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부평의 공간과 문화 <2>

<편집자 주>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도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도 있다. 부평 역시 많이 변화했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부평을 통해 공간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간의 변화가 도시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연 | 재 | 순 | 서
1. 예식장의 종말
2. 인문학으로 본 바퀴의 진화
3. 정치생태공간 부평공원
4. 도시 정체성의 잣대
5. 부평의 역사는 미래에 있다
자전거의 부활

도시계획의 화두로 자전거전용도로가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 한반도대운하 건설이 부상했다. 명분은 경기부양이다.

이어서 금융위기로 미국 자동차산업과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휘청거리고 있다. 인천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GM대우도 마찬가지다. 정계와 지자체는 자동차산업을 살리려 야단이다. 경기침체만 넘기면 기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짐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패러다임의 지각변동이다. 기술·자본집약산업이 지속가능한 녹색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점령한 공간이 인간중심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파이어스톤러버, 스탠더드오일은 엘에이(LA)의 전철망을 뜯어냈다. 도로를 깔고, 자동차를 팔아, 기름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근대화와 재벌 성장도 이와 유사하다. 공공서비스는 기업논리에 잠식됐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일회성 소비로 외면당했다.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과 계양산 롯데골프장 건설은 문화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이런 식의 경제발전은 한계에 도달했다. 공공성과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이 필요한 때이다. 근대와 탈근대의 속성을 부작용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상징이 자전거다.

롤러장(場)의 확장


부평에도 자전거전용도로가 계획 중이다. 대한민국 트랜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산업화의 정점인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민에게 여가문화는 없었다. 민주화와 국민소득 성장이 지상과제였다. 여가문화는 청소년이 주도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품행제로’는 청소년의 놀이공간으로 롤러장이 등장한다. 당시 기성세대에게 오락실은 도박장과 유사한 곳이었고, 만화방은 퇴폐공간이었고, 당구장은 출입금지구역이었고, 노래방은 있지도 않았다. 다행히(?) ‘체력은 국력이다’를 외치던 시대라 학교운동장과 함께 스케이트장은 청소년에게 허용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학교운동장은 보호와 감시가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비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스케이트장은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공간이었다. 특히, 얼음스케이트장(아이스링크가 아닌 논에 물을 채워 얼린 공간)과 달리 롤러장(roller場: 미끄러지는 스케이트가 아닌 굴러가는 바퀴로 차별화)은 사시사철 운영하였고, 무엇보다 음악(디제이실)이 있었다. 또한 기성세대의 시선도 미치지 않았다.

8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롤러장은 동인천 자유공원(山)과 부평 시장로터리(地下)에 있었다. 그 중 부평 롤러장은 부평시장의 의류상권과 분식문화의 밀집성, 그리고 교통의 편의성 때문에 청소년 출입이 많았다. 멀리서는 김포에서 원정을 왔다.

그러다 부평 롤러장의 변화가 생긴다. 그것도 기존가치관의 임계점과 축을 같이 한다. 구체적으로 롤러장의 고도는 상승하고 넓이는 확장된다.

90년대 소비주체는 중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이동한다. 이때 야타족과 락카페가 등장하고, 롤러장은 몰락한다. 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노래가 015B의 ‘수필과 자동차’이다. 당시 청소년 공간(부평 롤러장)은 현재 성인 댄스홀(부평 무도장)로 영업 중이다. 정말 아이러니다.

그 후 2002년 월드컵 광장문화는 부평공원에 인라인스케이트를 등장시킨다(롤러스케이트의 진화이자, 여의도 광장의 재현). 각종 동호회와 임대사업장이 생겨난다. 그 열기는 자전거 열풍으로 확산되고, 한정된 공원에서 하는 운동과 취미는 도시의 이동주체로 등장한다. 시민이 차량의 승객이 아닌 도시의 핸들러(handler)로 진화한 것이다.

지난 호 ‘예식장(場)의 종말’이 자본에 의한 도시 분할이었다면, 자전거전용도로는 공공성과 생태주의의 확장이다. 정치는 이 흐름을 주목해야한다. 굴뚝의 연기는 도시의 등대가 아니다. 도시의 미래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달렸다. 바퀴의 진화는 이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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