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필자는 00학번이다. MZ세대의 끄트머리에 끼고 싶지만, 실제로는 누나,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X세대의 뒷줄 어딘가에 있는 막내 X세대인 듯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기억하고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한 세대라면 X세대가 확실하겠지만 말이다.

한필운 변호사
한필운 변호사

X세대인 필자가 대학생시절 만났던 변호사 선배들(1990년에서 2000년 즘까지 사법고시에 합격한 선배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녔다. 사회적으로 큰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변호사가 되면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변호사는 매우 희소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에 발맞추어 변호사 수를 확대하면서 지난 20년간 변호사는 그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당연히 국민이 받을 수 있는 법률서비스가 향상됐고,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경력의 변호사가 활동하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에 변호사 광고가 등장하고, 의뢰인은 아주 쉽게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인 변호사는 친근한 이미지가 많다. 이제 변호사는 흔하고, 특별한 직업이 아니다.

흔하면 싸고, 귀하면 비싸니, 변호사 많아져 국민은 편하다

지난 10일부터 내년 22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당초 국회의장이 제시한 권고안에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현행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감안하면서도,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는 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발로 불발됐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의원 정수를 300명 그대로 정하고 선거제 결의안을 의결했다.

현재 국회 전원위원회는 300명 기준 결의안을 토대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 추가로 여당 대표는 의원정수를 10% 줄이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의원 정수 감축일까.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다. 현재 국회의원은 1인당 국민 약 17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이는 단원제를 채택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1인당 약 2000명의 공무원을 감시해야 하고, 약 2조1300억원 예산을 심사해야 한다. 이러한 수치도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심지어 1948년 제헌국회가 의원 1인당 인구 10만명을 대표했던 것보다도 후퇴했다.

국회의원 한 명에게 연간 7억원을 쓴다고 해도, 일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국정감사만 잘 해도 그 이상의 재정효과가 있다. 국회의원이 많아지면 더욱 다양한 인재가 국회에서 일하게 되고, 정치에 타협과 토론이 증가한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국회 내 양당정치의 극한 갈등에 따른 정치 혐오를 일으키는 상당 부분이 개선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잘하는 게 없으니 특권을 뺏어야 한다는 입장이더라도 의원 수 증대가 답이다. 같은 크기의 권한을 더 많은 수가 나누어 갖는다면, 그들의 권한은 더 작아진다. 300명이 나누어 갖던 권한을 400명이 나누어 가지면, 더 작은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비례성 확보

선거제 개편의 핵심은 비례성의 확보다. 30%대 지지를 받는 정당 두 개가 전체 의석을 반반씩 나누어 갖고, 서로 상대방만 욕하면 다음 선거도 안전해지는 현재의 정치 지형은 국민에게 독이다.

매번 선거에서 40%에 이르는 사표가 발생하고, 찍을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안 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덜 싫은 후보를 찍는 현행 선거는 참된 의미의 선거가 아니다. 양당의 막장정치, 극한의 대결 정치를 종식시키는 비례성 확보가 중심이 되어야지, 의원을 줄이네 마네가 논의의 중심이 돼선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진영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 하기 바쁜... 국민들께서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소방관 출신 민주당 소속 오영환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에게 고한 고백이다. 혐오정치, 막장정치, 국민에게 외면 받는 정치를 개선할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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