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리화 반대 연속 인터뷰] ② 윤형선 인천시의사회 회장

<편집자 주> 지난 10일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했다. 의원급 의료기관 2만 8428개 중 1만 3951개(49.1%)가 파업에 참여했다. 인천의 경우 의료기관 361개, 914명이 동참해 파업 참가율 66%를 보였다.

전공의 400여명의 파업까지를 포함한다면 적지 않은 의사들이 파업에 동참한 것이다. ‘의료 영리화를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건강권을 지키려는 것’이라는 윤형선(53ㆍ사진) 인천시의사회 회장을 만나 파업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격의료, 의료전달체계 붕괴 초래…시범사업으로 문제점 검토 후 시행해야”

“작년 10월 정부가 ‘원격의료’를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어요. 원격의료란 의사와 환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행하는 의료행위로, 통신수단에 의해 환자 상태를 파악해 적절한 진료를 하는 것을 뜻하고, 원격진료라고도 합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는 11월부터 원격의료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죠. 이건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문제고 국민들이 직접 피해를 입는 문제거든요”

박근혜 정부는 전문가와 상의하지 않고 시민단체와 토론도 없이 원격의료를 밀고 나갔다. 윤 회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이 정책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리가 문제제기하는 건 세 가지예요. 원격의료의 문제점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의료는 빼라는 것. 마지막으로는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문제를 말합니다”

원격의료의 경우, 현재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원전 사고 이후 부분적으로 도입했지만, 유명무실하다.

“대면진료도 오진이 많아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장애인을 진료하려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처방해야하는데, 원격진료로 되겠어요? 게다가 원격의료 기구를 구입하고 유지보수 하는 데도 비용이 들잖아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윤 회장은 원격의료가 본격화되면 ‘의료쇼핑’이 확대돼 수시로 의사를 교체하고, 감기만 걸려도 대형 병원을 선호해 동네 1차병원은 몰락해 의료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져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격의료의 장점을 살리자는 건 동의해요. 단, 정부가 꼭 해야 한다면 시범사업을 하고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서 입법하자는 거예요”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 후인 12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로 ‘의사협회에서 걱정하는 사안들에 대해 국회 입법과정에서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 영리화 피해 환자들 몫…국민건강보험제도 개혁 필요”

▲ 윤형선 인천시의사회 회장
“두 번째로 영리의료 자법인 문제는 아주 심각해요. 의료기관이 자법인을 만들어 영리행위를 하겠다는 거잖아요. 혹시 ‘사무장 병원’이라고 들어보셨어요?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지만, 사무장이 병원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이 많아요. 불법인데 적발하기 쉽지 않죠”

이른바 ‘사무장 병원’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환자를 유인하는 진료행위와 과잉진료를 한다고 한다.

“가령 예방접종을 덤핑하면 국민들은 싸서 좋아하지만, 위험이 크죠.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에요. 영리화 규제를 풀면 병원에서는 이익을 내기 위한 모든 행위를 다할 겁니다. 서비스산업의 발전에는 동의하지만 의료의 특수성을 감안해 의료특별법을 만들라는 게 우리의 의견입니다”

윤 회장은 세 번째로 건강보험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1977년에 도입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보험 수혜자들이 소수였지만 12년만인 1989년에 국민개보험(國民皆保險=국민전체가 의료보험 가입 대상)이 돼 비용의 문제가 발생했다.

“유신시대인 1977년 국민들의 불신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는데 저부담ㆍ저보장ㆍ저수가 정책으로 그 내용은 빈약했죠. 보장성도 떨어지고, 저수가로 의사들도 고통분담 차원에 동참하라고 했는데 의사들이 당시에는 저항하지 않았어요. 일부만 적용됐으니까요. 하지만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 문제가 다른 거죠”

우리나라 국민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의사들은 의료행위를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의사가 늘고 있어요. 1년에 파산 신청한 개원의가 몇 백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의사들의 빈익빈 부익부도 심각합니다”

의료복지가 잘 돼있는 선진국은 대부분 국가 재정(=세금)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저부담 문제는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확대하고 싶은데 돈은 없으니까 의료수가를 올리지 않는다고 윤 회장은 말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늘리고 병실료 인상 등의 자구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 이전에 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라고 윤 회장은 강조했다.

“현재 상황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 채 의사와 환자의 갈등구조만 만들었어요. 환자와 의사가 한목소리로 정부에 요구해야합니다. 또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려면 국민들도 보험료를 적정하게 인상하는 데 동의해야합니다”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라는 단체는 건강보험료를 월 평균 1만 1000원 올리면 병원비의 90% 이상을 건강보험이 해결해주고, 어떤 병에 걸려도 전체 병원비가 연간 100만원을 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요한 재원 연간 14조원을 국민ㆍ기업ㆍ국가가 함께 보험료를 인상해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의료비 부담이 해소될 뿐 아니라 비싸고 지속가능성 없는 실손 의료보험에 더 이상 가입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민영화는 이미 된 것이고, 핵심은 영리화 문제”

총파업에 돌입한 대한의사협회를 제외한 보건의료 5개 단체(=대한치과의사협회ㆍ대한한의사협회ㆍ대한약사회ㆍ대한간호협회ㆍ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는 10일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 강행이 결국 의사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또한 의사협회는 정부가 진전된 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24일부터 2차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료 ‘민영화’와 ‘영리화’라는 말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회장은 “의료 민영화는 주체가 민간이라는 말인데, 지금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94%가 민간이에요. 영국은 80%를 정부나 사회단체 등 공공이 책임지고 있죠. 그래서 민영화라는 소리는 적절하지 않아요. 정부는 ‘민영화 괴담으로 실체 없이 불안만 증폭시킨다’고 하잖아요. 야당도 의료 민영화라는 단어를 빼고 영리화라고 합니다”

민영화는 이미 된 것이고, 핵심은 영리화라는 것이다. 무자비하게 수익만 추구하면서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적 건강권이 무너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파업은 국민들보다 우리 의사들이 더 원하지 않습니다. 평일에 환자를 보지 않으면 불안해져요.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환자를 볼모로 파업을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절대 아닙니다. 국민건강권을 지키고 건전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이해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의사들의 뜻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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