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자식 묘를 찾는 것처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 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도 자식의 묘를 등지고 서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애보다 먼저 집에 있던 가스렌지, 냉장고 다 그대로 있는데... 지만 없어...”

김동준 군의 유해는 묘를 어떻게 만드는 것도 이상하여, 그가 생존에 부모와 함께 가던 외할아버지의 산소에 뿌려졌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김동준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소위 ‘공고생’이었다. 요새 특성화고등학교라고 부른다. 프로그래밍을 연습하며 동아마이스터고에 입학한 김동준은, 게임팀을 운영하는 대기업 CJ그룹에 현장실습생으로 입사했다.

그는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충북 진천 육가공 공장에 현장실습생으로 배치됐다. 입사 하자마자 명절 수요를 채운다며 현장 근무가 잦았다. 원치 않는 회식 자리와 노래방에 가는 걸 조심스레 거부하는 의사를 표했지만 사회생활을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김동준은 선임에게 얼차려를 당하고 뺨을 맞고 머리를 밟히는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로부터 ‘폭행 사실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까요” 김동준은 트위터에 절박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동준은 어떤 잘못을 했기에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그가 몰랐던 것, 배우지 못했던 것은,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이었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는 죽었다.

김동준 뿐만이 아니다. 2016년 서울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구의역 김군’도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한 이였다. 2018년 12월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혼자 일을 하다 기계에 끼어 사망했으나, 숨진 지 여섯 시간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이 지켰던 일터의 매뉴얼엔 어른들이 그런 위험이 일어나지 않게 조치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어른들의 방관’속에 홀로 사투하다 홀로 죽어 갔다.

학력이 재력에 비례하는 사회로 재편됐다는 대한민국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은 가장 힘없는 자들의 비극이 된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도 않고 추려지지도 않은 이름들을 은유 작가가 가슴으로 엮어 기록으로 남겨 뒀다. 이상은 돌베게가 출간한 ‘알지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글 임진실 사진)’에서 인용했다.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에 어른들의 책임이 남는다. 아직까지 그 죽음에 ’법적인 책임자‘는 없는 경우라도, 어른들이 어른이라면, 다시는 아이들이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사고를 복기하고 책임에 통감하는 마음을 공유해야한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청춘 156명이 죽었다. 대한민국의 어른들의 가슴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 분석이 나온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이 2022. 11. 3.자로 쓴 ‘이태원 참사 왜 못 막았냐고 비판할 자신은 없다’는 칼럼이 주목을 끌었다.

그 글에서 김창균 논설주간은 “내가 책임자였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자신은 서지 않는다. 그래서 섣불리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야 조금 깨닫게 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코로나19 백신 제공이 늦어서 국민들이 죽는다며, 혹은 백신을 섣불리 제공해 국민들이 죽는다고 서슬 퍼렇게 국가의 의무를 꾸짖던 언론을 기억한다.

언론이 용서했기에, 언론이 보호하기에, 윤석열은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언론이 아이들의 죽음을 예방하는 역할에 충실하려면 마치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죽음의 본질은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확인해 줘야 한다. 특히 언론은 특정 정당에 대해서만 날카롭거나 예민한 태도를 거두고, 생명 일반을 보호하기 위해 충실해야 한다.

10.29 그날만 젊은이들이 죽은 게 아니다. 10.29 참사 보름 전 무렵에 SPC 평택제빵공장에서 반죽기계를 돌리던 23세 청년이 사망했다. 사망 후 첫 평일인 2022. 1. 17.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매일경제>는 관련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같은 날 <조선일보>는 “파리바게뜨 영국 진출 런던 1호점 열었다”는 기사만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SPC 노동자의 사망을 처음 보도한 것은 영국 1호점 기사를 내보낸 다음날인 18일 이었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10.29 참사로 다시 부각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 앞에, 어른들의 가슴이 허망하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적 죽임과 죽음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언론의 저 ‘꼬라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어른이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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