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인터뷰 ①] 유숙경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인부천지역본부장

<편집자 주> ‘국민이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 더 크게, 더 분명하게 말씀 드립니다. 정부는 절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팝업존’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글이다.

다음으로 아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첫 화면에 떠 있는 글이다.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 국민 서명운동, 보건의료노동자 총파업투쟁으로 의료민영화 막겠습니다’

정부도, 노조도 공식적으로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보건의료계는 총파업이라는 극단적 집단행동을 하려는 걸까. <인천투데이>은 의료민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모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3월 5일, 유숙경(43ㆍ사진)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인부천지역본부장을 만났다. 지난달 25일 의료민영화 반대 총파업투쟁을 결의하며 삭발한 그의 머리가 꽃샘추위로 인해 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보건복지부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건강보험이 있다는 거예요. 2008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전국의 병ㆍ의원과 약국은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적용해 건강보험환자를 진료해야함)를 완화하겠다고 했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로 이명박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그 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거죠”

계속 이어진 유 본부장의 논리대로라면, 정부가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발표한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대책’을 보면, 병원의 경영이 어려우니 이것을 호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드는 거라고 해요. 문제는, 병원의 경영을 호전시키겠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영리행위를 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이죠”

현행 의료법에는 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 영리행위를 할 수 없고, 수익이 나도 병원에만 재투자하게 돼있다. 그러나 투자활성화 대책은 이 규제를 풀어서 장사를 하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유 본부장은 지적했다.

“병원 돈벌이 하면 환자 부담 커지기 마련”

“영리화가 바로 민영화인 거죠. 분명 민영화의 일단계입니다. 투자활성화 대책의 핵심은 비영리 목적의 병원이 영리 목적의 자(子)법인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에요. 자법인은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주려면 돈을 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 부대사업인 의료기기ㆍ보조식품ㆍ임대 사업을 모(母)병원의 비호아래 운영합니다. 병원이 돈벌이를 하면 돈을 내는 대상자가 환자니까, 병원비가 필연적으로 올라가죠. 과잉진료를 받거나 비싼 의료기기를 사야 해요”

정부에서는 병원을 비영리법인으로 놔뒀으니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병원에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호텔ㆍ헬스케어ㆍ의료기구 사업 등을 자법인 설립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정부에서 건강보험에 대해 얘기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보장성이 63%밖에 안 돼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거나 민간보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간보험회사의 대부분은 대기업과 외국계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보험업법’ 개정을 요구해 건강보험 질병 데이터를 넘기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다. 기업이 질병 데이터를 공유하면 상품을 개발해, 국민이 보장성 낮은 건강보험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유 본부장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삼성’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의료민영화 추진하고 정부가 발을 맞춰간 꼴”

“삼성은 이미 계획을 갖고 있어요. 2007년부터 ‘의산(醫産)복합체’를 갖추기 위해 꾸준하게 준비해왔어요. 삼성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정부가 발을 맞춰간 꼴이죠”

의산복합체란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아널드 렐먼이 처음 사용한 말로 의사와 병원, 보험회사ㆍ제약회사ㆍ의료기기업체 등 사업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만드는 이해관계 네트워크를 뜻한다. 학계에서 대표적 의산복합체로 꼽는 곳이 ‘삼성’이다.

보험사(삼성생명)와 병원(삼성의료원)이 있으면서 동시에 의료기기업체(삼성 메디슨)까지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송도에 삼성 바이오로직스를 건립해 제약회사까지 확장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민영화에 다가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금만 바꾸어도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는 회사들이다.

2월 말,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 합리화와 원격의료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투자개방형 병원을 위해 투자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거죠. 송도국제병원이 처음일 거예요. 인천에 영리화ㆍ민영화를 추진할 조건을 갖추게 한 거죠”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6월 국회 회기 안에 의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노조는 6월 말에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조에서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나라 망치는 데 22조원 쓰지 않고, 보건의료에 1조원만 투자해보세요”

“지난달 백령도에 백령병원이 신축ㆍ개원했어요. 2000년에 인천의료원 백령분원으로 개원했는데, 시설과 장비가 노후화해 160억원을 들여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갖췄어요. 백령도에는 3000여명이 산대요. 주민 1500명과 군인 1500여명이 있어요. 정부가 원격의료를 얘기하는데, 도서지역 주민에게는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의사와 직접 상담하는 게 제일 좋아요. 적자가 날 것이 빤하지만, 인천시와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이지요. 보건지소를 확대하고 의료인들이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백령병원을 봐야 해요. 예산이요? 4대강처럼 이 나라를 망치는 데 22조원을 쓰지 않고 의료부분에 1조원만 투자해보세요”

보건의료노조에서는 현재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젊은 층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사회연대 개념이 젊은이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죠. ‘부모님이 아프면 그 부담을 젊은 세대가 책임져야한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내가 늙어도 치료받기 힘들어진다. 아픈 부모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자살하는 야만의 세월을 바꿔야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나 봐요”

유 본부장의 얘기를 들으니, ‘국민이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는 정부의 주장에 의심이 커진다. 저공에게 속는 원숭이가 되지 않으려면, 조삼모사의 내용을 면밀히 따지고 판단하는 걸 먼저 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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