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흔들리는 한국지엠, 출구는?(2)

▲ 한국지엠은 2011년 8월 25일 지역 총판사업자 5개사와 계약을 체결, 국내 권역별 판매시스템을 완성했다.(위) 아래는 2013년 1월 25~26일 제주도에서 열린 ‘쉐보레 전국 대리점 위크숍’ 사진이다.<사진제공·한국지엠>
국내 3대 자동차 회사인 한국지엠의 모(母)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 지엠)의 정책 변화로 인해 한국지엠에 고용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숙련된 노동력뿐 아니라, 지엠이 확보하지 못한 중ㆍ소형차량 생산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지엠은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한국지엠의 선전으로 2007년 7월 미 정부 주도의 ‘파산 보호’를 40일 만에 조기 졸업했다. 북미 자동차산업 회복 속에서 최근 10분기 연속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지엠이 한국지엠을 ‘하청기지화’하려는 움직임을 계속 보이면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주기적으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지엠은 생산물량의 90%를 수출에 의존하다보니 환율 등으로 인한 외풍으로 몸살을 자주 앓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엠은 한국지엠이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해온 물량을 생산하지 않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군산공장 1100명 구조조정 예상

유럽 수출 물량 생산 중단 결정의 직격탄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먼저 맞았다. 한국지엠이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해온 핵심 차량은 쉐보레 크루즈 등이다. 크루즈를 주력으로 생산해온 군산공장은 일거리가 크게 줄어든 실정이다. 지엠이 전 세계적으로 생산물량을 조절하면서 군산공장의 물량을 빼간 셈이다. 이에 따른 군산공장 여유인력과 관련해 한국지엠은 지난 23일 근무형태를 1교대제로 전환해 인력 1100여명을 줄이는 안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에 제시했다.

김선홍 군산공장 본부장은 “현재 물량으로 적절한 공장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인원감축 의사를 밝혔다. 양요찬 상무는 “정확한 인원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대략 1100명 정도 감소될 것이다. 일부 정규직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당초 이날은 군산공장의 미래발전 전망 등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회의 자리였으나, 회사 쪽은 인원감축 카드를 꺼낸 것이다. 감원의 1차 피해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산공장에는 비정규직 6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지엠은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 이번 구조조정에는 정규직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군산공장의 이러한 구조조정은 향후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 관계자는 24일 <인천투데이>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지엠의 생산물량 축소는 단시일 내에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조만간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내수 강조

세르지오 호샤(Sergio Rocha)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 6일 신년메시지로 내수시장에서 성공을 공언했다. 그는 내수시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호샤 사장이 내수시장 확대를 강조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우차’를 인수한 지엠은 그동안 한국 내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생산물량의 90% 이상을 수출한 것은 이를 보여준다. 한국지엠이 내수시장을 홀대한 정황도 많다. 자신감을 보이며 내수시장에 출시한 ‘쉐보레 트랙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엠은 ‘SUV’라는 제품 특성상 디젤 차량이 필요하다는 국내 의견을 무시하고 가솔린 차량만 출시해 차가운 반응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지엠 차량을 구매한 후 차량을 인수하기 위해 최장 한 달까지 기다려야했다. 내수보다 수출 물량 공급에 우선했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내수시장 확대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지엠의 현 판매시스템은 내수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0만~3000만원 대 외제차의 내수시장 점유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차’는 한때 내수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자동차와 자웅을 겨루기에 충분했다. 라노스ㆍ누비라ㆍ레간자 등 독자모델 3개를 동시에 출시해 10%이던 내수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25%까지 끌어올렸다. 당시엔 적절한 신차 출시와 현대나 기아차에 뒤지지 않는 판매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차가 한창 잘 나갈 때, 대리점이 전국에 850개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지엠 대리점은 295개에 불과하다. 현대가 399개, 기아차가 399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한국지엠 본사가 있는 인천에는 대리점이 몇 개나 있을까? <인천투데이>이 취재한 결과, 한국지엠 18개, 현대차 44개, 기아차 33개, 쌍용차 11개, 르노삼성 10개가 운영 중이다. 인접한 부천의 경우도 한국지엠 6개, 현대ㆍ기아차 각각 9개 운영 중이다.

대리점 수에서 밀리다보니, 지난해 12월 경인지역에서 한국지엠 차량이 1800여대 판매된 반면, 현대차는 3100여대, 기아차 2700여대 판매됐다. 인천에서 대우차 점유율이 40~50%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다.

한국지엠 대리점들 고사 직전

한국지엠은 내수시장 확대를 추진한다면서 대우자동차판매(주)와 거래를 끊고 국내 시장을 5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총판제를 실시했다. 그런데 한국지엠의 무관심과 지역총판들의 폭리 추구로 인해 대리점들은 고사 직전이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지엠은 지역총판들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존 차량판매수수료 14%를 2%포인트 줄였다. 대우차판매(주)와 거래했을 때보다도 차량 한 대당 2%포인트를 더 챙긴 셈이다. 지역총판들은 이 판매수수료에서 일정 지분을 떼고 나머지를 대리점에 준다.

지역총판들은 과거 자동차 산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었던 기업들이다. 캐피탈 등을 운영하면서 자동차 산업과 인연을 맺은 지역총판도 있지만, 자동차 판매 사업과는 무관한 기업들이다.

지역총판은 대리점 영업사원들이 차량을 판매한 수수료에서 일정 지분을 먹고 대리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평균 30억~4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보고 있는 반면, 대리점들의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욱이 지역총판들은 과거 대우차판매(주)가 했던 판매 활동이나 판매 촉진을 위한 각종 지원에 인색해 대리점들이 그 몫까지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우차 시절부터 인천에서 대리점을 운영해온 A 지점장은 “예전에는 영업사원들이 한 달 평균 4대만 판매해도 먹고는 살았으나, 지금은 두 배 이상을 팔아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다”며 “현대차 영업사원들보다 차를 더 파는데 돈은 더 적게 벌고 있다. 대리점이 힘들어 문을 닫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총판들은 투자비도 크지 않고 차량만 판매하면 일정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판매 촉진을 위한 특별한 지원 등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역총판들은 준수수료에 해당하는 지원금도 다 끊었다”며 “그럼에도 한국지엠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며 대리점들의 고충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B 지점장은 “지역총판들이 대리점 간에 과당경쟁을 시켜, 한국지엠 차량은 무조건 가격을 깎아 구매하는 차량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SS오토’는 직영대리점을 오픈하는 등, 기본 상도덕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 뒤 “한국지엠은 현대차에 비해 노동자 임금도 적게 주면서 매출원가는 현대차보다 높고, 이익은 적게 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국내에서 쉐보레 차량을 판매할 대리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리점주들은 지역총판뿐 아니라 한국지엠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대리점들과 한국지엠, 지역총판들은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리점들은 한국지엠이 공정거래법을 어기고 목표 할당 등을 강제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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