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인천지역 농산물도매시장의 실상

인천에는 농산물도매시장이 남동구 구월동과 부평구 삼산동, 두 곳 있다. 인천시가 서민에게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건립, 운영한다. 이곳에는 도매법인들이 입주해있는데, 이들은 중도매인들과 계약을 체결해 경매로 농산물을 공급한다.

<인천투데이>은 지난 호(2013.11.12.)에 도매법인이 출하인에게 지급하는 출하 장려금과 중도매인에게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문제 등을 다뤘다. 이를 두고 중도매인들은 ‘갑’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도매법인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중도매인들이 주장하는 ‘갑의 횡포’는 더 있다. 그 실상을 살펴봤다.<편집자 주>

▲ 인천시 북부지역에 안정적인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의 과일동 모습.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른 7일, 인천시 삼산농산물도매시장(부평구 삼산동 소재)의 새벽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활기가 넘쳤다. 김장용 배추와 무, 대파, 마늘이 곳곳에 쌓여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는 경매사들과 중도매인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큰딸이 올해 수능을 치르지만, A씨네 부부는 이날도 새벽 3시쯤 일어나 삼산농산물도매시장으로 나와 4시께 경매에 참여했다. 아침밥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경매 후 딸에게 전화해 “삶은 고구마 챙겨 먹고, 시험 잘 보라”는 격려밖에 할 수 없었다. 농산물도매시장에서 하루하루 몸을 놀려야 생계를 잇는 이들은 딸이 수능을 보는 날이라고 쉴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쉬면 단골 고객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이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장사를 정리했다.

‘오늘 가족들 외식이라도 하세요?’라는 기자의 말에, A씨는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A씨는 가족들과 두 시간 정도 삼겹살을 구워먹은 뒤 바로 자신이 운영하는 과일가게로 이동했다. A씨를 비롯한 중도매인 대부분은 도매시장 밖에서도 가게를 운영한다. 경매를 통해 물건을 사지만, 경매한 물건이 다 팔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 또는 본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 경매에서 매입한 물건을 원가로라도 팔아야 자금이 회전되기 때문이다. A씨는 이날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채소를 판매하는 중도매인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삼산농산물도매시장에서 채소 중도매업을 하는 B씨는 보통 새벽 1시에 집에서 나온다. 2시부터 진행하는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경매에서 산 채소를 주요 거래처에 넘기고 소매로 판매한 뒤 집에 돌아오면 오후 5~6시 무렵. 아이들은 아직 학교나 학원에 있을 시간이다.

씻고 밥 챙겨 먹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오후 8시께이다. 과일을 다루는 중도매인들이 채소를 취급하는 중도매인들을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중도매인들은 명절 때를 제외하고 주 6일을 이렇게 산다.

도매법인 소속 경매사의 횡포 “경매가 올려라”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명절은 특수한 시기다. 특히 추석 때는 거래량이 평소보다 몇 배 오른다. 그런데 올해 추석에 도매법인 ‘경인농산’ 소속 과일 중도매인들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른바 ‘갑’의 횡포 때문에 장사를 망쳤다.

‘경인농산’ 소속 과일 중도매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난 9월 둘째 주 ‘경인농산’ 소속 한 경매사는 과일 중도매인들에게 들어온 과일 가격을 더 올리라고 했다. 중도매인들은 보통 경매사와 관계 등을 감안해 경매사의 청탁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감내한다. 하지만 이날 들어온 포도 상태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선뜻 나서는 중도매인이 없자, 경매사는 물건 가격을 몇 차례 올리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경매를 중단했다. 그리고 경매사는 포도 상자를 발로 차고 집어 던지는 등의 횡포를 부렸다.<사진 참조>

▲ ‘경매가를 올리라’는 말을 듣는 중도매인이 없자, 경매를 중단한 경매사는 경매장에서 나온 뒤 포도 상자를 발로차고 집어 던지는 횡포를 부렸다.
중도매인들은 모든 경매를 중단하고 이 경매사가 속한 ‘경인농산’ 대표에게 면담 등을 요구하며 투쟁 아닌 투쟁을 벌였다. 경매사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양쪽이 합의한 정오에서야 문제는 일단락됐다. 도매시장에서 가장 바쁜 새벽 시간과 오전을 고스란히 버린 셈이다.

그날은 추석 대목이었다. 이날 과일을 사러온 소도매인 일부는 다른 도매법인인 ‘부평농산’과 ‘원예농협’ 소속 중도매인들이나 구월농산물도매시장(남동구 구월동 소재)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인천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 시행규칙 16조를 보면, 경매사는 고의로 경락가격을 높이거나 낮추는 행위, 경매순서 조작, 출하인 또는 구매자로부터 금품수수 행위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인천투데이>이 취재한 결과, 경매사들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의 아니었다. ‘원예농협’ 소속 중도매인 C씨는 “채소는 강매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약 대파가 올라왔는데, 시세 가격보다 나오지 않으면 (중도매인에게) 강매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경매사나 경매사가 속한 법인에 찍히면, 경매나 자리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털어 놓았다.

중도매인 D씨는 “하주(=출하인)가 도매법인과 관련한 사람이면, 경매사들이 물건 가격을 끌어올린다. 또는 경매사가 평소 관리하는 출하인의 경우도 경매사가 시세보다 가격을 높게 판매해준다”며 “어떤 사적 이익을 보는 것인지 고객을 관리하는 차원인지는 몰라도, 중도매인들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물건을 사거나 품질이 나쁜 채소를 사서 손해를 보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밖에 삼산농산물도매시장에서 과일 중도매인을 하던 E씨는 물건 일정량 이상을 매입하지 않았다고 도매법인 직원들에게 일곱 차례나 불려가 모욕을 당했다고 했다. 현행 ‘인천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에 따르면, 청과류의 경우 월 2000만원 이상만 거래하면 되지만 도매법인은 이런 횡포를 부린 것이다.

농산물 안전성 검사율, 타 시ㆍ도에 비해 현저히 낮아

농산물도매시장의 관리도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투데이>이 입수한 ‘구월ㆍ삼산농산물도매시장 관리사무소에 대한 감사’ 결과 자료를 보면, 농산물 안전성 검사가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지난해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의 반입 채소류 안전성 검사 비율은 1.29%(거래량 총 14만 9401톤 대비 1930건 검사)로 다른 시ㆍ도 농산물 도매시장 5곳의 평균 9.45%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전성 검사 비율이 낮음에도 안전성 검사 대비 부적합 비율이 타 시ㆍ도 도매시장의 평균 0.1%보다 0.64%가 높은 0.74%로 나타났다. 인천시민들은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농산물을 먹고 있을 뿐 아니라, 타 시도에 비해 질 낮은 농산물을 먹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구월농산물도매시장에 검사실이 확보되지 않아 삼산농산물도매시장으로 이동 검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로 인해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의 안전성 검사율이 동반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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