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선 ‘호수 정정하라’ 했는데, 인천 노부부 빌라는?

<인천투데이>은 지난 4월 인천 서구 경서동에 있는 한 빌라의 호수가 뒤바뀐 채 경매에 넘어가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옆집 세대원과 함께 쫓겨날 처지에 놓인 70대 노부부의 사연을 보도한 바 있다. 언론 보도와 당사자의 이의신청으로 법원이 ‘경매 집행 정지’를 하면서 사건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채권자쪽의 요구로 법원이 경매를 다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8월 30일, 호수가 뒤바뀌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도봉구의 빌라 12세대 주민들이 ‘건축물 대장 호수를 바꿔 달라’고 낸 민원에 ‘정정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과는 다른 해석이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노부부가 전세로 살고 있는 빌라의 도면 갈무리 사진. 노부부는 출입문에 표시된 402호에 살고 있지만 건축 도면에는 403호로 표시돼있다. 이 때문에 노부부네 옆집(빨간색 표시)이 경매에 넘어갔다.
70대 노부부의 사연을 다시 정리하면, 노부부는 15평(49.6㎡) 짜리 빌라에 전세보증금 3000만원을 내고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의 빚 때문에 지난 4월 빌라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노부부가 사는 집이 아닌 그 옆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빌라 호수가 뒤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402호인데 건축물 도면엔 403호로 기록돼있고, 옆집 403호는 402호로 기록돼있는 것이었다.

노부부의 집엔 ‘402호’, 옆집엔 ‘403호’ 표시물이 붙어있었고, 수도 계량기나 전기 계량기, 입구문의 번호열쇠 등도 모두 노부부의 집은 ‘402호’, 옆집은 ‘403호’로 돼있었다. 노부부의 집뿐 아니라 이 빌라 모든 층의 ‘2호’와 ‘3호’는 호수가 뒤바뀌어 있다.

이 때문에 경매에서 노부부의 옆집이 낙찰되면, 옆집에 사는 세입자는 쫓겨나야한다. 또한 옆집 주인은 노부부가 사는 집이 자신의 집이라고 소송할 것이고, 노부부도 쫓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노부부 또는 옆집 세입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최우선 변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되려면 임대차계약과 전입신고, 해당 집 점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부부의 임차계약서와 전입신고서상에는 경매에 넘어간 ‘402호’로 돼있는데, 점유하고 있는 집은 건축물 도면상 ‘403호’로 돼있다. 옆집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사연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고, 노부부의 아들이 인천지방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해 법원이 ‘경매 집행 정지’를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해당 빌라의 채권자 쪽에서 ‘법원 판례’를 들이밀며 경매 재개를 요청, 법원은 노부부네의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경매를 재개했다.

법원은 “현관문 표시대로 잘못 입주함에 따른 점유관계의 착오가 소유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이 사건 경매에 목적물 불특정이나 권리흠결 등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뒤 “이 사건 신청인과 현관문상 402호에 거주하는 임차인과 각 소유자들의 이해관계는 매각 절차가 진행된 후 주택 인도와 배당 과정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노부부의 아들은 <인천투데이>과 한 전화통화에서 “채권자 쪽에서 법원 판례를 가지고 와 경매 재개를 주장했는데, 그 내용에 반박할 만한 법원 판례가 없어 대응할 수가 없었다”며 “그럼 어쩔 수 없이 402호와 403호가 집을 바꿔 살겠다고 집주인끼리 합의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채권자 쪽에서 안 된다고 해, 그렇게도 못했다. 그렇게 할 경우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으니, 채권자 쪽에서는 최우선 변제 받게 될 전세보증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면, 국민권익위는 지난 8월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앞집과 호수가 바뀐 다세대주택 12세대 입주민의 민원을 해소했다”고 홍보했다.

이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지난 2002년 서울시 도봉구 한 다세대주택의 건축주는 신축 후, 건축물대장에 표시된 각 층의 주택 호수가 실제 표시된 주택 호수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 채 도봉구에 사용승인을 신청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입주민들은 건축물대장과 실제 표시된 호수가 일치하지 않아 소유권 행사에 제약이 따른다며 도봉구에 건축물대장 변경을 요청했다. 도봉구는 이 요청을 거부했고, 입주민들은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민원을 받아들여 ‘건축물대장을 정정하라’는 의견을 도봉구에 전달했다.

서구 노부부의 빌라 문제도 도봉구의 다세대주택처럼 건축물대장에 표시된 호수를 고쳐주면 해결됐을 것이다. 노부부와 해당 빌라 소유주들도 서구에 도면 호수를 고쳐달라는 민원을 넣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축물 도면상 면적이 ‘2호’와 ‘3호’ 간 2.6㎡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노부부의 아들은 “도봉구 다세대주택의 건축물대장을 정정하라는 국민권익위의 사례가 있으니, 부모님이 사는 빌라도 바꿔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부모님이 아무 잘못 없이 집에서 쫓겨나고 전세금도 못 받게 되는 억울한 상황에 놓였는데, 공공기관이 왜 채권자 쪽 편만 들어주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서구와 인천지법은 ‘2호’와 ‘3호’의 면적이 서로 달라 건축물대장 호수만 바꾸면 해결되는 도봉구의 사안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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