은 ‘국내에 입국한 날’로 본다. 또 외국인 등록을 하면, 근로계약을 맺은 날에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내 체류 외국인의 건강보험 자격 취득일을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한 ‘외국인 등록일’로 규정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복지부 고시보다 이 규정을 우선 적용한다.

외국인 등록 신고는 입국일로부터 90일 이내 해야 한다. 신청부터 등록 허가를 받기까지 통상 한두 달 걸린다. 입국하자마자 신고를 해도 최소 30일, 신고가 다소 늦으면 최대 4개월 걸릴 수도 있다. 이 기간에 다치면 치료비는 모두 비급여 형태로 지불해야한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측에 제도 개선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복지부는 다른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과 형평성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건설 노동자 자료사진.
건설 노동자 자료사진.

#사례2. 일용직 많은 건설현장 이주노동자 건강보험 해제 꼼수 들통

건설현장에서 3년간 근무 후 퇴사한 태국인 B씨는 지난해 6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역건강보험료 약 90만원 미납분 독촉장을 받았다. B씨는 3년 간 사업장을 변경한 적도 없고 매월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적도 없어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을 확인해보니, B씨가 근무한 36개월 동안 3번에 걸쳐 보험 취득과 자격상실을 반복했고, 총 자격상실 기간은 8개월에 달했다. 그러면서 사측은 월 급여에서 건강보험료를 매번 공제했다.

알고 보니 사측이 B씨를 상용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장마철 등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시기를 염두에 둔 꼼수였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근로계약을 기반으로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상용직에 해당한다. 사측의 명백한 불법이었다.

B씨는 사측으로 인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편입됐으나, 해당 보험료를 납부하지도 못하고 독촉장과 체납보험료, 가산금까지 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문제점을 지적했고, 사측은 밀린 보험료와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례3. 가입한 줄 알았던 건강보험 알고 보니 연체 200만원

E9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3년이 지나면 체류기간을 1년 10개월에 한해 1회 연장할 수 있다. 체류기간이 5년 넘으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둔 제한이다.

미얀마에서 출신 이주노동자 C씨는 지난해 11월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출입국외국인청을 방문했다가 건강보험료 200만원 미납으로 불허통보를 받았다. 영문을 몰랐지만 체류 연장이 급했던 C씨는 사비로 이를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확인 결과 C씨는 이주노동자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시행된 2019년 7월보다 1년 6개월 전부터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의무가입 시행 전엔 고용주가 의료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용주는 C씨의 급여에서 보험료를 공제했다.

직장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한 줄 알았던 C씨는 고용주의 누락으로 인해 지역가입자가 됐으나 이를 몰랐다. 결국 지역가입자로 보험료 미납자가 됐고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관할 고용노동청에 C씨는 진정을 냈지만, 고용노동청은 임금 관련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경찰서에도 횡령으로 신고했지만, 사업주를 횡령의 주체로 볼 수 없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C씨는 금전적 배상을 받지 못했다.

건강의료보험 자료사진.
건강의료보험 자료사진.

#사례4. 경제활동 금지된 미얀마 군부쿠데타 난민 건강 악순환

지난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인도적 체류허가(G1-99) 비자를 받아 국내 체류 중인 미얀마 국적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대상자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해당 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은 경제활동이 금지돼 있다는 이유다.

따라서 이들은 질병과 상해 등으로 병원을 가면 보험혜택에서 제외돼 고액의 병원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고, 체류기간 경제적 빈곤이 심화될 심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금전적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같은 문의를 접한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관련 규정에 따라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해도 같은 반응이었다.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인도적 체류허가를 발급하는 경우 보다 유연하게 관련 기관이 대처할 수 있게 재량을 발휘하는 게 해당 비자발급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해당 민원을 넣었다. 그에 따른 의식 전환도 기대했지만, 큰 변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극단적 사례 줄었지만, 제도 허점 많아...행정편의주의 개선 필요”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건강보험 같이 최근 주요사례 외에도 한달마다 주목할 만한 주요상담사례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조만간 누구나 보기 쉽게 상담 범주별로 데이터화하는 게 목표다.

황인경 센터 상담통역팀장은 “4~5년 전만 해도 고용주로 인한 성폭행이나 폭행문제에 대한 상담이 두 달에 1~2건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인식이 개선됐는지 극단적안 사례는 줄었다”며 “요새는 법적 사각지대로 인해 피해를 입어 상담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주노동자에 대한 행정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법무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있다. 이민청이 별도 설립되지 않는 한 통합적인 행정업무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주노동자 업무를 대하는 데 있어서 각 부처별 행정편의주의를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모습.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모습.

한편, 인천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고용노동부가 한국노총인천지역본부와 인천경영자총협회에 위탁해 운영한다. 평일에 출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위해 편히 찾을 수 있게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근무한다.

취재차 방문한 일요일에는 상담을 받으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중국·몽골·베트남·필리핀·태국·미얀마·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주요 국가별 상담원도 각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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