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의 흥행으로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유린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이른바 도가니법이라 불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2011년 12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에는 사회복지법인의 이사 정수를 최소 5명에서 7명으로 증원하고, 법인 이사 정수의 ‘3분의 1’ 이상을 사회복지위원회,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 2배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선임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법인과 시설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됐다.

이사회는 법인의 사업과 운영, 예산 전반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관이다. 이사장의 지인이나 가족, 친척 등으로 이사회가 구성된 경우가 많아, 이사장 독단에 의한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이에 외부추천이사제도 도입으로 이사회 운영이 투명해지고 법인이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조항은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장애인 폭행 등 인권유린으로 언론의 지탄을 받은 인천지역 법인들이 정관을 미리 개정해 당분간 외부추천이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법인들은 정관을 미리 고쳐 이사 정수를 7명으로 늘린 뒤, 이를 일반 이사로 채웠다. 따라서 이들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외부추천이사 선임은 이뤄지지 않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예상됐지만, 법인을 지도ㆍ감독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손 놓고 있었다는 데 있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해 일부 시설의 인권유린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하면서 인천시에 외부추천이사제도 시범 운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는 ‘아직 법 시행 전이라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법인이 법 시행을 앞두고 정관을 개정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는 입장만 나타낼 뿐이다. 본지가 지난 25일 확인해본 결과 시는 외부추천이사제도 시행 방침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시는 1월 18일부터 외부추천이사 후보자를 공개모집하고 있다. 담당공무원은 500여명의 후보자 인력풀을 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가 소재한 광주시 광산구는 이미 지난해 외부추천이사제도를 도입했다.

인천에서 남동구와 중구, 부평구가 외부추천이사 후보자를 공개모집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시설법인의 관할 지자체인 연수구는 현재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유린문제가 발생한 시설 폐쇄와 법인 허가 취소라는 지자체의 조치는 시설 생활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한 것이다. 2007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사회복지법인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된 지 한참 뒤였다. 인천시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관심과 지지로 개정된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게 심혈을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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