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기지촌 출신 혼혈인의 삶과 희망 ⑤ 파주시 ‘어머니의 품’ 동산 조성 추진

<편집자 주> 인천투데이은 한국과 인천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평미군기지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기지촌 출신 혼혈인들의 삶과 그들의 절규를 담아내고자 기획취재를 진행한다. 이와 관련한 기사를 몇 차례 연재한다.

경기도 파주시는 양주와 한강을 경계로

[기획취재] 기지촌 출신 혼혈인의 삶과 희망

①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상)
②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하)
③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보강)
④ 입양기관의 서류 관리 부실 많아
⑤ 파주시 ‘어머니의 품’ 동산 조성 추진
김포시 등과 인접해있다. 북부는 임진강을 경계로 개풍군과 접하고 있다. 파주는 수도권 젊은 층이 자주 찾는 헤이리 예술마을을 비롯해 출판도시, 통일전망대, 영어마을 등으로 친숙한 도시다.

1914년 파주 인구는 2만 7206명이었고, 가구 수도 5818개에 불과한 평범한 농촌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파주에 주둔한 외국 군대가 가진 달러의 위력이었다.

‘미군들이 서울은 몰라도 파주 용주골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파주는 기지촌으로 유명했다. 파주의 기지촌은 1970년대까지 그 규모가 대단했다. 대형 미군 클럽 40여개, 이와 관련해 일하는 사람이 3000여명에 달했다.

기지촌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은 연풍리 용주골이었다. 파주에 처음 주둔한 미군은 7사단으로 신산ㆍ신현ㆍ운천ㆍ선유ㆍ법원ㆍ주내ㆍ연풍리 등에 자리 잡았다. 농업이 경제적 기반이었던 파주는 미군 주둔으로 서비스업이 번성했다. 이중 세탁업은 연간 300만 달러의 외화소득과 미혼여성 5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1971년 동두천의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고 파주에 있던 2사단이 동두천으로 이동함으로써 파주의 기지촌은 경제적으로 쇠락해갔고, 인구도 많이 줄었다. 파주 인구 변화를 보면, 1961년 15만 860명에서 1966년 19만 4876명으로 늘었다가 미군 7사단이 철수한 1971년에는 16만 3531명으로 줄었다.

파주엔 미군 범죄도 끊이지 않았다. 600원짜리 드럼통을 훔치다 사살된 5남매의 가장을 비롯해 빨래터에서 강간당한 후 총대에 맞아 죽은 여성, 강간당한 후 맞아 낙태한 임신부 등, 미군 범죄 피해가 속출했다. 훈련 중이던 미군 헬기가 마을에 떨어져 불바다가 되기도 했고, 농작물과 농경지가 탱크에 뭉개지기는 다반사였다.

파주시, 입양 혼혈인을 위한 ‘어머니의 품’ 조성

▲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반환 미군기지 캠프 하우스.<사진제공·파주시>
지난 9월 26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에 이재홍(59) 파주시장이 축하영상을 보냈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입양 혼혈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이 시장의 축하영상은 컨퍼런스에 참가한 입양 혼혈인 등에게 위로와 감동이었다. 축하영상 메시지는 이랬다.

“파주에서 자랐고 캠프타운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들을 알고 있습니다. 혼혈아동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친구이자 이웃이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의 중요함을 배웠고, 그 경험이 시민들을 보살피는 정치인이 되게 했습니다. 이 컨퍼런스를 계기로 파주시가 한국을 떠나온 이들의 고향이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따뜻함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는 제 2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파주에 ‘어머니의 동상’을 만들 것입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입양 혼혈인뿐 아니라, 아픈 상처를 가지고 아직도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어머니의 동상’을 만들겠다는 것은 컨퍼런스에 참가한 입양 혼혈인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축하 영상 상영 후 곳곳에서 ‘웅성웅성’거렸다.

