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은 유난히 빨리 오는듯한 느낌이다. 영농일지를 들여다보니 개화가 평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것 같다. 기후위기를 실감한다.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

올해처럼 꽃이 빨리 피면 과수농가들은 초긴장 상태다. 결국 집 과수원에도 사단이 났다. 몇 일전 영하의 날씨에 팥알 만했던 살구가 전부 녹았다. 속상한 마음에 옆 동네 이장 형님한테 전화했더니 사정이 마찬가지다. 평균생산량의 20%도 생산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 같았으면 막걸리 몇 병 사들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울고불고 했겠지만 이제는 이 또한 자연의 섭리고 인생의 한 부분이란 걸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다.

세종시에서 복숭아 농사짓는 형님네 농가는 아예 냉해로 꽃이 다 떨어졌고, 심지어 죽는 나무들까지 있다니 이만하길 다행이라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삶이 팍팍할 때 정치가 국민과 민생을 살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다.

경북에선 ‘과메기도 빨간색만 입으면 당선된다’는 말

국회는 지난 10일부터 나흘간 2003년 이라크파병 논의 이후 20년만에 국회 전원위원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선 논의를 했다.

살구가 다 얼어 죽어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민주당 경북도당 관계자 몇 분과 서울에 머무르면서 국회 본청에서 열리는 전원위원회 논의를 직접 지켜봤다.

사실 경북에서 민주당을 지지한다거나 민주당 소속 정당 활동을 한다면 안타깝다는 반응부터 보인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그 정점에 서 있는 지역이 경북이다. 그것도 경북의 농촌지역이다.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불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경북에서 민주당은 진보정당 보다 더 ‘빨갱이’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당원으로 가입해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민주당 ‘단톡(단체대화방)’방에 초대해도 대부분 빠져나간다. 그나마 남은 분들도 닉네임으로 본인을 감춘다.

경상도에서 빨간당 즉, 국민의힘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장사를 하는 분들은 영업에도 막대한 타격을 받는다. 선거 때면 초등학교 동창모임도 나가기 싫다고 한다.

그래도 몇 몇 분들은 고단하게 살 각오로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었지만 정치는 바뀌지 않고 오히려 견고해지는 지역주의 앞에 절망한다.

실제 지난해 6월 있었던 대구광역시 시의원 선거구 29개중 선거구 20개에서 무투표 당선(68.9%)이 확정됐다. 경북은 도의원 선거구 55개 가운데 17명이 무투표로 당선(30.9%)됐다. 물론 전부 국민의힘 소속이이다. 오죽하면 경북에서는 ‘과메기도 빨간색만 입으면 당선된다’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이야기가 있다.

대구·경북에서 선거는 시민과 도민에게 더 이상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공고히 하는 민주적 절차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광주광역시 시의원 선거에서도 선거구 20개중 11곳이 무투표 당선(55%)됐으니 광주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리라.

그래서 22대 총선은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경북에서 살고 일하면서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경북에서 민주당이 30%를 득표하면 의석수의 30%를 보장하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득표한 만큼의 의석수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표를 줄이고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또 영호남의 농어촌이야말로 일당독식 선거제도의 최대 피해지역이니 도시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농어촌에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했지만 지역주의에 기댄 양당정치로는 한국 정치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갈수록 정치혐오와 갈등만 증폭하고 있다.

‘희망이 있는 고통은 아름답다’는 말을 좋아한다. 경북에서 민주당 지지자로 살아간다는 게 혹은 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로 살아간다는 게 고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희망’조차 없어 현재의 고단함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적용할 이번 국회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서 바라는 건 하나다. 경북 민주당이 어려우니 국회의원 몇 석 달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고단한 삶이지만 기꺼이 견딜 수 있는 ‘희망’을 달라는 것이다.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비록 살구는 다 얼어 죽었지만 그건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제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정치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대구·경북에서 선거가 절망을 공고화하는 민주적 절차가 돼야하는가. 지역주의에 기댄 양당구도의 선거제도, 이제는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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