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완전한 외국기업’ 되나?
“GM 철수 등에 견제장치 사라져”

 
금융감독원이 지난 2일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이 보유한 비(非) 금융회사 지분을 매각한다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한국지엠 지분 매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산은은 대우조선을 비롯한 비 금융회사 지분을 매각할 예정인데, 한국지엠 지분도 포함된다.

산은과 한국지엠 모두 현재까지 공식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모(母)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는 계속적으로 산은이 가진 한국지엠 지분 인수 의사를 밝혀왔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산은이 지분 매각을 결정하면, GM이 산은 지분을 전량 매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 산은은 2017년까지 지분 매각 시 GM에 우선 매각하기로 했다.

한국지엠을 두고 GM의 ‘먹튀(=먹고 튀어)’ 논란은 지속돼왔다. 글로벌 생산체계를 갖춘 GM은 유럽이나 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고, 필요에 따라 각 생산 공장의 물량을 조절해왔다.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쉐보레 차량 유럽 철수 결정으로 ‘먹튀’ 논란은 더 부각된 바 있다.

▲ 한국지엠의 쉐보레(Chevrolet) 대표 경차 ‘더 넥스트 스파크’

GM의 계속된 산은 지분 인수 의사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하던 2012년, 호샤는 팀 리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강만수 산은 회장을 만나 산은의 한국지엠 보통주와 우선주 전량(한국지엠 전체 주식의 17.02%)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GM이 산은의 지분을 인수하면 사실상 한국지엠은 GM의 100% 자(子)회사가 된다. GM이 현재 보유한 한국지엠의 지분은 계열사 지분까지 포함해 82.98%다.

당시 강만수 산은 회장은 이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과 홍영표(부평을) 국회의원 등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2012년 말, 송 전 인천시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시ㆍ도지사협의회 오찬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산은이 가진 한국지엠 지분을 GM에 매각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예로 들며 기술 유출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한 것이다.

산은은 과거에 한국지엠 지분의 28%까지 소유했다. 하지만 GM이 2009년 10월 한국지엠 주식 4219억원 어치를 인수(=유상증자)해, 산은의 소유 지분율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산은이 행사할 수 있는 비토권(=어떤 사안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 없어지는 바람에 ‘먹튀’ 논란이 일었다.

‘먹튀’ 논란이 거세지자, GM은 산은과 ‘장기 발전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약정해 비토권 행사 가능 지분율을 15%로 낮췄다. 산은은 현재 한국지엠 이사회 이사 세 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지엠이 독자 개발한 차량기술에 대한 한국지엠의 소유권 인정, 한국지엠이 GM과 공동 개발한 차량기술을 한국지엠이 7년간 무상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GM으로부터 얻어냈다.

자동차 산업에 후폭풍 전망

 
자동차 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부품 제조ㆍ판매ㆍ정비ㆍ할부금융ㆍ보험 등, 광범위한 전후방 산업과 연관을 가지는 특징이 있다. 아울러 첨단기술의 지속적인 개발과 성장이 이뤄져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엄호 속에서 성장해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지역구에 소재한 GM 공장의 안정적인 생산물량을 공약해 승리했다.

인천 경제에서 한국지엠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부평공장의 생산직과 사무직 종사자가 1만명이 넘는다. 여기다 인천지역 한국지엠 1차 협력업체만 50여 곳에 이른다. 중ㆍ대형 제조업체들이 이미 떠난 인천에서 쌍용차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지엠의 대외적 여건도 좋지 않다. GM의 중ㆍ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한 한국지엠이 GM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GM은 대형차 위주로 생산ㆍ판매한 미국에서 중ㆍ소형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해,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쉐보레 스파크ㆍ아베오ㆍ크루즈ㆍ말리부의 유럽 수출이 중지됐다. 2011년까지 한국지엠의 CKD(해외 현지공장에 부품ㆍ반제품들을 개별 포장해 수출) 물량의 절반이 중국으로 향했지만, 이젠 그 물량도 많이 줄었다.

특히 GM은 ‘앰버 프로젝트(Amber Project)’를 추진 중이다. 한국지엠은 한동안 브라질ㆍ인도ㆍ러시아ㆍ태국ㆍ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남아공 등에 소형차를 중심으로 한 완성차와 CKD 물량을 수출했다. 그러나 GM은 이제 이 시장들에서 맞춤형 저가 소형차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것이 앰버 프로젝트다.

이런 상황에서 산은의 한국지엠 지분 매각설은 GM의 한국지엠 철수 논란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 한국지엠은 제임스 김(James Kim) 한국지엠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내년 1월 1일자로 한국지엠 사장 겸 최고운영자(CEO)에 선임하고, 동시에 세르지오 호샤(Sergio Rocha) 사장 겸 CEO를 한국지엠 회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한국지엠 제공>

타이밍 절묘한 한국지엠 사장 교체

산은이 가지고 있는 한국지엠 지분이 GM에 넘어갈 경우, GM의 한국 철수 시 한국 정부당국은 어떠한 제동도 걸 수 없다.

친(親)자본 성향을 보이는 전ㆍ현 정부에서 산은은 국책은행에 걸맞은 영향력을 한국지엠에 행사한 적이 없다.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 때도 GM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 인해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생산물량이 많이 줄어 고용 불안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M은 지난달 20일 한국지엠 최고위급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제임스 김(James Kim) 한국지엠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를 내년 1월 1일자로 한국지엠 신임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에 선임하고, 동시에 세르지오 호샤 사장 겸 CEO를 한국지엠 회장에 임명했다.

한국지엠지부는 자동차는 물론 제조업 경험이 없는 제임스 김을 최고경영자로 선임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제임스 김 사장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사에서 구조조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제임스 김 사장의 전력(前歷)과 관련해 주시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송영길ㆍ홍영표, “한국지엠 관련 견제장치 사라져”

산은의 한국지엠 지분 매각설과 관련해 송영길 전 인천시장은 <인천투데이>과 전화통화에서 “인천과 대한민국 경제에서 한국지엠의 비중은 크다. 산은이 지분 매각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한 뒤 “산은 총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만나서 다각도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당(=새정치민주연합)에도 공식 요청해 산은의 지분 매각을 막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당 위원장도 “한국지엠과 관련해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정치권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산은의 이번 결정에 대해 우리 쪽(=한국지엠)에 어필이 없어,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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