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도시의 새로운 대안, 도시농업 ⑤

농촌에 비해 많은 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돼 있어 살기에 편하다고 하는 도시는 사실 산업화, 근대화 등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심각한 교통문제, 먹을거리의 안정성 불안, 쓰레기 문제, 아토피, 도심 열섬화, 사회적 소외 등 삶을 둘러싼 온갖 문제로 신음하는 곳이다. 이에 많은 이들이 도시가 살고 싶은 곳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모델의 대안을 고민하고 연구한다.

이에 <부평신문>은 도시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도시농업이 지닌 가치와 그 필요성을 짚어보고, 앞서가는 도시농업의 국내외 사례를 통해 도시농업의 가능성을 엿보고자한다. ‘도시의 새로운 대안, 도시농업’이라는 주제로 8번에 걸쳐 격주로 지면에 연재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 ‘도시농업’은 ‘도시생태농업’임을 미리 알려둔다. 도시농업은 그 자체가 생태적일 수밖에 없어서다.

*이 기사의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ㅣ연ㅣ재ㅣ순ㅣ서ㅣ
1. 왜 지금 도시농업인가?
2. 도시농업의 가치와 효과
3. 도시를 살리기 위한 ‘운동’ 도시농업
4. 싹 트고 있는 국내 도시농업
5. 도시농업, 일본은 지금 <1>
6. 도시농업, 일본은 지금 <2>
7. 도시농업, 일본은 지금 <3>
8. 도시의 대안, 도시농업으로 가는 길

1. ‘시민농원촉진법’, 도시농업의 날개를 달다

▲ 농업진흥센터에서 도시농업을 담당하고 있는 야츠(사진 가운데)씨와 오가사와(사진 오른쪽)씨. 가와사키 체험농원에는 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시민농원은 20세기 초 영국의 얼라트먼트(allotment: 영국의 시민농원)가 교토에 소개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소멸됐다. 그 후 1952년 일본의 농지법이 개정되면서 시민농원은 제도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고베에서 농지개량보급원 일을 했던 나카이(中井)라는 사람이 60년대에 다시 시민농원을 시작했고, 이를 고베시와 농업협동조합이 지원하면서 시민농원은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다.

이후 점차 임대차 형태로 농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자 1989년 ‘특정농지 대부에 관한 농지법 등의 특례에 관한 법률’(이하 특정농지대부법)이 제정돼 지방자치단체나 농협이 일정 조건 속에서 이용자에게 단기간 농지를 빌려줄 수 있게 됐다.

마침내 1990년 6월에는 지금의 ‘시민농원정비촉진법’이 제정돼 농지뿐 아니라, 휴게시설을 포함한 전반적인 시민농원 정비가 가능하게 됐으며, 2005년에는 특정농지대부법이 개정돼 지자체와 농협 외에도 협정을 체결하면 시민농원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농지 소유자는 물론이고 농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개인이나 기업,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민간단체 또는 시민단체)법인 등도 개설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2006년에는 ‘시민농원의 정비 추진에 관한 유의사항에 대해서’라는 지침이 내려져, 시민농원에서 여가 생활 목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한 경우라도 재배된 농작물 중 자가소비량(自家消費量)을 초과하는 것은 판매소 등에서 판매가 허용됐다.

이렇듯 일본은 21세기 인류의 화두인 식량안보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법과 제도를 마련해 도시농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93년 1039곳이었던 시민농원은 점차 늘어 2005년 3월에는 3001곳, 15만 3727개 구획, 총면적 1027헥타르(㏊)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지자체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전체 시민농원 중 지자체가 개설한 시민농원은 2269개소로 무려 75%가 넘는다. 또한, 전체 시민농원 면적 중 60%에 달하는 597㏊가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일본의 도시농업을 향한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변화는 특정농지대부법 시행 이후 확연히 두드러졌다. 법 시행 이후 개설된 시민농원은 2614곳으로 전체 시민농원의 87%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도시농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현재 일본의 시민농원은 새로운 형태의 생태관광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유휴지를 활용한 시민농원 조성을 통해 녹지를 확보하고, 단순한 공원 대신 생태농업공원을 만드는가 하면, 어린이 체험농원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옥상텃밭은 물론 심지어 지하철 옥상 위에도 시민농원을 조성하는가 하면, 건물 지하에서는 채소 품종 연구를 진행하고 벼를 재배키도 한다.

