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부평의 공간과 문화 <5>

<편집자 주>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도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도 있다. 부평 역시 많이 변화했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부평을 통해 공간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간의 변화가 도시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연 | 재 | 순 | 서
1. 예식장의 종말
2. 인문학으로 본 바퀴의 진화
3. 정치생태공간 부평공원
4. 도시 정체성의 잣대
5. 부평의 역사는 미래에 있다
역사의식은 없고 역사박물관만 있다

2008년 12월 12일. 부평역사박물관 다목적실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백운역 부근에 짓고 있는 부평문화예술회관의 운영에 관한 세미나였다.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다. 그것도 외상으로.

요즘 공연장은 설계 전 공연 장르의 특성을 정한 후 공연운영주체와 설계시공사가 협력해 개관 후 문제점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또한, 공공성 못지않게 운영적자를 피하기 위해 적정규모의 관객석과 공연기획팀의 예산 확보에도 크게 신경 쓴다.

그날 초대된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법률기준에도 없는 800석 공연장이 훗날 애물단지로 전락해 1000석 이상의 대규모 공연도 할 수 없고, 300석 미만의 실험극이나 창작공연도 할 수 없어, 결국 주민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실례로 800석 규모의 충무아트홀은 운영적자를 줄이고 대작공연이 가능하도록 얼마 전 1000석으로 증축했다.

또한, 공연기획팀의 인적자원과 예산 확보가 없으면 부평문화예술회관은 서구문화예술회관과 계양문화회관의 전처를 밟을 것이라는 예견도 내놓았다. 서구·계양문화예술회관은 공연기획 없이 대관사업에만 치중하다 양질의 공연을 주민에게 제공하지 못해 외면 받고 있으며, 유치원 발표회와 같은 행사장으로 활용돼 시설노후와 운영적자만 낳고 있는 실정이다.

부평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논의와 비판이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이루어진 것은 뜻 깊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평역사박물관이 부평문화예술회관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사례분석이다. 10년 전에 지어져 많고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서구·계양문화예술회관의 전처를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의 역사의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부평역사박물관도 부평문화예술회관처럼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이런 곳에서 지역의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산되고 실행될지 의문스럽다.

역사박물관(館)에서 역사박물관(棺)으로 퇴보

▲ 부평역사박물관의 전경.
부평역사박물관의 개관기념전시는 ‘시간이 멈춘 종묘’와 인천개항장 일대의 ‘만국공원의 기억’이었다. 현재는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인천미술은행 소장 작품전’이 전시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역사박물관이 갤러리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역사는 연결고리로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개관전시 이후 거의 모든 전시는 부평의 현실을 재조명해 줄 맥락 없이 괴리만 일으키고 있다. 지방자치를 위한 지역역사박물관이 개관기념전시를 중앙집권의 역사인 ‘종묘’를 테마로 하고, 농경사회의 전통 때문에 풍물을 부평의 브랜드로 추진하면서 항구도시의 이미지를 갖다 붙이고, 오늘날의 부평을 만든 60~80년대의 산업화와 노동문화의 역사는 없고 고상한 그림 감상만이 부평의 역사를 대신한다.

그러면서 부평역사박물관은 역사의식 대신 문화소비를 부추기고, 도시와 산업발전을 위해서 희생당한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기억과 배려를 망각시키며 무비판적인 대세추종주의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 내용도 취미교실을 연상케 한다.

역사는 현실의 불의에 맞서 싸운 자들이 만든 오늘

부평역사박물관은 굴포천 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굴포천을 환경친화적인 생활하천으로 만들고자 시민과 관이 노력하고 있다. 산업도시 부평을 생태문화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지역사회의 역사사업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맥락과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해야 할 부평역사박물관은 역사를 유리관에 가둬 구경하는 회고주의로 전락시키고 있다.

역사를 구경거리로 보고 자란 청소년이 과연 역사를 위해서, 지역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용기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 속에는 폭력과 비극이 난무하지만, 역사는 현실의 불의에 맞서 싸운 자들이 만든 오늘이다. 부평역사박물관이 미래의 역사를 위한다면 오늘의 고민을 주민과 청소년에게 알리고 공론화해야한다. 이것이 부평의 역사를 미래에서 찾는 길이다. 그리고 부평역사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