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⑨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장하준|김희정 옮김|부키|2023년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저자의 표현을 고스란히 옮기자면, 참으로 “괴상한” 책이다. 경제학을 다루는 내용임에 틀림없는데도, 각 장의 제목에는 마늘부터 초콜릿까지 온갖 군침 당기는 식재료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요리 책은 물론 아니다.

더러 이 재료들을 둘러싼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또는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그야말로 경제학적으로 조망하는 이야기도 풍성하게 곁들여지고는 있지만,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도 아니다. 달리 말해 요리는 이 책의 ‘주제’가 아닐뿐더러 실은 ‘소재’조차도 아니다.

하지만 가령 “사람들이 가난한 건 게으르기 때문일까”나 “기회의 평등만 보장하면 공정한 세상이 만들어질까” 같은 기초적인 문제로부터 “복지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혜택을 베푸는 제도일까”나 “기업은 과연 주주들의 것일까”처럼 제법 묵직한 문제들, 나아가 “자동화가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 갈까” 또는 “이제 제조업은 끝났고 서비스업이 대세라는 주장은 옳을까”처럼 미래의 전망과 결부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다루는 다채로운 주제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세계적으로 저명한 저자의 이름값에 비춰 그다지 볼품없는 앙상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의 말투를 고스란히 빌리자면, 영양가는 있을지 몰라도 도무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도 맛이 없는 음식처럼.

대체로 이 책이 다루는 열여덟 가지 식재료와 그것들을 매개로 풀어내는 경제학의 주제들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관계가 별로 없다. 오로지 저자의 체험과 배경 지식을 버무린 상상력이 절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 딱딱하고 까다롭게만 느껴지기 일쑤인 진지한 주제들에 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고 말 그대로 ‘맛있게’ 내용에 빠져들게 하는 크나큰 매력이 있다.

나아가 자극적인 MSG로 부실한 내용을 가리려는 꼼수를 ‘스토리텔링’이라는 그럴듯한 개념으로 포장하는 유행이 한동안 횡행하기도 했던 씁쓸한 정황을 되새기자면, 이 책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진정한 역할과 중요성을 환기하는 교과서적인 실증 사례라 할 만하다.

요컨대 양념이 훌륭하다는 칭찬은 어디까지나 주재료기 충분히 믿음직스러울 때나 의미가 있을 터이다.

그 점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건, ‘편견 넘어서기’ ‘생산성 높이기’ ‘전 세계가 더 잘살기’ ‘함께 살아가기’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로 이어지는 이 책의 짜임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화두들은 경제학이 세상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어떤 답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의 오랜 고민과 모색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 책은 그 단면을 솜씨있게 포착한 스케치에 충실할 뿐, 본격적인 탐구서는 아니다.

그것을 구한다면, 저자의 다른 책, 가령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경제학에 관심은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든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는 망설여지는 초심자들이 낯가림을 다독이며 경제학과 친해질 계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느 분야든 입문서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미덕일 터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석학이 일반인은 범접하기 쉽지 않은 고담준론이 아닌 이토록 알차고 흥미진진한 입문서를 쓰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도 음미할 대목이다.

전문지식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데 지식인의 가장 큰 존재가치가 있을 터이다. 그렇게 최고급 셰프의 밥상은 푸짐하게 차려졌고, 우리는 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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