이처럼 일본은 식량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 제도적으로 도시농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연히 시민농원을 찾는 일본 시민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시민농원을 보러오는 관광객까지 늘고 있어 관광 상품으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2. 도쿄도 네리마구의 ‘체험농원’

▲ 네리마구 체험농원 ‘오오이즈미카제노학교’. 사진 속 푯말은 30㎡에 해당하는 각 구획을 뜻한다. 여기선 농장주가 지시하는 작물만 재배 가능하다.
일본 도쿄도 네리마구는 인구 70만명, 면적 48.16㎢에 이르는 도시다. 서울로 치면 관악구나 마포구 정도에 속한다 할 수 있겠다. 네리마구 역시 산업화와 더불어 40년 전에는 밭이었던 곳이 지금은 주택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쿄도 안에 있다 보니 인구 과밀화현상으로 농지는 줄고 주택가는 늘고 있다.

현재 네리마구에는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구민농원과 시민농원이 각각 23개소와 6개소가 있고, 농가가 운영하는 체험농원은 13곳이다. 모두 합하면 1446구획에 걸쳐 4만 3380㎡에 달한다.

1구획이 15㎡인 구민농원은 월 400엔의 이용료를 받고, 시민농원은 1구획이 30㎡로 월 1600엔의 이용료를 받는다. 시설은 시민농원이 더 잘 돼 있으며, 체험농원에서 농사를 배운 사람들이 구민농원이나 시민농원으로 옮겨간다.

네리마구에서는 체험농원이 더 인기다. 구민농원이나 시민농원은 지자체가 분양하고 분양 받은 이가 알아서 농사를 짓는 것이지만, 체험농원은 파종에서 수확까지 옆에서 가르쳐주기 때문에 수확량도 더 많아 인기가 높다.

이처럼 체험농원과 시민농원이 자리를 잡은 것은 13년 전의 일이다. 도쿄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도쿄에서 생산하는 것은 지방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에 비해 가격 경쟁이 안 됐던 것이다. 제아무리 농사를 짓는다 해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법은 소량생산으로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이에 이곳 농부였던 시라이씨와 카토씨가 네리마구에 제안해 지금의 체험농원이 설립됐다. 시민들에게 농사짓는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본인도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고, 또 분양한 만큼 이용료를 받을 수 있으며 직거래를 통해 소득을 얻는 방법으로 체험농원을 도입한 것이다.

시민들 역시 농사를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여가 생활을 보장받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고, 나아가 자신의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해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체험농원은 네리마구에 13군데 정도 있으며, 전부 농가 소유다. 도쿄도 나머지 구에는 1~2개 정도가 있다. 네리마구에서는 체험농원을 만들어 비닐하우스 등의 시설물을 설치한다고  하면 설치비용의 75%를 지원해준다. 이중 25% 포인트는 시비고 50%포인트는 국비다.

네리마구의 체험농원에선 1인이 1구획(30㎡)만 이용할 수 있으며, 구획 당 이용가격은 1년에 4만3000엔이다.  타 지역 주민일 경우 4만 3000엔 전액을 내야하지만, 네리마구 구민일 경우 구에서 지원을 하기때문에 3만 1000엔만 내면된다.

네리마구청 생산지역진흥부 경제과 도시농업 담당 다나카(37)씨는 “체험농원이 활성화되는 것은 나이 들면서 땅을 만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 전문가가 잘 지도해 주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시민들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해 전업농가 보다는 적은 양의 농약을 쓰거나, 될 수 있는 한 농약을 안 썼으면 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 네리마구 체험농원 ‘오오이즈미카제노학교’를 제안한 시라이(53)씨.
시라이(53)씨가 운영하고 있는 오오이즈미카제노학교, 우리말로 하면 ‘큰 샘물 바람의 학교’라는 뜻의 이 농원은 1.3㏊인데 이중 0.5㏊는 체험농원이다. 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통 5년 교육과정으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인기가 매우 높다.

