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장호영 기자|

인천투데이’는 ‘인천민주화운동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달의 민족‧민주‧노동열사를 소개합니다. 열사의 삶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과 인천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에서 1970~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한 열사는 89명에 달합니다. 매월 초 민족‧민주‧노동열사의 삶을 소개합니다.

김현혁 열사.
김현혁 열사.

▲김현혁 - 2002년 9월 1일 운명

성진기업노동조합 상임위원으로 2002년 5월 택시총파업 때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재안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투쟁으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차량운행 중 운명했다.

▲안동근 - 2001년 9월 5일 41세 운명

안동근 열사.
안동근 열사.

1961년 5월 18일 대구 출생으로 1994년 인천 삼표레미콘(구 경기레미콘)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같은 해 2월 전국콘크리트믹서트럭협의회를 결성해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7년여 간 국내 곳곳을 순회하며 레미콘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고 조직사업을 벌였다. 2000년 9월 22일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고 인천지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0월부터는 인천지역 레미콘노동자들의 노조 이전을 위해 투쟁했다.

2001년 3월 부천 유진레미콘 투쟁 현장에서 회사가 사주한 용역 깡패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인하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4월 전국건설운송노조 총파업 출정식에 사회자로 참석하기도 했으나 6월 증상 악화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해 입원 치료를 하다 9월 5일 운명했다.

▲곽영석 - 2004년 9월 7일 42세 운명

곽영석 열사.
곽영석 열사.

1962년 5월 18일 출생으로 1986년 인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좌초등학교와 신현북초등학교 등에서 18년 간 교직생활을 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고 1993년 전교조 인천지부 초등지회 서구지구장을 맡았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전교조 인천지부 대의원, 2002년 전교조 인천지부 초등위원회 사무국장과 전교조 전국 대의원을 역임했다. 2003년 신현초등학교 재직 중 발병했고 2004년 9월 7일 운명했다.

▲강현중 1989년 9월 9일 26세 운명, 김종하 9월 15일 28세 운명

강현중 열사.
강현중 열사.

강현중 열사는 1963년 4월 27일 충북 음성 출생으로 1981년 10월 5일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987년 12월 5일 경동산업에 입사했다. 1988년 5월 4일 친목회 ‘디딤돌’을 구성해 회장을 활동하고 1989년 8월 17~30일 경동노동조합 민주화투쟁 파업에 참여했다.

김종하 열사는 1961년 8월 출생으로 1978년 동계중학교를 졸업한 뒤 1979년 서울 성동구 시티즌 시계에 입사했다. 1985년 인천 경동산업에 입사 후 1989년 4월 임금인상 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1989년 5월 친목회 ‘디딤돌’에서 적극 활동했다.

두 열사는 1989년 8월 31일~9월 4일 회사의 부당 징계 조치에 항의농성을 하던 중 4일 노무이사와 담판이 결렬되자 분신했다. 강현중 열사는 같은 달 9일, 김종하 열사는 15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운명했다.

▲서병철 2011년 9월 9일 50세 운명

서병철 열사.
서병철 열사.

1961년 2월 24일 전북 임실 출생으로 1986년 영창악기에 입사했다. 1987년 8월 영창악기 파업 시 민주노동조합 위원장과 파업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고 1987년 9월 구속돼 1년 간 실형을 살았다.

1988~1991년 복직 투쟁을 벌여 1992년 10월 1일 원직 복직됐다. 1992년 7월 노조위원장 출마 후 10월에 재해고됐고 이후 야채 장사 등으로 영세자영업자로 살았다.

2006년 6월 민주노동당 서구의회 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5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은 후 대기업 하청비정규직노동자로 취업해 생활하던 중 2009년 11월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했고 2011년 9월 9월 운명했다.

▲임혜란 1993년 9월 9일 28세 운명

임혜란 열사.
임혜란 열사.

1965년 4월 17일 서울 출생으로 1984년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해 고려대학교 가정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을 했고 1988년 운동을 위해 중퇴한 뒤 인천 링크시스템에 입사했다.

1989년 대한트랜스(주)에 입사해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후 1990년 노동쟁의 관련 해고됐다. 업무방해 혐의로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91년 인천지역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과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하고, 문화원 내 땀방울 산악회 간사로 활동했다. 1992년 9월 17일 백혈병으로 입원해 투별생활을 했고 1993년 9월 9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운명했다.

박태석 열사.
박태석 열사.

▲박태석 2001년 9월 9일 40세 운명

1961년 3월 출생으로 1989년 그로리아가구 노조위원장과 1990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 9월 9일 폐결핵으로 운명했다.

▲백인호 1989년 9월 15일 29세 운명

백인호 열사.
백인호 열사.

1960년 6월 14일 출생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984년 11월 1일 인천 소재 동흥전기에 입사했고 노동조합 사무장으로 활동했다. 1989년 9월 15일 조합원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사고로 운명했다.

 

 

이상구(28)‧이석주(26) 1991년 9월 19일 운명

이상구 열사.
이상구 열사.

이상구 열사는 1963년 12월 10일 출생으로 1982년 인천교육대학교에 입학 후 동계 에베레스트 서능 등반과 설악선 적벽 개척 등반 등을 했다. 1987년 인천 가정초등학교 발령 후 1988년 인천교사협의회 정책실 활동을 했다.

1989년 5월 인천초등교사협의회 결성을 주도했고 전교조에 가입했다. 1989년 6월 27일 직위해제되고 같은 해 9월 서구연합 분회장, 1990년 3~12월 서구지구장을 맡았다.

이석주 열사.
이석주 열사.

이석주 열사는 1965년 12월 4일 출생으로 1984년 인천교육대학교에 입학 후 1985년 설악산 적벽과 노적봉 개척 등반 등을 했다. 1988년 인천교대 졸업 후 서곶국민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입 후 건지초등학교 근무와 교과 모임 활동을 했다.

두 열사는 1991년 8월 안나푸르나1 인천원정대에 참가했다가 9월 19일 운명했다. 1991년 10월 6일 북한산 인수봉에 추모동판이 설치됐고 1992년 5월 10일 제3회 참교사상을 수상했다.

▲장정심 - 2000년 9월 26일 운명

장성심 열사.
장성심 열사.

1990년 서광모드 노조민주화추진모임과 1994년 삼익악기 민주노조 건설에 참여했다. 1996년 한겨레노동자회 활동을 했고, 1996년 청천산곡 청년단체 터사랑 회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9월 26일 뇌수막염으로 운명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