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부평을 책 읽는 도시로! 4. 한도시한책읽기운동의 시작, 충남 서산(상)

▲ 서산시립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2003년 10월, 소통하는 풀뿌리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험으로 ‘한도시한책읽기운동’이 충남 서산시에서 시작됐다. 한책읽기운동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수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서산시민들이 책 한 권을 함께 읽는다면’이라는 구호를 걸고 시작을 알렸다. 2011년 현재 약 13~4개 지방자치단체가 한책읽기운동을 민간 또는 관 주도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모든 출발점은 서산에서 비롯됐다. 이를 두고 “비영어권에서 한도시한책읽기운동이 최초로 전개된 곳이 서산”이라고 서산시립도서관은 자랑했다.

서산시가 이 운동을 전개할 당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MBC방송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이미 4월부터 시작된 또 다른 독서운동의 하나인 ‘북스타트’ 운동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던 점도 한책읽기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서산시 시립대산도서관 박미희 선생은 “이권우(도서평론가) 선생님이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추진되고 있는 한도시한책읽기운동을 국내에 적용할 지역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도서관협회가 시범적으로 한 지역을 선정해 성과를 내보자고 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저는 당연히 좋았다. 그래서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의지에 단체장이 힘 보태

서산시 한책읽기운동의 특징은 공무원이 시작했다는 점이다. 2003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독서운동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 사업을 위탁받은 한국도서관협회, 책읽는사회국민운동 등이 시범지역을 물색하고 있던 터였다. 시립도서관이 발 벗고 나섰다. 의지를 가지고 있던 공무원은 비록 담당자에 불과했으나, 다행히 당시 서산시장을 비롯한 고위급 공무원이 관심을 보여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서산시에서 책읽기운동 계획을 수립하고, 독서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시립도서관과 시립대산도서관은 서산시 자치행정국 평생학습도서관과에 속해있다. 자치행정국장과 평생학습도서관 과장, 두 도서관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시립도서관 팀장과 시립대산도서관 팀장의 의지도 중요했다.

사서직 공무원은 늘 도서관에 있기에 사업이 지속성을 지닐 수 있지만, 팀장 이상 공무원은 행정직이기에 인사에 따라 자리를 옮기기 마련이다. 즉, 한책읽기운동과 관련해 어떤 의지를 지닌 공무원이 도서관에 오느냐에 따라 향방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이와 관련, 서산시 평생학습도서관과 시립도서관 봉필환 팀장은 “사서직 공무원은 아니지만 도서관에 와보니 사서직 공무원이 얼마나 중요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책 읽는 도시로 가는 길이고 곧 지식기반사회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다. 나는 몇 년 후 다른 부서로 가지만 한책읽기운동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시청 공무원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서산시에 소재한 여러 독서모임과 민간단체, 학교, 서점과 기업체 등의 참여도 뒤따랐다. 2003년 10월 한책읽기운동이 시작된 후 2개월 동안 많은 서산시민들이 선정도서인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토론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시립도서관에서 이 일을 책임지고 전개한 현 시립대산도서관 박미희 선생은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상당한 도서대출이 발생했다. 2개월 만(2003년 11월 말)에 서산 시내 서점 4곳에서만 약 1000권이 판매됐다. 사업이 끝난 후에도 선정도서가 지속적으로 팔렸다”고 말했다.

중요한 두 가지, 예산과 인력

서산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늘 조직(사람)과 재정(예산)에 있었다. 한도시한책읽기운동 첫해는 비(非)예산 사업으로 시작됐다. 선정도서를 구입하는 것 역시 기존 도서관 예산에 세워져 있는 도서구입비 범위 안에서 예산을 쪼개 구입해야했다. 그나마 정부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터라 도서구입비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업비는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첫해 사업이 성과를 내자 이듬해부터 서산시는 예산을 편성했다.

남은 문제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일에 미친(狂)사람이 필요하다. 그 주인공이 현 시립대산도서관 박미희 선생과 시립도서관 박지현 선생이다. 박지현 선생은 “당시 도서관장님께 이 운동을 제안했을 때 ‘너희들이 펼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라’라고 하셨다. 우리를 믿고 지지해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정이 되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고 당시를 전했다.

물론 지금은 예산규모도 축소되고 단체장과 고위 공무원들의 의지가 전과 달리 축소됐다. 관리자의 마인드에 따라 사업의 크기가 달라진다.

첫해 한국도서관협회와 일을 같이 진행했기 때문에 주요 일간지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을 하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으나, 일간지가 관심을 가져주면서 홍보가 많이 됐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시가 비록 예산을 편성했을지라도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박미희 선생은 “전처럼 언론이 나서주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일을 전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도서관의 기존업무가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이 일을 하다 보니 힘들었다. 지자체 소속 도서관뿐만 아니라 교육청과 교육청 소속 도서관, 시민사회, 언론과 함께 가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한도시한책읽기운동 가능성 확인

서산시 한도시한책읽기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국내 최초로 전개해 우리사회에 한책읽기운동의 밀알을 심었다는 점이다.

첫해 비록 짧은 시일로 인해 다양한 프로그램 추진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서토론이 예상만큼 활발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지 않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모임에 참여하는 등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울러 작가 초청강연회를 시행하지는 못했지만 원작(선정 도서)을 매개로 한 각종 연극이나 무용공연 등의 문화예술 사업의 가능성도 열었다.

박미희 선생은 “한책읽기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수년 동안 동화를 읽은 적이 없는데 동화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내게 상기시켜 줬다. 아이들과 토론꺼리가 생겨 서로를 이해할 수 계기가 넓어졌다’고 했다. 이 만큼 큰 보람이 없다. 또한 관이 주도한 행사임에도,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서산의 성과”라고 말했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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