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비누로 세수를 한다. 로션을 바르고 빵과 샐러드를 간단히 먹는다. 복날을 맞아 점심으로 사무실 근처에서 삼계탕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한잔 마신다. 커피에 달달한 시럽은 필수. 오후의 지루함을 청량음료로 달래고, 야근 후 집에 돌아와 맥주 캔을 딴다. 이리저리 치이는 일상 속에 큰 돈 들이지 않고 간단히 나를 위로하는 데에 ‘혼맥(혼자 마시는 맥주)’만한 게 없다. 침대에 누우니 감기기운을 느낀다. 감기약으로 선방한 후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한다.

가상의 인물이 보낸 하루를 상상해봤다. 위 글만 봤을 때, 이 사람이 하루 동안 만난 지엠오(GMO, 유전자변형생물체)는 몇 가지일까? 열 가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미 지엠오와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 개 이하라면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당신을 화나게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반도의 반쪽인 대한민국을 지구본에서 단번에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땅덩어리를 가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지엠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용 지엠오 수입량은 2014년 228톤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식용과 사료용을 합한 전체 지엠오 수입량은 800톤을 훌쩍 넘어 해마다 세계 1ㆍ2위를 다툰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대두라 불리는 메주콩과 옥수수다. 콩과 옥수수의 국내 자급률은 형편없이 낮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시장에 나와 있는 대두 중 10%, 옥수수는 고작 0.8%에만 ‘국산’ 딱지를 붙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두의 90%, 옥수수의 99.2%는 수입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입 대두의 80%, 수입 옥수수의 51%가 지엠오다.

이 많은 지엠오는 다 어디로 갈까? 우선 대두는 콩기름을 짜는 데 쓰인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콩기름은 전부 지엠오 콩으로 만든 것이라 보면 된다. 콩기름으로 마가린과 버터, 커피크림을 만들고,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는 간장과 두유를 만든다. 이것은 햄과 같은 육가공품과 인조고기에도 들어간다. 값이 비싼 고기를 덜 넣고도 단백질 함량을 올릴 수 있는 기특한 ‘마법의 찌꺼기’다. 이밖에 비누ㆍ화장품ㆍ살충제에도 지엠오 대두가 쓰이고, 크래커와 사탕, 항생제, 연고, 약품에도 들어간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지엠오 대표주자는 옥수수다. 옥수수는 팝콘이나 시리얼처럼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채 유통되기도 하지만, 대두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옥수수에서 나온 것은 크게 (액상)과당ㆍ포도당ㆍ전분ㆍ옥분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탄산음료와 과일주스 대부분에 액상과당이 들어있는데, 이것은 옥수수로 만든 것이다.

과당은 빵과 과자에도 들어간다. 포도당은 빵과 과자, 그리고 약의 재료로도 쓰인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먹는 감기약 시럽에는 단맛을 내기 위해 많은 양의 당이 들어간다. 그리고 전분과 옥분으로는 맥주와 물엿, 옥수수기름, 음료를 만든다. ‘맥주, 너마저!’란 말이 나올 법하다.

비누, 로션, 빵, 샐러드의 마요네즈, 지엠오 사료로 키운 닭, 커피의 시럽, 청량음료, 맥주, 감기약, 지엠오 면화로 만든 이불, 이상 열 가지가 바로 ‘숨은 지엠오’다. 그 누구도 지엠오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해 ‘식품위생법’은 지엠오를 원료로 쓴 식품에 지엠오 관련 정보를 표시하게끔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마트에서 집어든 음료나 빵, 햄 등의 포장지엔 ‘유전자’ 운운하는 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지엠오가 확실한 콩기름도, 간장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갈수록 태산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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