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지역 공연예술단체, 뭘 먹고 사나? 1. 인천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의 현주소(상)

<편집자 주> 한 도시, 나아가 한 나라의 문화적 풍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기초예술과 예술가(단체), 예술현장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 늘 힘들다. 이런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지속됐다. 이들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뭔가를 시도한다. 아울러 ‘예술경영(Art Management)’이란 개념을 재원 조성, 홍보ㆍ마케팅, 조직(인력) 관리ㆍ운용 등, 단체 운영에 접목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지역 예술계에선 ‘기초예술 위기의 핵심은 예술현장의 붕괴’라고 보고 예술현장을 살려내는 것이 관건이라 여긴다. 상실된 예술현장을 되살리기 위해 예술가를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예술현장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술가와 예술현장 종사자들이 예술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예술이 생산되고 소통되는 현장의 당당한 주인으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제라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천지역 예술현장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동시에 타 지역의 예술경영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인천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인천지역 전문예술단체·법인 현황

문화예술단체 대부분은 임의단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해 이들에게 법인(재단ㆍ사단법인)격이나 단체의 성격에 관계없이 세제혜택 등의 제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문예술단체 또는 전문예술법인을 지정하고 있다. 아울러 전문예술단체ㆍ법인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시한 2016년 7월 15일 현재 전문예술단체ㆍ법인은 전국에 총950개가 있다. 단체 600개(63.2%), 법인 350개(36.8%)의 분포를 보인다. 활동유형별 현황을 보면, 공연분야가 769개로 80.9%를 차지하고, 전시분야는 66개(6.9%)다. 나머지 115개(12.1%)는 종합 또는 기타로 분류했다.

인천의 전문예술단체ㆍ법인은 32개로 전국의 3.4%에 불과하다. 서울이 208개(21.9%)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경남 111개(11.7%), 강원 86개(9.1%), 부산 82개(8.6%), 경기 79개(8.3%), 대구 78개(8.2%), 광주 62개(6.5%) 순이다. 인구 300만의 인천시와 인구 1250만의 경기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수도권의 전문예술 인프라가 서울로 집중돼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전문예술단체ㆍ법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하는 임의단체가 상당히 많기에, 전문예술단체ㆍ법인 수로만 지역의 예술단체 현황을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인천의 전문예술단체ㆍ법인들을 살펴보면, 미술협회ㆍ사진작가협회ㆍ예총의 인천 조직 등이 사단법인 형태로 있고, 재단법인으로 인천문화재단과 부평구문화재단이 있다. 나머지는 단체인데, 단체 중에는 연극협회 인천시지회와 연예예술인협회 인천시지회 같은 협회(2014년 기준)도 있다.

문화복지 역할과 자생력 확보 요구 높아져

▲ 2015년 12월 25일 콘서트하우스 현 후원콘서트를 연 아이신포니에타.<사진제공·아이신포니에타>
2013년에 (사)한국예술경영학회에 실린 논문 ‘전문예술단체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제언’을 보면, 이 논문의 공동 저자인 장구보ㆍ양준호는 ‘예술단체에 문화복지의 역할과 자생력 확보 등의 요구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단순히 창작을 기반으로 한 표현예술 활동으로서 가치나 몫은 이미 과거인 듯하다. 하지만 예술인과 단체는 여전히 경제적 여건과 조직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체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 정책이 선택과 집중, 다년 지원, 극장 상주단체 지원 등으로 점점 진화하는 듯 보이지만, 전문예술단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국문화관광진흥원이 수행한 ‘2009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문화예술인들의 취업상태와 관련해 ‘자유전문직’이나 ‘정규 고용직’이 줄어들고 ‘무직ㆍ은퇴’의 비중이 더욱 높아지고, 활동을 포함한 전체 수입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으며, 예술 창작활동으로 수입이 없는 예술가도 3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대졸과 대학원 재학 이상 문화예술인이 80%에 달한다는 것이다. 고학력 실업 형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7년 전 조사라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인천지역 예술인과 단체의 실정은 어떨까? 몇몇 공연예술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봤다.

부푼 꿈으로 오픈한 공연장, 늘 적자

“2004년에 창단하면서 10년 후에는 내 공연장을 갖고 싶었어요. 그리고 10년 후 꿈을 이뤘죠. 내 극장에서 내가 구상한 공연을 맘껏 할 수 있겠구나, 관객들과 이렇게 소통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신이 났죠. 그런데, 제가 좋아서 했는데 지금은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지난 6월 14일에 만난 조화현(48) ‘아이(i) 신포니에타’ 단장의 말이다. 조 단장은 공연장이자 카페 겸 식당인 ‘콘서트하우스 현’을 2014년 3월 동인천역 근처에 오픈했다. 그러나 콘서트하우스 현은 늘 적자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하는 외부 공연 수입을 쏟아 부어야하는 상태다.

