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시설 주민의견수렴 의무화, 안전조치 법제화 추진 등 성과 남겨
주민투표·총회 등, 민주주의 실험 이뤘단 평가도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인천 동구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립 문제가 마침표를 찍었다.

‘인천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와 인천시·동구·(주)인천연료전지는 18일 인천시청 공감회의실에서 ‘동구 수소연료전지 갈등 해결을 위한 4자 민관협의체’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4자는 수소연료전지사업에 대한 민관합의서를 체결했다.

‘인천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와 인천시·동구·(주)인천연료전지는 18일 인천시청 공감회의실에서 수소연료전지사업에 대한 민관합의서를 체결했다.(사진제공 인천시)

동구 수소연료전지사업은 지난 2017년 6월, 두산건설의 민간투자사업 제안으로 시작했다. 인천시·동구청·한국수력원자력·삼천리두산건설·인천종합에너지는 발전소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같은 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의 발전사업 허가를 획득했다.

이어 한국수력원자력(60%)과 두산건설(20%), 삼천리도시가스(20%)가 출자해 설립한 인천연료전지(주)가 지난해 12월 동구 염전로 45(두산인프라코어 부지)에 39.6MW 규모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축허가를 동구청으로부터 취득했다.

그러나 안전성과 환경문제를 우려한 동구 주민들은 올해 1월 비대위를 구성했으며 수소연료전지사업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발전소 건립 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하자며 동구청에 요청했으나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며 비판했다.

또한 주민들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가 발전소 허가 취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사업추진 양해각서 체결, 전기위원회 심의 통과, 산자부 허가까지 68일밖에 걸리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주민의견 수렴 없이 진행된 밀실·졸속 허가”라고 주장했다.

주민 반대 과정에서 인천시 책임 드러나, 갈등 증폭

게다가 시가 지난 2017년 6월 작성한 ‘인천연료전지사업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기존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는 2016년부터 5월까지 송도 하수처리장 내에 건립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시는 ▲장래 유입인구 증가에 따른 증설부지 불확실성 ▲기존 하수처리시설 운영 저해 등의 문제로 사업부지 변경을 검토했다. 이어 시는 동구청에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관련 양해각서 체결이 차질 없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시가 동구청에 압박을 가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한 계획안에는 발전소 소음과 백연에 대한 시설보완 대책 필요성을 거론했으며, 발전소에서는 경유 대비 61%, 가스 대비 65% 수준의 일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동구 주민들은 시가 발전소 건립의 문제점들을 주민 몰래 숨기고 사업을 추진해왔다고 보고, 비판 수위를 더욱 높였다.

4월에는 동구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립에 대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주민투표율 33.07%에 발전소 건립 반대 96.8%로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인천연료전지는 기자회견을 열며 동구 주민들의 여론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5월 시민 3153명의 동의를 얻은 시민청원 ‘인천에 위험시설(연료전지발전소 그만 지으면 안 될까요?’에 답했다. 박 시장은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문제와 관련해 주민수용성 확보가 미비했고 앞으로는 동구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땅한 대안 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결국, 주민들 의견이 묵살되자 김종호 비대위 공동대표는 5월 21일 동구 수소발전소 백지화를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시민들은 동행단식을 했다. 6월에는 발전소 예정부지 인근 서흥초교 학생들을 포함해 주민 600여 명이 인천시청 앞에서 총궐기를 열며 시의 책임을 촉구했다.

동구 주민 600여 명은 지난 6월 동구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립 백지화를 주장하며 5차 총궐기를 진행했다.

결국 인천시와 동구가 동구 주민들이 제안한 ‘안전성·환경성 조사를 위한 민관조사위원회’ 구성을 수용키로 하면서 30일간 진행한 단식을 마무리했다. 이와 함께 인천연료전지의 공사도 일시 중단됐다.

하지만 민관조사위가 안전검증을 맡을만한 전문성을 갖춘 용역기관을 구하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동구 수소발전소 문제는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연료전지 관계자가 “동구 주민들의 반대는 지역이기주의”라고 발언하고, 강원모 인천시의원이 “수소발전소 폭발 가능성은 ‘제로’, 고등학생 수준 과학지식만 있으면 알 수 있다”고 말해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

주민총회, 협상 재개로 의견 기울어

민관조사위가 지지부진하자 인천연료전지는 지난달 15일 공사를 재개했다. 주민들은 발전소 공사장을 찾아가 규탄시위를 벌이며 농성을 진행했다. 비대위는 물리적 충돌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와 인천연료전지의 손해배상 청구, 고소·고발 등을 우려했다. 결국, 비대위는 향후 투쟁방향을 주민들에게 물었고, 주민들의 의견은 ‘협상재개’로 의견이 기울었다.

이에 지난 4일부터 인천광역시?동구청?비대위?인천연료전지는 4자 민관협의체 회의를 4차례 열며 마침내 18일 합의문을 도출해냈다. 합의안에는 ▲발전소 사업부지 내 발전용량 증설과 수소충전설비 설치 미추진 ▲방음벽(높이 9~11m)과 녹지 조성 ▲15인 이내 ‘민관 안전·환경 위원회’ 구성 ▲주민지원 방안 등이 담겼다.

특히, 민관 안전·환경 위원회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는 첫 사례다. 현재 민간환경감시기구는 원자력발전소 5곳과 당진 화력발전소 1곳에서 운영 중이다. 아울러 지원금 관련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총 60억3000만 원 규모의 지원금 집행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회에는 주민 과반수 이상 참여를 보장한다.

동구 수소발전소 반대 투쟁이 남긴 것

인천 동구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반대 투쟁은 국가사업 추진에 있어서 주민수용성 문제를 대두시켰다. 수소발전소를 추진하던 대전 대덕구와 경남 함양은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자가 공사를 철회한 바 있다. 두 지역의 수소발전소 사업 철회에는 인천 동구의 비대위 활동이 한몫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소발전 허가·검토 시 주민수용성 제고 활동을 의무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안전조치 법제화도 추진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동구 사례를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 언급하며 주민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동구에서 벌어진 발전소 반대 투쟁은 원도심 배제 정책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또한 발전소 문제를 동구·인천을 넘어 전국적으로 문제로 확산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투쟁 과정에서 주민투표와 주민총회 등을 진행하며 민주주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대위는 당분간 민관협의체를 운영해 합의서 이행을 강제하면서 민관 안전·환경위원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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