시라이씨는 “체험농원을 제안했을 때 네리마구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 많이 활성화됐다”며 “시민농원은 땅만 빌려주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학교수업 하듯 가르친다. 5년 과정 마치면 졸업증서를 주는데 서로 경쟁도 되고 해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농산물 40여종을 생산하고 있다. 이를 농협이나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고 있으며, 학교급식에도 납품하고 있다. 그는 “체험농원에서 직판하는 야채가 10~15%가량 저렴한 것도 있지만, 얼굴 아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 체험농원이다. 그래서 소비자가 믿고 사간다”고 덧붙였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이다. 네리마구의 체험농원에서도 사람들끼리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주말에는 바비큐파티를 열어 돈독함을 쌓기도 한다.

3.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농업진흥센터’

가와사키시는 가나가와현 북부에 위치한 인구 138만명, 면적 142.7㎢에 달하는 도시로 도쿄도와 도쿄만에 인접해 있는 도시다. 가와사키시 역시 최근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남부는 첨단산업도시로 변모하고 있고, 중부와 북부에는 아직 농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농지와 농가는 줄고 있다.

가와사키 농업진흥센터 쿠리하라씨는 “영농후계자가 없어지는 문제, 도심 안의 녹지를 확보하는 문제,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문제, 농업 체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고 재해 시 피난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농원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가와사키시는 2005년 3월, ‘가와사키 농업 신생플랜’ 이라는 10년 계획을 세워 130만 모든 시민이 삶속에서 농(農)을 접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시민과 함께 만드는 가와사키 농업진흥’, ‘농(農)과 친해지는 제도 확립’, ‘다원적 기능을 지닌 도시농지의 활용 방안’ 등이다.

이와 관련 쿠리하라씨는 “가와사키의 식량자급률은 0%에 가깝다. 도시농업마저 무너지면 농사와 농업에 대해 완전히 모르게 된다. 나쁜 야채가 많아질수록 먹을거리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아이들 또한 씨가 자라서 열매가 되는 과정을 모른 채 과일만 알고 자란다. 이를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가와사키시 농업진흥센터가 하는 일은 주로 전업농이 아닌 농사짓고 싶어 하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전업농 관련 업무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맡고 있다. 도시에 영농 후계자는 없을지라도 농사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와사키시에서는 이들을 모아서 원하는 사람에 한해 후계자가 사라진 농지로 보내고 있다.

가와사키시가 더욱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농업에 대한 태도에 있다. 일본 전체의 식량 자급률은 38%대다. 한국보다 15%가량 높으면서도 이를 매우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인다. 가와사키시 역시 농업이 점차 밀려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가와사키시의 시민농원에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와 토마토 밭을 살피고 있다.
이에 대해 쿠리하라씨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산업도시나 공업화만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 한 산업, 한 계층만을 향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 사회의 모든 성원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더구나 식량 자급률이 38%에 불과한 일본에서 농업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라고 강조했다.

가와사키시에는 현재 각 구마다 1개 시민농원이 설치돼 있다. 기본 2년을 계약기간으로 1구획(10㎡) 당 1년에 6000엔의 이용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지자체가 시민농원을 개설했다면, 2005년 이후로는 일반인도 시민농원 개설이 가능해져 시에서는 이를 늘려갈 계획이다.

농업진흥센터에서 시민농원을 담당하고 있는 오가사와씨는 “현재 체험농원은 2군데 정도로 30명씩 교육하고 있는데, 1년에 1군데씩 체험농원을 늘려가는 것이 목표다. 체험농원을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 조사에 의하면,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이들은 시민농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160명 중 80명이 시민농원으로 갔다”고 말했다.

가와사키시 시민농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애인 전용 텃밭도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텃밭을 마련해 놓았다. 시민농원은 기본적인 농기구와 보관소 시설, 수리시설,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시민농원 운영규칙에 자전거나 대중교통만을 이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가와사키시의 시민농원과 체험농원은 시의 지원에다 ‘농지 없는 지역에 시민농원(체험농원)을 설치하자’는 정치인들의 요구가 더해져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가와사키시에서는 농지에 농사를 지으면 세금을 감면해주고 있다. 시에서는 별도로 예산을 투여하지 않고 분양에 따른 이용료만으로 시민농원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움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창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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