“연주단체들이 보통 극장에서 원하는 공연만 하게 돼요. 촛불도 못 키죠. 관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관람하는 건 상상도 못하죠. 우리 공연장에선 그런 게 가능해요. 이런 걸 많은 사람이 요구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공연이 공짜가 아니면 오질 않더라고요. 최근엔 전국 순회공연을 한 ‘유리상자’의 박승화 콘서트를 유치했는데, 다른 지역은 모두 매진됐는데, 우리는 그러질 못했어요. 인천에서 티켓 값 5만원은 비싸다는 거죠. 같은 공연인데도 서울에서 하면 비싸다고 생각하질 않는데,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하는데,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우리 공연장이 더 좋은데,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이(i) 신포니에타는 클래식 실내악단이다. 거의 매주 기획공연이나 외부 공연을 하기에, 밖에서 보기엔 ‘잘 나가는’ 단체로 비춰진다. 하지만 실속은 그렇지 않다. 조 단장은 자신 이외에 연주자 8명과 스텝 2명의 급여를 챙겨야한다. 연주자들에겐 정기적인 기본급여와 공연수당을 준다. 재능기부 공연이라 수입이 없더라도 공연수당은 챙겨줘야 한다.

조 단장은 “공연을 하지 않아도 월 800만원은 고정적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이어서 “연말에 죽자 살자 벌어놔야 해요. 하루에 두 탕 뛸 때도 있고요. 그러지 않으면 봄까지 못 버텨요. 그런데 올해는 4~5월까지 기금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게 없었어요. 무지하게 초조했죠. 게다가 인천학생문화회관 상주단체도 떨어졌어요. 스텝 두 사람 월급이 가장 부담스러워요. 월급을 밀린 적이 없거든요. 건물 월세도 꼬박꼬박 냈더니 올리더라고요. 4~5월에 결국 대출을 받았어요.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게 가장 힘들어요”라고도 했다.

아이(i) 신포니에타는 경영과 마케팅 컨설팅을 받고 있다. 초록우산재단이 무료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1박2일 교육을 몇 차례 받기도 했다. 이 컨설팅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작품 제작비 마련이 가장 큰 숙제

▲ 2014년 거창연극제에서 연극 ‘늙은 배우의 노래’를 공연한 극단 ‘아토’ 배우들과 스텝들.<사진제공·아토>
기초예술 중에서 연극 활동이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12월 극단을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극단 ‘아토’의 이화정(45) 대표다.

이 대표는 서른두 살 때 다니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연극배우를 시작했다. 이어서 2004년에 (사)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준비한 뮤지컬 ‘청년 장준하’에 함께 했고, 그 이듬해 뮤지컬 ‘블루 사이공’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서른아홉에 연극을 정리하고 인연을 끊었다. 좋은 작품을 연거푸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기량의 한계를 느껴 갈등이 심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행복하지 않았고,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은 생각보다 견디기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그때 배우로서 연봉이 9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돈을 벌어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인하대 후문에서 장사를 했다. 가게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 서울에서 같이 연극하던 후배가 ‘인천의 한 극단에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배우 한 명이 모자란다’며 어딘가로 끌고 갔고, 그 길로 극단 ‘미르’ 창단을 함께했다. 그러나 예술가들을 대하는 게 쉽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겨 연극과 가게를 정리한 후 인도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다시 연극을 하자고 생각했고, ‘행복한 팀을 내가 만들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극단 ‘아토’를 만들었다. 상임연출가와 죽이 잘 맞았다. 2014년엔 거창연극제 본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인천에서 두 팀이 본선 무대를 밟았다.

‘아토’엔 소속 배우가 없다. 연출, 조명, 음향, 의상을 담당하는 스텝들만 구성하고, 배우는 4~5명이 네트워크 형태로 있다. 극을 무대에 올릴 때 모여 2~3개월 작업한 뒤 흩어졌다가 공연이 있으면 다시 모인다. 작품 활동이 없을 때는 보통 학교 연극부나 동아리를 지도한다. 재능기부로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예산을 세워 실비를 받기도 한다.

이 대표는 “배우들이 극단에 소속되는 걸 주저한 지 오래 됐다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배역도 맡아야하는 것에 타협하는 게 싫기도 하고, 극단 대표 입장에선 소속 배우들을 먹여 살리는 게 힘든 구조다”라고 말했다. ‘아토’는 별도의 사무실도 없다. 이 대표가 부모와 함께 사는 집이 사무실인 셈이다. 공연 연습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해 한다.

연극 하면 서울 대학로를 떠올린다. 그만큼 그곳은 경쟁이 치열하다. 이 대표는 “서울의 연극배우 개런티는 유명배우 빼고는 작품 하나 하면 20만원도 하고 50만원도 한다. 인천은 배우 층이 두텁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숙제는 작품 제작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관객 수입으로 제작비를 만회하기란 불가능하다. 티켓 값이 보통 1만원에서 1만 5000원 정도 하는데, 200석 규모를 꽉 채워 3회 공연해도 600만원에서 900만원이다. 보통 2~3개월 걸리는 작품 제작비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기업체의 경우 주목 받는 팀에 후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명성 있는 연극제에서 입상하는 게 중요하다. 그 자체가 극단의 수준을 높이고 홍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단체가 문화재단 지원금을 두드린다. 받으면 ‘다행’이고, 못 받으면 ‘불만’이다.

이 대표는 “예술이 갖는 사회적 가치가 분명 있지만, 왜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공통의 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천 지자체의 예술 지원 정책이나 교육청의 예술교육 정책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다음호에 계속)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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