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평화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조현근

"우리는 통일될 때까지 평화공존 하면서 교류, 대화도 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굳혀나가야 한다” 이 말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회견문 중 일부다.

‘평화공존’은 서해5도 주민에게 생존의 문제다. 서해5도 접경수역에 대한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은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모두 평화공존을 지향하나 방법론에 차이가 있다.

방법론은 크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안보를 기반으로 한 ‘선을 지키는 평화공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를 기반으로 한 ‘면을 만드는 평화공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해5도 주민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고자하며, 지난번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에 이어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다룬다.

서해5도의 특수성 노린 중국어선 조업에 사실상 주권행사 불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당시 북미 간 핵무기 위기는 미국의 무력제재 가능성까지 거론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서해5도 수역도 1999년 제1차 연평해전과 북의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선포, 2000년 북의 서해5도 통항질서 선포,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등 기존 남북 간 군사 충돌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했다. 바로 불법 중국어선이다.

그동안 남북이 바다 위에 그어놓은 선들은 중국 어민에게는 보이지 않는 선이자, 중국어민의 조업은 남북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도 통제가 어려운 예측 불가능한 행태였다. 무엇보다 서해 NLL 인접수역에서 중국어선의 조업은 또 다른 군사적 긴장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1993년 무렵부터 서해5도 어장에 출몰한 중국어선은 자원남획과 어구까지 약탈했다. 참여정부 시절 영해 침범으로 한국 해경에 나포된 중국어선은 점차 증가해 2004년에 96척이나 달했다. 그사이 연평도 꽃게어획량은 2003년 2182톤에서 2006년 149톤으로 급감하며 한국 어민들의 불만도 고조에 이르렀다.

이 시기 한국은 새로운 해양 질서에 직면해 있었다. 1994년 유엔해양법(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발효로 시작된 해양경계획정은 국가 간 영유권과 군사적‧경제적 이해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었다. 한중일 3국은 해양경계획정 전까지 잠정적 대안으로 1999년 한일어업협정, 2000년 중일어업협정, 20001년 한중어업협정이 발효된 상태였다.

한중어업협정은 서해5도 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협상 당시 한중 양국은 북한을 제외한 중국의 산둥반도 성산각 동단에서 백령도 북단과 NLL을 협정의 북방한계선으로 설정했다. 협정문 제9조는 “잠정조치수역 북단에 위치한 일부수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현행 어업활동을 유지하며 어업에 관한 자국의 법령을 타방체약 당사자의 국민과 어선에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했다.

국회 비준 당시 정부는 어업협정의 성과로 “서해5도 부근수역에서 중국어선 조업을 전면 금지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협정 이후 중국어선은 지금까지 여전히 조업 중이다. 최근 중국은 서해에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동경 124도까지 확장해 군사 훈련도 하고 있다.

바다의 선.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한국의 섬. (출처 Bloomberg 누리집)
바다의 선.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한국의 섬. (출처 Bloomberg 누리집)

동북아 해양 벨트 연결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 비전

한중어업협정이 규정한 것처럼 한국 정부는 서해5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이용한 중국어선 조업에 대해 사실상 물리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중국에 외교적 대응 강화, 해경 단속 강화, 처벌강화 등 세 가지 원칙만 반복하고 있다.

노무현은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사에서 21세기를 해양의 시대로 정의하고 “육지에서 바다를 보는 협소한 시각을 벗어나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볼 줄 아는 여러분과 함께 21세기 조국의 번영과 발전이 걸려 있는 바다를 향해 꿈을 꾸고, 준비하며, 도전해 가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의 도전은 대통령 당선 이후 동북아 해양 벨트를 연결한 ‘동북아 물류 비즈니스 중심국가’란 비전으로 구체화 됐다.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주최한 서울‧인천‧경기 토론회에서 ‘동북아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가가치 개척과 남북관계 개선이란 두 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북정책 핵심은 평화였다.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인 평화 그 자체를 남북 관계의 목적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철학은 남북 관계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다자안보 체제를 기반으로 한 평화공존과 경제번영의 동북아 시대로 확장됐다. 이 일환으로 그동안 남북 간 불안정한 지위로 분쟁의 바다가 된 서해 접경 수역에서 평화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다.

취임 후 대외적으로는 서해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따른 우발사태 위기 대응 실무매뉴얼과 북한이 NLL 침범 시 위기관리 대응 방안을 지시했다. 이를 토대로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남북은 제3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과 통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 예방을 위한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에 관한 합의’도 체결했다.

