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에서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생각하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2023년 KPF 독일 로컬저널리즘 연수 과정에 참여해 9박 11일 일정으로 지방분권과 지역언론이 발달한 독일을 다녀왔다. 독일의 언론 역사는 약 400년을 자랑한다. 독일 언론 역사가 세계 언론 역사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독일의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을 제외한 신문은 약 350개에 달하고, 이중 306개가 지역언론에 해당한다. 독일은 강력한 지방분권에 기초한 연방제 국가이기에 지역언론의 토대가 탄탄하다. 매일 약 1350만부가 발행되고, 피디에프(PDF) 파일 형태의 온라인용 이페이퍼(e-paper) 발행부수만해도 약 260만부에 달한다.

이런 독일도 구글과 같은 대형 포털의 뉴스잠식과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뉴 미디어의 급속 성장에 따른 종이신문 구독 하향세, 그리고 최근엔 디지털콘텐츠 생성형 AI(인공지능) 등장으로 저널리즘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독일의 지역언론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연수 때 보고 들었던 내용을 정리해 연재하고자 한다. <기자 말>

[연재순서]

1.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2. 커뮤니케이션 박물관과 문자박물관
3. 독일신문발행인협회
4. 협동조합 정론지 타쯔
5. 베를리너 짜이퉁
6. 독일연방정치교육원
7. 솔류션저널리즘 본인스티튜트
8. 라이니쉬 포스트
9. 로컬 미디어 스타트업 피어눌
10. 도르트문트 공대 저널리즘학과

고려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 구텐베르크보다 206년 빨라

인류가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계승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의사소통과 기록이다. 처음엔 말로만 이뤄지고 전해지던 게 문자가 탄생하면서 의사소통과 기록이 수월해 지고 방대해졌다.

그리고 인류의 기록 문화에 변혁을 가져온 것은 종이 제작과 인쇄술의 발전이다. 필사에 의존하던 인쇄가 목판활자와 금속활자를 거치면서 인쇄술은 더욱 발달했고, 지식과 정보는 전 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특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한국(고려)에서 발명했는데, 금속활자의 발명은 인류 문명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인쇄 매체의 등장이다.

독일 베를린커뮤니케이션박물관이 소개하고 있는 한국 금속활자.(KPF 로컬저널리즘 연수단)
독일 베를린커뮤니케이션박물관이 소개하고 있는 한국 금속활자.(KPF 로컬저널리즘 연수단)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을 ‘한국언론진흥재단 독일 로컬저널리즘 연수’ 참가 기자단이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박물관 해설사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이 금속활자를 설명한 부분이다.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은 한국의 금속활자를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 해설사는 주저 없이 한국의 금속활자가 세계최초라고 설명하며, 중국의 인쇄술과 한국(고려)의 금속활자가 결합한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로도 이어졌다고 했다.

실제로 고려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 인류 최초로 알려진 고려 금속활자본은 1377년 제작한 불경 직지심체요절이다. 하지만 고려는 이 직지 보다 약 140년 앞선 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관련기사] [기획] 2022년 개관 인천 세계문자박물관에 ‘문자도시 인천’은 없어

고려 문신 이규보가 지은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고려 고종 21년(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을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상정고금예문은 현존하진 않지만 기록으로 보면 현존하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1377년)보다 143년 앞선다.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내 독일 금속활자 소개 코너.(KPF 로컬저널리즘 연수단)
독일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내 독일 금속활자 소개 코너.(KPF 로컬저널리즘 연수단)

면죄부 인쇄하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루터 종교개혁으로 반전

상정고금예문을 기준으로 206년이 흘러 유럽에서 금속활자가 등장한다. 1440년 신성로마제국(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국 엑슬리에서 만든 구텐베르크 전기에 의하면, 구텐베르크는 1397년 혹은 1398년에 마인츠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은 하급 귀족으로 마인츠를 지배하는 대주교 밑에서 돈을 찍어내는 금속 세공 관리로 일했기 때문에, 구텐베르크는 이때 주물, 압축 등의 금속 세공 기술과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마인츠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명할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을 지닌 가톨릭교회 3대 대교구 중 하나에 속했다. 3대교구 대주교는 마인츠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쾰른 대주교이다.

