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부평)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부평)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부평) 변호사

인천투데이│1990년대에 큰 인기를 누린 DJ DOC(디제이 디오시)라는 그룹이 1995년에 발표한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기성세대만 아는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성과 본관이 같은 사람들끼리 결혼을 금지한 제도다. 1958년 민법에 규정해 시행하다가 199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도이다.

지나친 금지에 따른 사회 문제가 수십 년간 이어졌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는 법을 개정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유림을 필두로 한 폐지 반대 측과 폐지 찬성 측의 갈등을 당시 정치권은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법 개정을 하지 못하고 현실을 방치하고 있었다. 결국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문제를 헌법재판소가 해결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바꾼 멋진 판결이지만, 세상을 왜 법원이 바꾸는가.

지금은 더하다. 한국 사회에선 대통령의 수도이전 공약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무산되고, 국가의 외교능력 부재를 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로 위로 받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결할 때까지 지켜야 하고, 정당해산 결정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다.

국정농단을 저지르고 촛불민심에도 버티던 전직 대통령도 헌재의 결정으로 물러나고, 정부의 방역정책도 법원의 판결로 멈추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회의원 정수의 15%를 유권자 중  0.07%에 불과한 법조인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처럼 ‘정치의 부재’와 그로 인한 ‘사법 적극주의’의 대두. 정치보다도 법원을 믿는 ‘사법 만능주의’의 만연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사법공화국’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정치의 수단으로 대화와 타협을 포기한지 오래인 국회에선 다수파에 밀린 소수파가 ‘다수가 통과시킨 법률’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간다. 정당정치가 기능을 잃은 상황에서 정치인과 정당의 부패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자 수단으로 등장해 비리 폭로와 고소ㆍ고발, 형사재판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의 운명이 달린 수많은 의제에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하다가, 혹은 의도적으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만 바라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은 매일 아침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법원이 판결로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입법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정부 수반을 맡아 법을 집행한다.

사법부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다수의 논리에서 벗어나 독립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사법부의 판단은 일도양단의 판단이다.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판단이다. 갈등해결에 다른 돌파구가 없을 때 최후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이다.

이러한 구성과 기능의 원리상 사법의 판단은 정치의 영역에서 분리돼야 하고, 최후적으로 보충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현실은 어떠한가. 중요 정치 이슈가 사법 판단에 매달려 있다. 사법부가 선도적으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이슈를 사법이슈로 전환시켜버림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정치의 과정이 제공하는 다양한 견해의 존중, 타협과 이해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갈등 당사자를 승자와 패자로 나눠 적대관계로 만들어버리며, 국민을 분열시킨다.

또한 일도양단의 판단 결과 사법 판단은 어떻게 해도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았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법부가 결정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원동력은 국민의 참여와 감시를 통해 정치적으로 확인된 ‘국민의 의지’여야 한다. 2022년 새해는 대한민국이 사법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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