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인천 평화의 소녀상’ 제작한 김창기 조각가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요즘은 많이 울컥합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조각가 김창기. 인터뷰를 하면서도 몇 차례 눈시울이 벌게졌다. 나이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지난 6월 8일 발족했다. 단체 160개와 시민 800여명이 참가해 소녀상 건립을 위한 1억원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추진위는 건립 장소를 시민투표를 거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으로 결정했다. 제막식은 오는 10월 29일 거행할 예정이다. 추진위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할 작가를 물색했고, 후보 3명 중 김창기 작가를 최종 선정했다.

김 작가를 지난 6일 중구 신흥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곳엔 석고로 조각된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고, 소녀상이 완성되기까지의 여러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작업은 내 인생의 전환점

▲ 실제 크기로 소녀상을 드로잉한 그림 옆에 서있는 김창기 조각가.
“3개월간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이 소녀상하고 지냈어요. 작업하면서 시민들과의 약속, 의무감 같은 것들이 떠올라 무거우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조각과 방향이 좀 달라요. 이 작업이 나한테는 전환점이 됐죠”

그 전에는 사회를 멀리서 바라봤다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단다. 이후 개인 작업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도 했다.

“10월 19일부터 서울 인사동에 있는 코사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일주일간 개인 전시를 합니다. 원래는 다른 방향의 전시를 준비했는데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면서 개인전과 연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작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ㆍ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잘못이라며 인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 전에 굴욕적 합의에 반대하는 시위 형식의 모습을 개인전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는 데 고민이 많았던 만큼 동상 하나 제작하고 끝내기가 아쉬웠어요. 이 정부가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일본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건 아닌지 모르는 현실이 개인전의 방향을 틀게 했습니다. 소녀상을 여러 개 제작해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소녀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당당하고 우아한 소녀를 만들고 싶었다

▲ 김창기 조각가는 고개를 살짝들어 멀리 있는 일본을 응시하고 표정은 당당하고 온화한 소녀상을 만들었다.
이 작업이 ‘힘들면서도 즐겁고, 즐거우면서도 힘들었다’고 말한 그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했단다.

“평화의 소녀상을 최초로 만든 김운성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너무 강했어요. 그걸 바꿔 나가는 게 힘들었죠. 완전히 바꾸고도 싶었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면 원래의 소녀상 이미지가 좋은데 왜 바꾸느냐는 반발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인천만의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갈등이 깊었죠”

소녀상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손발과 얼굴인데 특히 얼굴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드로잉 단계에서 여러 번 고치고 흙으로 모형을 고치는 데도 십여 차례, 석고로 뜨고 나서도 일고여덟 번을 더 고쳤다. 특히 본인이 남자라 여성, 소녀의 인상을 잡기가 힘들었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글을 바닥에 쓰는 장면을 형상화하려고 했어요. 그랬다가 갑자기 지난해 말에 아베가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는 말을 한 게 생각나 당당하고 우아한 소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가 박차고 일어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고개는 살짝 들어 멀리 있는 일본을 응시하고 표정은 온화한 느낌으로요. 누가 목이 너무 길어 서양적이라는 얘기도 하던데 난 우아하고 서양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이 소녀상이 세워질 예술회관 광장이라는 공간이 특정한 계층을 위한 곳이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도 많이 와서 노는 공원이잖아요. 소녀상 자체만으로도 무거운데 표정과 자세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요즘 아이들이 예쁘고 잘생긴 것에 호감을 갖듯이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시민들에게 가깝게 접근하고 싶었어요. 한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 동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니까요. 머리스타일도 더 단정하게 했어요. 김운성 작가의 소녀상은 뜯긴 머리였지만 저는 현대적 느낌이 나게 깔끔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 작가가 만든 소녀상은 서 있는 모습이다. 그것도 주먹을 불끈 쥐고 말이다.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쥘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가 났을 때라고 말하는 김 작가는 얼굴은 온화하되 손발에서 긴장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 딸아이를 일으켜 세워 아이의 발을 모형으로 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모델

▲ 김 작가는 얼굴은 온화하되 주먹을 불끈쥐고 있어 긴장된 상태를 표현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 나이 때 많이 끌려갔다고 하잖아요. 딸이 모델이 돼 줬어요.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아빠 나 그렇게 고생 안 했는데, 그렇게 아파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울컥 하더라고요”

김 작가는 딸의 말을 전하면서 울먹였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에서 ‘위안부’에 대해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소녀가 겪었던 고통을 자신은 체험하지 않아 모델의 자격으로 부족하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는 추측할 따름이다.

“아내와 딸애가 꾸준히 의견을 줬어요. 내가 계속 고치는 걸 보다가 갑자기 ‘정지’를 외치더라고요. 더 고치면 표정이 무섭고 어른스러워질 거 같다고요. 조각은 조금만 더 만져도 표정이 확 바뀌거든요. 두 사람의 시선이 대중적일 거라는 믿음으로 따르기로 했죠”

전국에 평화의 소녀상이 많이 건립됐다. 앉아있는 소녀상도 있고, 서 있는 소녀상도 있다. 광주에 있는 소녀상은 오른손 끝에 나비가 앉아있고,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 소녀상은 나비 날개를 뒤로 한 채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올해 2월에 건립한 부천의 소녀상은 긴 머리를 땋은 버선발의 소녀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앞모습이 없다. 앞면은 거울로 만들었는데 작가는 ‘반성의 의미’를 담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모든 작품에 표정이 있고 그 표정에 의미가 담겨있어요. 어떤 동작을 취하면 설명이 됩니다. 많은 설명은 의미를 강요하는 거 같아서 저는 그냥 일어나 서 있는 차려 자세로 하려고 해요. 작은 몸짓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귀향’ 네 번 봐

▲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의 발을 모형으로 떴다.
김 작가는 소녀상을 조각하기 전에 많은 자료를 조사했다. 우리나라나 해외에 있는 소녀상은 물론이고 중국의 난징 대학살이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까지 세계적인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을 공부했다.

“유대인학살추모공원에 있는 홀로코스트기념비는 독일이 나치가 한 행위를 사죄하는 의미를 돌무덤으로 표현했어요. 하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주범인 것만으로도 전 인류에 사죄해야하는데도 거부하고 있어요. 이것만이 아니잖아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뿐만 아니라 강제 징용한 것에 대해서도 사죄해야합니다. 마루타도 그렇고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 후손들이 사죄를 거부한다면 일본이란 나라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죠”

김 작가는 영화 ‘귀향’을 네 번이나 봤다. 영화에는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검증하고 치열하게 생각한 흔적이 녹아있는 거 같다고 했다. 그는 소녀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영화 속 주인공이나 인물들을 연구했다. 작업하다가 막히면 다운로드해놓은 영화의 중요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기도 여러 차례였다.

사회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통과의례를 힘들게 겪은 김 작가에게 또 다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예술행위나 창작을 한다는 건 세상의 진실을 말하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확실히 보일 수 있는 기회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죠. 제가 인천대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고 있다는 걸 학생들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요. 준비해서 다음 수업시간에는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할 생각입니다. 예술가들의 현실 참여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요”

김 작가는 10월에 열릴 1차 개인전 이후 2차로 12월 5일께 인천 선광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1차와 비슷한 콘셉트로 할 예정이고 준비가 되는 만큼 소녀상을 더 많이 제작할 생각이란다. 전시장에 조명을 켜고 줄을 서서 소녀들이 서 있는 형상은 시위하듯이 위압감이 엄청날 거라고 상상하는 그는 강제징용을 당한 소년을 쌍으로 제작해 전시할까도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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