로마제국이 서로마제국에서 동로마제국으로 바뀌고, 9세기 초(800년)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 해당하는 중유럽에서 다시 탄생한 신성로마제국은 재정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를 처음엔 이 면죄부 인쇄에 사용됐다.

그 뒤 금속활자 기술은 성서 보급에 확대됐다. 라틴어로 돼 있는 성서는 필사로 전해지는 성직자만의 전유물에 해당했다. 하지만 금속활자가 등장하면서 성서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신부가 아닌 사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 보급 확대는 16세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 등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95개조로 반박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아울러 루터는 금속활자를 이용해 성서를 인쇄해 보급했고, 라틴어로 된 성서를 고대 독일어로 번역해 인쇄하며 독일어의 토대를 마련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금속활자 덕에 들불처럼 번졌다.

1377년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경을 복제한 영인본 사진.(Pixabay로부터 입수된 lsz님의 이미지)
1377년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경을 복제한 영인본 사진.(Pixabay로부터 입수된 lsz님의 이미지)

독일보다 200년 앞선 금속활자 인쇄술 보유하고도 기득권에 막혀

이후 인쇄술의 발달은 의사소통의 발달을 가져왔고, 독일에선 신문의 발달로 이어졌다. 독일 신문발행의 역사는 400여년에 이른다. 금속활자를 구텐베르크보다 200여년 더 빨리 만들고, 인류사에 가장 훌륭한 문자 한글까지 만든 한국에서 신문 발달이 늦어진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세도정치를 겪으면서 낡고 무능한 양반 중심 신분체제가 계속됐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조정이 조보 발행에 필사를 고집하고, 민간에서 인쇄해 발행한 민간조보가 왕에 의해 폐간된 것은 곧 조선 시대 지배계급이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금속활자 인쇄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고, 신문 발행의 필요성도 제기됐고, 필요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양란과 세도정치를 거치며 신분제를 공고하게 다지며 지배계급의 권력과 이익을 옹호하는 데만 혈안이 돼 언론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커뮤니케이션 역사 기능 더해졌으면

인천에도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과 성격이 비슷한 국립 세계문자박물관이 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인천에 건립된 첫 국립박물관이다. 문자 전문 박물관으로는 프랑스 샹폴리옹 박물관,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조성된 박물관이다.

인천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한 프랑스 샹폴리옹 박물관과 갑골문자·한자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한 중국 문자박물관과 달리 세계 문자 55종을 전시·연구 한다는 점에 차별성이 있다.

인천세계문자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됐고, 총면적 1만5650㎡ 규모이다. 주요시설은 전시시설, 교육·연구시설, 수장고, 강당, 기념품가게, 식·음료가게, 주차장 등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실에 마련된 '훈맹정음' 전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실에 마련된 '훈맹정음' 전시.

인천세계문자박물관은 관련 희귀 유물 543점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문자를 전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문자는 인류가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만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말은 곧 권력에 해당한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백성들이 문자를 몰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애민정신에서 출발했다. 문자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다. 소통은 막힌 것을 없애서 통하게 한다는 뜻이다. 의사소통은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인식하는 데 막힘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이며, 권력자나 지도자에게 소통은 시민을 향해 열려 있는 귀이며, 특히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장치이다.

인천은 상정고금예문을 만들고, 팔만대장경 재조장경도 만들었으며, 규장각이 있었고 훈맹정음도 만든 도시이며, 해방 후 최초로 ‘대중일보’라는 언론이 태동한 도시이다.

국내엔 아직 베를린 커뮤니케이션 박물관 역할을 하는 곳이 없으니 이참에 세계문자박물관이 문자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왕조실록 등 세계기록문화유산을 자랑하는 한국이 IT강국으로 거듭난 한국의 지식정보 전달 역사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같이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로컬저널리즘’ 교육 과정 일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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