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부평의 공간과 문화 <4>

<편집자 주>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도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도 있다. 부평 역시 많이 변화했고, 그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부평을 통해 공간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간의 변화가 도시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연 | 재 | 순 | 서
1. 예식장의 종말
2. 인문학으로 본 바퀴의 진화
3. 정치생태공간 부평공원
4. 도시 정체성의 잣대
5. 부평의 역사는 미래에 있다
랜드마크의 조건

21세기 대한민국 모든 도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한다. 그러면서 축제와 함께 도시의 랜드마크 건설에 열을 올린다. 그것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에펠탑처럼 거대한 기념비에 집착한다. 인천의 경우 갯벌을 메워 갯벌타워를 짓고, 계양산을 깎아 계양타워를 짓자는 계획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서구의 근대도시는 평지라서 이정표 기능을 할 랜드마크가 필요하나, 한국은 산과 강으로 지형과 지세가 지명으로 마킹(marking)되어, 그 개념이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층빌딩과 타워 건설이 지역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

20세기 서울의 랜드마크는 63빌딩과 남산타워였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이 열리자 서울은 남산을 비롯한 낙산, 북악산, 인왕산의 내사산(內四山)과 청계천을 랜드마크로 복원한다. 근대의 상징인 도로와 아파트를 뜯어내고, 청계천과 서울성곽을 복원하며 역사와 자연에서 도시정체성을 찾고 있다.

부평의 랜드마크

▲ 정의 대신 편의를 제공하고 권위를 세우는 부평구청(왼쪽)과 북구도서관(오른쪽))
인천의 동구와 동인천역은 인천의 서쪽에 있고, 부평구는 반대로 동쪽에 있다. 또한 부평향교와 부평초등학교는 부평구가 아닌 계양구에 있다. 식민지 잔재의 관성 때문이다. 당시의 시청은 지금의 중구에 있었다. 그래서 인천은 일제의 시각으로 구획되고, 철도에 의해 도시가 재편된다.

그 전까지 문학산과 계양산 일대가 도시의 중심지였고 인천향교와 부평향교가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교육기관인 인천대와 인하대, 그리고 경인교대와 경인여대는 모두 옛 향교가 있는 행정구에 자리 잡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부평구는 일제의 철도와 해방 후 경인고속도로 건설로 옛 부평과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태다. 1995년에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분구되면서 이러한 단절은 더욱 선명해지고, 도시정체성의 기반은 상실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 없이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은 행정편의로 도시정체성을 규정한다.

현재의 부평구는 부평공단과 노동자들이 만든 산업도시임에도 농경사회의 문화(풍물)로 회색도시의 이미지를 억지춘향으로 덧칠하고 있으며, 근대도시의 정체성도 확립하지 않고 문화도시라는 이미지로 탈근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부평역사박물관과 부평문화예술회관이 이를 대표하는 공공건물로, 역사적 현실성 대신 회고주의와 상징자본이 도시정체성을 망쳐놓고 있다(본 내용은 다음 호에 연재). 이 보다 더 부평의 정체성을 망치고 있는 공공건물은 다름 아닌 인천의 대표도서관인 북구도서관이다.

북구도서관, 패배주의와 무비판의 산물

이웃 안산시는 시로 승격되면서 ‘반월’이라는 일본식 표기를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찾았으며, 지역을 상징하는 ‘관산’과 ‘감골’도서관을 지었다. 더욱이 국민학교라는 일본식 표기도 초등학교로 바뀐 지 오래됐으며, 영문 표기 ‘인촌(inchon)’도 ‘인천(incheon)’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북구도서관은 일제의 행정명칭을 여전히 쓰고 있다. 역사적 기억을 위한 정체성이 아니라 패배주의와 무비판의 산물로 자리 잡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교육기관이라는 권위와 함께 지역문화의 구심으로서 왜곡된 가치관을 확산시키고 있다.

간판만 그릇된 것이 아니다. 북구도서관의 장서특성화는 사회과학서적인데, 오히려 분석과 비판이 결여된 자기모순과 자기왜곡을 이용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공간 자체가 순응과 효율을 강조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비석이다. 거기에는 ‘지식과 정보는 국력’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것도 세로쓰기다. 보수언론지도 가로쓰기를 한 지 오래인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도서관이 수평적 사고를 깔아뭉개듯 위압적인 비석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글의 내용도 박정희 독재시절 ‘체력은 국력이다’를 떠올리며, 옛 안기부이자 오늘날 국가정보원 앞에 있는 ‘정보는 국력’이라는 비석보다 더 권위적이다(오히려 국정원은 가로쓰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식과 정보는 국가의 것이며, 그 사이의 개인은 매개에 불과하며 오직 국가를 위해서 노력해야한다는 뜻으로 전달된다. 이는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억압한다. 북구도서관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도서관은 비판과 창조보다 영어고득점과 국가고시합격을 위한 기존체제의 편입희망자와 순응주의자를 양산하고 있다.

언론만이 미디어가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자체가 미디어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과 같은 공공기관이 공공성과 합리성을 백안시하며 국가권력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부평구는 다른 구에 비해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많은 곳이고, 북구도서관은 해마다 ‘인천평생학습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문화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무관심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건 문화가 아니라 기능이며,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기호와 자료에 불과하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언어의 손길이 정신을 조각한다. 오염된 언어의 손때가 묻으면 수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아마도 북구도서관(www.ipl.or.kr)이 개명되어도 오랫동안 그렇게 불릴 것이다. 하지만 왜곡된 질서에 순응하는 허수아비보다 혼돈 속에 있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주체가 훨씬 값어치가 있다. 역사는 편의가 아닌 정의를 위해서 필요하다. 도시정체성의 잣대는 편의시설의 수가 아닌 정의추구를 위한 열정으로 가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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