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통공사, 국내 최초 여성 탑콘 영예
인천도시철도 기관사 160명 중 여성 10명
“최초 호칭 책임 커 ... 승객안전 위해 최선”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하늘을 지키는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최고의 총잡이’라는 뜻으로 수여하는 명예로운 칭호가 있다. 바로 탑건(Top-Gun)이다. 이는 미국 해군 항공대 공중전 학교의 별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공군은 1960년부터 매해 전투기 사격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탑건 칭호를 주고 있다.

하늘에 탑건이 있다면 땅속에는 ‘탑콘(Top-Con, Top master Controller)’이 있다. 인천교통공사를 비롯한 국내 모든 지하철 운영기관들은 자체 규정에 따라 매해 최우수기관사 탑콘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 인천 탑콘의 영예는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28)가 거머쥐었다. 국내 최초 여성이자 최연소 탑콘이다.

국내 최초 여성 탑콘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사진촬영 백준우 기자)
국내 최초 여성 탑콘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사진촬영 백준우 기자)

인천시 계양구 인천교통공사 귤현차량기지에서 오전 운행을 마친 배윤경 기관사를 만났다. 다부진 표정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입사 5년만 20대에 이룬 결실...13만km 무사고 자랑

배윤경 기관사는 “국내 최초 여성 탑콘으로 선정됐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회사 동료나 가족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축하를 받아 매우 고마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최초라는 호칭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고, 그만큼 앞으로 모범도 보여야 하기에 부담도 크다”며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올해 12월 기준 인천교통공사 전체 기관사 인원은 160명이다.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돼 있으며 여성 기관사는 10명(6.25%)뿐이다. 다만 점차 여성 기관사가 많아지는 추세다. 2016년 당시 배 기관사 동기 20명 중 여성 6명이 합격했다.

배 기관사는 2015년 인천교통공사 기관사 공채에 합격해 연수과정을 거쳐 이듬해 정식 입사했다. 이때부터 인천 1호선 본선열차를 운행했다. 20대 청춘이지만, 만 5년이 다 돼가는 경력동안 약 13만km 무사고를 자랑한다.

인천교통공사 탑콘에게 수여하는 흉장.(사진제공 인천교통공사)
인천교통공사 탑콘에게 수여하는 흉장.(사진제공 인천교통공사)

탑콘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한다. 1차 평가로 이론·운전실기·업무수행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전체 기관사 상위 10% 이내, 무사고 실적 3만km 이상인 자를 선발한다. 선정된 탑콘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상패, 그리고 자랑스러운 흉장이 수여된다.

2차 평가는 승무관리·감독 부서장을 위원장으로 한 6인 이내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더욱 구체적으로 평가한다. 여기서도 이론평가(운전이론, 운전관계규정, 전동차 기술), 실기평가(운전실기, 전동차회로설명, 응급조치), 업무실적평가(사고예방·민원·근태사항) 등이 이뤄진다.

올해부터는 기관사 업무 관련 PPT 발표 평가도 추가됐다. 매해 탑콘 선발 방식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관사 꿈꿔...고되기도 하지만 보람 가득

요새는 과거보다 기관사가 되는 길이 더 열려있다. 기관사가 되기 위해선 제2종 전기차량운전면허를 취득해야 지원 자격이 생기는데, 반드시 철도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서울교통공사 인재개발원, 부산교통공사BTC아카데미 등 8개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철도 관련 학과를 굳이 전공하지 않아도, 나중에 기관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배 기관사는 학창시절부터 기관사 꿈을 갖고 우송대학교 철도차량 시스템학과에 진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하철을 자주 애용하다 보니 기관사가 되려는 꿈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열차 선두에서 수많은 승객을 짊어지는 기관사가 멋있어 보였을 뿐인데, 열정이 더욱 커져 멋진 기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배 기관사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본격적으로 기관사 공채를 준비했다. 이때 인천교통공사에 지원했는데, 단번에 덜컥 합격해 기쁘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과정을 떠올리면 짧은 기간에 이룬 꿈은 아닐 것이다.

운행 전 지하철 점검하는 배윤경 기관사.(사진제공 인천교통공사)
운행 전 지하철 점검하는 배윤경 기관사.(사진제공 인천교통공사)

배 기관사는 입사 초창기에 스케줄 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리듬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건강관리도 필수였다. 특히 야간에 출근해 막차시간까지 운행하고, 첫차에 근무를 나서는 비번근무 때에는 퇴근 후 밥도 거르고 잠들기 바빴다. 지금은 자신의 건강이 승객들의 안전이라 생각하며 식사를 제때 챙기고 운동도 한다.

새벽출근 경우에는 6시까지 준비를 마치고 업무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는 배 기관사도 다른 동료들처럼 4시 30분경에 기상한다. 지하철은 특히 정시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1분도 늦으면 안 된다. 그만큼 기관사들의 시간적 압박은 상당하다. 배 기관사가 휴대폰으로 하루에 맞춘 알람만 해도 수십 개다.

“비상인터폰 위급 시에만”...방역 등 안전한 열차 이용 당부

배 기관사는 쾌적한 지하철 운행을 위해 이용객들에게 비상인터폰과 관련한 당부의 한마디도 남겼다. 지하철에는 칸마다 위급상황 시 기관사에게 연락할 수 있는 비상인터폰이 존재한다. 그러나 종종 비상인터폰을 개인적인 용무나 민원으로 사용하는 승객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비상인터폰은 119 긴급전화와도 같다. 따라서 기관사들은 인터폰이 울리면 응급상황이라 생각하고 열차 운행을 멈추고 상황을 점검한다. 잘못 사용될 경우 본인이 운행하는 열차 뿐 아니라, 뒤 열차까지 맞물려 지연돼 승객들의 불편을 초래한다.

“운행 도중에 맨 뒤 두 번째 칸에서 비상인터폰이 울린 적이 있어요. 받아도 대답이 없어서 역에 정차해 바로 달려갔죠. 승객들이 꽉 찬 출근시간이었는데 이용한 분들이 없다 하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불편을 호소했죠. 다만 실제로 승객이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한 경우도 있어요. 비상인터폰은 이처럼 위급 시에만 사용해주시길 바라요.”

또한 올해 인천교통공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열차 방역에 신경을 쓰고 있다. 모든 열차에 손소독제와 알콜 등을 다 비치하고 열차가 계양역에 종착하면 매번 전체 소독하며 다음 승객을 맞이한다. 그만큼 승객들에게 방역수칙을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마스크 미착용과 관련한 민원도 접수돼 기관사들은 열차 방역에 종종 애를 먹고 있다.

배 기관사는 “원래 열차 내에서 음식물 섭취가 불가하지만, 음식을 먹으며 마스크를 내린다는 민원이 가끔 들어온다”며 “아직까지 코로나19 지하철 감염 사례가 나오지 않은 만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모두 지하철 이용 시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내 최초 여성 탑콘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사진촬영 백준우 기자)
국내 최초 여성 탑콘 인천교통공사 배윤경 기관사.(사진촬영 백준우 기자)

배 기관사는 종착지 같은 경우 승객들과 함께 내릴 때 수고했다며 인사해주는 시민들을 마주치면 기관사로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종종 어린이들이 간식을 건네주기도 한다.

배 기관사는 “저도 시민들로부터 종종 고맙다는 인사를 받듯이, 승객들과 동료들에게 따뜻함과 행복을 주겠다는 기관사가 되고 싶다”며 “승객들이 더욱 안전하게 열차를 이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번 탑콘 선정으로 더욱 성장하는 기관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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