미군 7사단이 빠져 나갔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파주는 군사도시였다. 미군기지만 6개가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한국군에 반환돼 폐쇄됐다. 조리읍 봉일천리 일원에 있었던 캠프 하우즈(Camp Howzeㆍ61만 3906㎡)는 공병 여단으로 53년간 이곳에 주둔했다. 미 보병 2사단 사령부와 공병 지원을 주 임무로 했다. 반환 이후 공원과 도시개발 사업이 예정됐다. 이외에도 캠프 자이언트ㆍ스탠턴ㆍ그리브스ㆍ에드워드ㆍ개리오언 등이 있었다. 2004년 이후 반환돼 현재는 폐쇄됐다. 한때 이화여자대학교 등, 대학 유치가 검토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부동산 경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수도권으로 인구가 계속 유입되면서 파주는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됐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LCD공장을 비롯해 출판단지, 신도시 등이 들어서면서 현재 파주 인구는 40만명을 훌쩍 넘었다.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파주는 미군이 떠난 기지에 입양 혼혈인 등을 위한 동산 조성을 추진 중이다. 분단의 역사로 인한 피해자인 해외 입양 혼혈인들에게 고향을 찾아주는 프로젝트로 ‘어머니의 품(Mother′s Army)’이란 동산을 조성하고 그곳에 상징적으로 ‘어머니 동상’도 건립할 계획이다.

이 ‘어머니의 품’ 동산은 캠프 하우즈에 조성될 예정이다. 파주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조성비는 파주시민과 입양 혼혈인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과거 기지촌 여성이나 입양 혼혈인, 퇴역 주한미군 등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지촌 여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될 터”

▲ 캠프 게리오엔 전경.<사진제공·파주시>
“과거 우리는 미군기지촌 여성을 양공주ㆍ유엔아가씨ㆍ유엔사모님 등으로 불렀다. 혼혈아를 튀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이들이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가가 성매매를 용인했고, 미국과 한국의 가교역할을 했고, 달러를 벌었던 여성들이 기지촌 여성들이었다. 개개인에게 입힌 편견을 벗겨내고, 사회가 그들을 끌어안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그 계기가 파주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주한미군 관련 대표적인 사진 작가로 알려진 이용남(60)씨는 파주에서 조성을 추진 중인 ‘어머니의 품’ 동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0년대 광산촌 사람들 사진작업을 시작으로 1980년대엔 민주화운동 사진작업에 몰두했다. 1988년 현장사진연구소를 창립해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주한미군 문제를 사진으로 알려냈다. 주로 파주를 근거지로 해 미군 관련 사진을 찍었고 국내외서 주한미군과 파주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여러 차례 열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미군과 기지촌 여성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뭔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미군이 가난한 농촌 사람들이 근근이 먹는 곡식을 훈련한다는 이유로 탱크로 뭉개는 것을 봤다. 이들은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진을 찍어 부대 앞에 전시하거나 한강에서 전시하면서 문제들이 하나둘 풀려나갔다. 어느새 사진운동가가 됐다. 사진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었고, 여론을 만들었다”

▲ 한국에서 주한미군 관련 대표적 사진 작가로 알려진 이용남(60).
그는 미군 관련 사진을 찍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 번이나 영어의 몸이 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농민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고, 심지어 카메라를 나눠졌다. 농민들은 미군이 훈련을 핑계로 농작물을 파손하면 그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과 인권이 지척에서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그것이 국가안보보다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와 한국 정부는 그들을 외면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지금도 찍고 있다”

이런 삶의 철학과 실천력 때문이었을까? 그를 따르는 후배 사진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30년 넘게 이 작업을 한 선배 작가로서 그에겐 아쉬움도 많다.

“한국에서 미군과 관련한 여러 사건, 범죄가 있음에도 관련 사진을 찍고 다큐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작가가 없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기록돼야하는데 너무 슬픈 거 아니냐?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화 이야기하는데, 편한 말씀이다. 나혼자 시각으로 찍는 것만큼 우를 범할 수 있다. 사진가들이 사회적 문제를 끌어안고 갈 수 있게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고 싶다”

그는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 반환되는 미군기지 문제를 지방자치단체들이 조급하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부분의 기지를 50년 넘게 미군이 점유했다. 대부분의 도시는 이 기지를 빼고 도시를 계획했다. 필요한 공원, 도로, 학교임에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도시들의 도시계획은 ‘짝퉁’인 셈이다. 이젠 미군이 점유했던 땅도 포함해 도시계획을 천천히 다시 수립해야한다. 반환된 캠프들에 대해 휴식년을 두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한편,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7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몽키하우스(=기지촌 여성 성병 치료소)’에 대한 괴담을 파헤치고, 여성의 인권을 짓밟은 세력을 추적했다. 이용남 소장은 이날 방송에 출연해 몽키하우스 관련 사진 등을 내밀며 “몽키하우스는 여성들에게 굉장히 수치스러웠을 것”이라며 “여성들은 속옷을 입지 않고 월남치마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취했던 태도가 매우 이중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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