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도서관 똘레랑스 인문사회특강 (2)
독일, 독소불가침조약 깨고 소련 기습 공격
900일 봉쇄에도 항복 안한 레닌그라드 시민들

인천투데이=방의진 기자│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전선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영국과 독일·이탈리아가 전투했던 서부전선과 소련(소비에트연방)과 독일이 전투했던 동부전선이다.

이중 서부전선 역사는 널리 알려져있지만 동부전선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서부전선 소련과 독일의 격돌은 제2차 세계대전 핵심 전투다.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인천 미추홀도서관이 주최한 똘레랑스 인문사회특강 중 2강에서 ‘잊힌 전선: 제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그리고 한반도’를 강의했다. 강의는 지난 14일 열렸다.

미추홀도서관의 똘레랑스 인문사회특강 주제는 '유라시아 역사문화 기행'이다. 4월 7일부터 4월 21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3번에 걸쳐 진행한다.

3강은 오는 21일이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대륙을 건설하다’가 주제다. 지난 14일 열린 똘레랑스 인문사회특강 2강을 정리했다.<기자 말>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지점. 강의자료 갈무리.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지점. 강의자료 갈무리.

독일군 전사자 80%이상이 동부전선에서 발생

제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에서 독일과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격돌했던 것을 독소전쟁이라고 한다. 독일군 전사자 80%이상이 동부전선에서 발생했던 만큼 역사적으로 살펴볼만 하다.

1942년 여름과 가을에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사단 200개 이상을 투입할 정도로 큰 전투였다. 반면 같은 시기에 북아프리카 전선에 독일군 사단 4개를 투입했다.

독소전쟁은 한마디로 말살전이었다. 독일은 공산주의 정당 볼셰비키와 유대인을 동일시 했다. 나치에게 공산주의 소련은 궁극적으로 정복과 말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은 1939년 8월 23일에 독소불가침 조약을 했다.

소련 스탈린은 불가침 조약으로 독일이 유럽과 전쟁하는 사이 군사력을 키우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스탈린이 예상한대로 흐르지 않았다. 독일군은 유럽 최강 육군을 보유한 프랑스를 단박에 제압했다.

독일군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 소련 기습 공격. 강의자료 갈무리. 
독일 소련 기습 공격. 강의자료 갈무리. 

독일, 독소불가침조약 깨고 소련 기습 공격

독일은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했다.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기습공격한 것이다.

기습공격을 당한 소련은 연전연패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독일은 이로부터 넉달 뒤 선봉부대가 모스크바 근교까지 도달했다. 소련이 일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소련 정부는 정부 주요 시설을 후방으로 옮겼다. 최고 권력자인 스탈린도 모스크바를 떠나려했지만 결정을 바꿨다. 모스크바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모스크바 시민과 독일에 맞서 싸웠다.

독일군 보급체계. 강의자료 갈무리.

당시 독일군이 가진 강점은 선봉부대가 기계화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독일군 약점은 말로 병력과 물자를 나르는 19세기 형 군대였다.

전쟁이 단기전이었다면 독일이 승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화되면서 소련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독일군은 전투력에 치중했지만 소련군은 보급에 집중했다. 결국 소련은 뚝심을 발휘하며 모스크바를 사수했다.

용감했던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900일 봉쇄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당시 인구는 400만이었다.

1941년 독일은 레닌그라드 방어선을 돌파해 봉쇄했다. 독일은 900일 동안 레닌그라드의 모든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했다.

독일은 봉쇄한 소련에게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최악의 시기에는 시민들이 받을 수 있는 하루 배급량이 빵 125g정도였다.

그러자 굶어죽는 시민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110만여명이 굶주려 죽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려 죽었다.

당시 레닌그라드 시민이 먹었던 빵. 강의자료 갈무리.
당시 레닌그라드 시민이 먹었던 빵. 강의자료 갈무리.

하지만 레닌그라드 시민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시민이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데는 큰 의미가 있다. 만약 레닌그라드가 항복했다면 레닌그라드에 묶여있던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빼앗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스크바를 빼앗긴 소련은 결국 독일에 졌을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최종 승기를 쥐었을 것이다.

류한수 교수는 “오늘날 세계인은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나치에 항복하지 않은 레닌그라드 시민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아사한 레닌그라드 시민. 강의자료 갈무리.
아사한 레닌그라드 시민. 강의자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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