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지난 9월 13일 인하대 강간살인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인천여성연대와 경남지역 페미니즘 동아리 연합 ‘아우르니’는 이날 법원 앞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하대 강간살인사건은 명백한 여성혐오범죄이며 구조적 성차별을 기반으로 한 젠더폭력이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음주상태, 초범, 대학생 등의 감형 사유 없이 그에 상응하는 법적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가 무색하게 하루 만에 또 젠더폭력범죄가 발생했다. 누구나 이용하는 지하철 신당역에서 야간근무를 하던 20대 여성노동자가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이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였다.

2차 고소 때에는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같이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했었고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직위해제 상태였으나 근무 일정을 조회할 수 있는 공사직원 신분이었다.

여성에게는 캠퍼스도 직장도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여전히 이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고 성폭력 범죄에서 남성 가해자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문화가 팽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 818명 중 남성은 669명으로 82%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2만2476명 중 여성은 85.8%이다. 남성이 가해자의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적 문제를 무시하고 성범죄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신당역 사건은 3년 동안 직장 내 성폭력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고소를 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왔던 피해자가 대응에 안일했던 서울교통공사와 수사기관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여성과 노동자를 둘러싼 구조적 차별과 혐오, 그리고 이를 무시했던 사회와 정부가 살해한 사건이며 ‘구조적 젠더폭력’이자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산업재해’이다.

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제’가 열렸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광장을 채웠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여성으로, 노동자로, 일터에서 희생된 피해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발언 참여자 중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나라는 지속 될 수 없으며 목숨을 잃어야만 이 사회가 찔끔 앞으로 나가는 게 이해할 수 없다”라는 발언은 잊히지 않는다.

강남역, 인하대, 신당역 사건까지 여성들은 젠더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이런 외침에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로 답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을 예고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주장에서 보듯이 현 정부는 성평등 정책 추진 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사건을 보복범죄 등의 단순 강력범죄로 치부하며 “여성과 남성의 이중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성평등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등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정부와 여당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 나왔다. 이번 개편안 역시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은 아닐까 의심되는 이유다.

젠더 편가르기로 지지율 올릴 생각은 그만 좀 접고 어떻게 하면 젠더 불평등을 줄여야 할지 생각 좀 하자. 젠더폭력으로 죽어가는 여성에 대한 예방책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더 강화해야 할 여성가족부를 없애면 정말 길이길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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