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진료실서 알려주지 않는 성인병 이야기(49) 혈액순환 장애③

◎ 불안정형 협심증

[증례] 53세 남성인 박아무개씨는 평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전날 회사 동료와 술 한 잔을 하고 차를 직장에 두고 와 오늘은 전철로 출근했다. 전철을 타려고 계단을 오르던 중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몹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안정을 취한 후 통증은 조금 나아졌으나, 불편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전철을 내려서 걷는 도중 통증이 다시 발생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더 심해졌으며 식은땀도 났다. 잠시 계단 중간에 서서 쉬고 있으니 통증이 차츰 가라앉았다. 겨우 직장에 도착했으나 일하는 도중에도 통증이 계속돼 응급실을 찾았다. 박씨는 담배를 30년 가까이 하루 한 갑씩 피웠으며, 신체검사에서 혈당이 130mg/dL, 콜레스테롤이 296mg/dL로 정상보다 높게 측정됐으나 치료는 받지 않았다.

동맥경화증은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하고, 그 결과 혈관이 좁아진다. 갑자기 혈관이 좁아지는 경우도 있다. 동맥경화증에 의해 협착 정도가 심하지 않던 혈관에 혈전이 생겨 피가 겨우 통과할 정도로 갑자기 좁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심장에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는 질병을 ‘불안정형 협심증’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평소 ‘축농증’이 있어 코가 막히는 경우를 안정형 협심증이라고 한다면, ‘코피’가 나 생긴 ‘혈전’으로 코가 막히는 경우는 불안정형 협심증이 된다.

축농증은 오래된 병이라 바로 치료를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코피가 나서 콧구멍을 막는다면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코피가 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도를 막아 질식사하게 될 수도 있다. 코피는 코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몸속 혈관 안에 혈전이 생긴다면? 혈관 안에 생긴 혈전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혈관을 막아서 ‘급성 혈액순환 장애’의 원인이 된다. 심장에 급성 혈액순환 장애가 생기는 것을 의학 용어로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이라고 하며, 불안정형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여기에 속한다.

쉬거나 천천히 걷는 것처럼 가벼운 활동을 하다가 안정형 협심증과 비슷한 통증이 발생하면 심장에 급성 혈액순환 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불안정형 협심증은 혈관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혈전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혈관을 완전히 막아서 심근경색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빨리 내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 이형 협심증은 관상동맥에 쥐가 나 통증이 생긴다. 왼쪽 사진은 에르고노빈이라는 약물 투여 전에 관상동맥을 찍은 것이고, 오른쪽 사진은 약물을 투여한 다음 찍은 사진이다. 이형 협심증 환자에게 에르고노빈을 투여하면 관상동맥에 쥐가 나면서 혈관이 쪼그라들어 실핏줄처럼 가늘어져 심장에 혈액순환 장애가 일어나 통증이 발생한다(오른쪽 사진). 협심증 치료에 사용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은 관상동맥에 쥐가 난 것을 풀어 주는 약이다. 이형 협심증 환자는 관상동맥에 쥐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격렬한 운동을 하더라도 가슴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 이형 협심증

[증례] 42세 남성인 김아무개씨는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정도 피우고 술을 가끔 마신다. 최근에 잠을 자다가 가슴이 아파 자주 깨곤 했다. 통증의 위치는 명치 위쪽이며, 처음에는 답답한 느낌이다가 점점 심해져 참을 수 없을 정도이고, 심할 때는 식은땀도 났다. 10분 정도 고생하다 보면 점점 가라앉아 다시 잠이 들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통증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새벽에 주로 생겼으며, 아침 식사 전후에도 자주 일어났으나,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에는 전혀 없었다. 위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이형 협심증은 이름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다른(異) 형태(形態)의 협심증이다. 혈관은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안쪽에 위치한 층을 내피(內皮)라고 한다. 내피는 안쪽에 있는 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피부가 손상을 받으면 가볍게 긁어도 아프고, 물만 닿아도 쓰리지만, 피부가 정상 상태이면 가볍게 긁을 때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든다.

혈관 내피도 마찬가지이다. 내피가 정상이면 가벼운 자극을 받았을 때 혈관이 확장돼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그러나 내피가 손상된 상태에서 가벼운 자극을 받았을 때는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한다. 내막이 손상돼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를 ‘이형 협심증’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협심증에서는 혈관이 항상 좁아져 있다. 그러나 이형 협심증은 혈관 내막이 자극을 받을 때만 수축돼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 이형 협심증은 혈관 코팅이 벗겨진 병이다.

코팅이 벗겨진 파이프가 빨리 녹이 슬듯 코팅이 벗겨진 혈관은 동맥경화증, 즉 혈관 노화의 진행이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형 협심증이 있는 환자는 술과 담배를 특히 피해야하고, 일반적인 협심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혈관에 해로운 다른 모든 위험요인도 피해야한다.
▲ 전두수 인천성모병원 심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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