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⑭ 뼈때리는 한국사

우은진|뿌리와이파리|2023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엄밀히 말하면 ‘역사’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그것이 기록되었을 때부터를 기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역사 발전 이전의 과거는 역사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래서 역사 이전의 시대, 즉 ‘선사시대’라고 구획하곤 한다.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들은, 당대에 기록된 문서가 없기 때문에 여러 유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듯 문서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의 구획은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적어도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역사시대라고 해서 모든 일들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록된 역사를 통해 미처 기록되지 않은 역사들까지를 짐작하기가 좀더 수월할 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간접적인 짐작이라는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 기록된 내용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실에 부합한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다.

물론 검토할 수 있는 기록이 충분히 많다면 비교 검증을 통해 실제로 있었던 일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은 그 시간을 살아보지 못한 후대 해석의 소산일 따름이다.

여기에 좀더 의미심장한 근거 한 가지를 덧붙일 수도 있겠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이 아니라 그이들의 유골이라면, 그리고 거기에 그 어떤 문서 기록에도 뒤지지 않는 ‘정보’가 담겨 있다면, 그 정보는 ‘역사’로서의 의미가 덜한 그저 역사 이전을 짐작케 하는 유물의 일종일 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일깨우는 가장 큰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람의 뼈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언젯적에 살았던 사람인지뿐 아니라,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병을 앓았는지, 몇 살까지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등등, 온전한 유골이 아닌 화장한 뼛조각에조차도 적잖은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연구 방법론의 진전에 따라서는 이 목록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신뢰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생물인류학 연구자인 저자가 숱한 발굴 현장을 누비며 유골들에 담긴 정보를 추적하고 해석해낸 내용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역설적이지만, 뼈에 기록된 정보는 어쩌면 문서로 남은 기록보다 더 직접적일 수도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 물론 읽어내는 과정이 더 어려울 수는 있지만, 어차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문자로 기록된 고문서들도 해독법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 없는 암호문에 지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나아가 이 책은 유골로 남겨진 뼈에 대한 이야기, 또는 유골에 아로새겨진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주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의 행간에는 뼈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뼈에 기록된 정보를 읽어낼 방법을 진전시키려 분투해온 이들의 이야기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그저 저자의 연구 성과를 대중의 교양으로 되돌려주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에 덧붙여 이 의미 있는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으로, 최근에서야 마련된 법제도적 지원 등 더 적극적인 정책적 뒷받침의 방향을 넌지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키기에도 빠듯하고 숨가쁜 판국에 당장 무슨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유골을 보존하고 해석해내는 일이 얼핏 한가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의 쓸모만을 좇는 삶의 황폐함을 당연시하면서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람은 결코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닐 테니까.

그것이 이 책이 소개하는 유골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식의 범위를 넓히려 애쓰고 있는 이들의 ‘지금 여기의 삶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노력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여야 할 까닭이다.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