또한, 2005년 7월 제1차 남북수산협력 실무회의에서 서해수역 내 중국어선 배제 및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서해공동어로’도 합의했다. 그러나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전까지 수차례 개최된 남북 군사당국회담에서 서해 공동어로수역 문제를 협의했으나 북측의 NLL 재설정 주장으로 성과 없이 종료됐다.

서해평화지대가 10.4남북정상 공동선언의 핵심

남측은 대내적으로 서해5도 어로 보호의 운영상 미비점을 보완하고자 2004년 11월부터 2004년 5월까지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해수부, 해경, 국방부, 해군 등 관계기관과 어선 통제 조정을 협의했다.

참여정부 당시 해수부와 해경의 입장은 어선에 대한 규제업무는 현재까지 서해5도 어장 조업통제 업무를 해군이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고, 해경의 전력부족과 접경지역의 군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어로한계선 이북에서 어장 조업은 군이 통제하고 어로한계선 이남 특정해역만 통제하겠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반해 국방부와 해군은 어로한계선 이북어장에 대한 통제는 해경 고유의 업무로 “해경이 중국어선은 단속하면서 우리 어선을 통제하지 않겠다는 것은 서해교전과 같은 상황 발생 시 책임소재에 따른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며, 향후 NLL 근해 중국어선 조업 증가로 인해 서북도서 어장 황폐화에 따른 어민들의 조업구역 북상 확장 및 중국어선 퇴치 요구 등 모든 민원처리 책임을 군이 직접 담당하게 되는 문제점이 대두되며, 어로한계선 이북해역의 중국어선 나포 등 제3국 어선도 해군이 직접 담당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된다”며 해경이 조업을 통제하고 해군이 지원하는 개념을 피력했다.

국무조정실은 해수부와 국방부의 이견이 계속되자 ‘향후 남북 간 정치‧안보 상황의 개선 또는 관계부처의 입장변화 등을 고려해 관계부처는 현행 선박안전조업규칙상 각 기관별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중국어선 공조단속과 꽃게조업 합동대책반 운영 등 상호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며, 해수부와 해경은 해경 함정과 인력 확충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다.

이후 서해5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북정책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과 1년여의 물밑 교섭 끝에 2007년 10월 남북 간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노무현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기존의 NLL을 유지하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과 평화공존을 위한 방안이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결과 대국민 보고에서 “서해 해상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군사적 대결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관점으로서 이 서해 문제를 우리가 풀어나가자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서해평화지대가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대한민국 노무현(왼쪽)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출처 노무현 사료관)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대한민국 노무현(왼쪽)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출처 노무현 사료관)

박정희와 노무현 모두 서해5도의 ‘평화공존’을 강조

서해평화지대는 서해5도~옹진반도~해주만~한강하구를 공간적으로 연결하고 다양한 남북경협 사업을 집적한 평화경제형 공존정책이다. 핵심사업은 인천~개성~파주~해주를 잇는 서해공동경제특별구역 조성, 해주 직항로 개설, 해주공단 건설, 공동어로구역 지정, 해상평화공원 조성, 한강하구의 공동 이용이었다.

이중 공동어로수역 지정은 어로한계선 이북의 NLL을 기준으로 등가면적 원칙을 적용해 설정하고, 남과 북은 서해에서 우발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적 보장 조치를 협의키로 했다. 어로한계선 이북수역은 서해5도 주민한테만 조업이 허용된 지역으로 당시 조업어선은 약 300척에 달했다.

정부는 서해수역의 평화적 이용으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정착 계기 마련, 중국어선의 과잉어획으로 고갈된 꽃게 등의 어족자원 회복, 조업수역 확대로 어업인 소득증대를 기대했다.

이처럼 서해5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박정희와 노무현 모두 ‘평화공존’을 말했다. 지도자는 그 시대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재의 서해 NLL의 현실은 냉전시대 군사안보의 힘에 의한 ‘선을 지키는 평화공존’과 신 냉전시대 경제안보의 힘에 의한 ‘면을 만드는 평화공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서해5도 어민에게 평화란 조업의 자유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평등이다. 이들에겐 일상에서 안심하고 먹고사는 문제가 평화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서해5도 평화공존 정책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요,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오직 평화가 목적이다.

지도자에게 서해5도 평화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떠한 상황이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어떠한 상황이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진전이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2007년 10월 2일 오전 평양으로 출발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경이 담긴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역사는 단번에 열 걸음을 나가기 어렵다. 이번에 한 걸음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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