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⑦ 자본주의 세미나

김규항|김영사|2023년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경제라는 주제를 들이대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림직한 질문이 있다. 가령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려면, 돈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부(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애초의 질문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어렵잖게 깨닫게 된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기 때문이다. 남이 애써 만들어놓은 것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는 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그보다 더 고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만져보지도 못할 큰 돈을 버는 사람들도 적잖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같은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누군가는 그보다 훨씬 적은 대가를 치러도 된다면, 그것은 과연 떳떳한 일일까.

이왕이면 더 넉넉하게 살고 싶은 욕망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남들보다 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건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할 일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느껴진다면, 조금은 다른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가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빡빡하게 일을 하는데도 살림은 왜 늘 쪼들리는가’ 또는 ‘기술이 발전해서 예전보다 더 싼값에 만들게 된 물건들이 이리도 많은데 물가는 왜 오르기만 하는가’, 나아가 ‘왜 어떤 사람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대가를 치르고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등등이 정말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꼬리를 무는 숱한 질문들에 답할 작은 실마리라도 얻으려면, 마르크스의 ‘자본’에 크게 기대게 된다. 그리고 그건 흔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이념’에 동의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구조와 작동법칙에 관련해 독보적인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이 이 두껍고 딱딱한 데다가 방대하기까지 한 책에 곧바로 접근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좀더 쉽고 간명하게 간추려 놓은 친절한 해설서를 찾게 마련이지만, 그조차도 막상 읽으려면 ‘머리에 쥐가 나’기 일쑤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정평이 나 있는 저자의 이 책이 반가운 이유다. 200쪽 밖에 안 되는 분량인데도 중요한 핵심만을 솜씨있게 간추려낸 공력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묵직한 느낌의 다른 해설서와 가장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원전의 권위에 압도된 나머지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그 내용을 설명하는 데만 급급해 보이는 책과는 달리, 독자의 눈높이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조망하며 ‘자본’ 자체가 아닌 그 책이 분석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눈길이 닿도록 안내한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자본’의 내용을 충실히 간추리고 있음에도, 굳이 ‘자본 세미나’나 ‘자본 (쉽게) 읽기’가 아닌, ‘자본주의 세미나’라는 제목을 붙인 까닭이 짚어진다.

더구나 ‘세미나’란다. 그건 혹시라도 이 책의 서술이 지나치게 간명한 나머지 불친절하게 느끼는 독자가 있더라도, 약점이기는커녕 오히려 비슷한 내용의 다른 어느 책과도 비길 수 없는 장점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이 책은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모든 것에 답을 제시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이 책이 다루는 주제에 관해 독자가 스스로 궁리할 수 있게 이끄는 안내서다.

자본주의를 일종의 ‘자연 질서’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자본주의가 고장났다고 여기면서 어디를 어떻게 고치면 더 나아질지에 관심을 두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단호하다.

그건 ‘고장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속성 그 자체이며,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유토피아’를 그려내지도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사회’를 향한 소박한 소망마저도 자본주의 안에서는 이룰 길이 없다는 처연한 진실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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