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천지부’는 지난 2012년 창립했다. 어느덧 10년이다. 필자는 인천지부 사무처장으로 업무를 맡은 지 4년이 조금 넘었다.

한필운 변호사
한필운 변호사

민변 인천지부는 35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역사에 가장 마지막으로 탄생했다. 그런 인천지부가 회원들의 열정과 성원으로 10주년을 맞이하게 됐으니 감회가 새롭다.

민변은 1세대 인권변호사에 해당하는 이병린, 이돈명, 한승헌,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와 2세대 인권변호사라고 할 수 있는 조영래, 이상수, 박성민, 박원순 변호사 등이 시국사건 변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민변은 1984년 서울 망원동 수재사건과 1985년 구로동맹파업 사건 공동변론을 계기로 결성한 ‘정법회’와 1988년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청변’이 힘을 모다 민주화를 위한 통합 활동을 펼치기로 하고, 회원 51명이 1988년 5월 28일 발족한 단체이다.

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설립했고, 지난 35년간 이 목적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민변 인천지부는 인천과 부천 등 수도권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창립했다. 인천, 부천, 김포 지역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들이 기본적 인권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지난 2012년 인천지부를 창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천 민변은 지난 10년간 공익인권소송 약 50여건을 맡아 수행했다.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 등과 연대하며 많은 활동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특별한 예로 2019년 서구, 강화, 영종도 지역에 발생한 ‘적수사태’ 당시 피해를 입었던 주민 약 5400명을 대리해 인천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과, 2019년 부평역광장에서 ‘소수자 혐오세력에 의한 퀴어축제 무산’을 막기 위해 인천퀴어축제 마지막 퍼레이드까지 인권지킴이로 활동한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어쩌다 민변 회원이 됐는지 되돌아보면 특별한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고등학교 때 민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설레긴 했다. 야학선생이라고 으스대던 대학시절에도 법조인이 되면 민변 회원이 되리라고 으레 생각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마치 미뤄뒀던 군에 입대하듯이 민변에 가입했고, 전역일자 없는 민변 생활에 말뚝을 박겠다고 다짐하고 지금까지 민변 소속으로 살며 일하고 있다.

나를 민변으로 이끈 사람이 전태일 열사인지, 조영래 선배님인지 알 수도 없고, 왜 지금까지 인천지부 일을 하면서 거창하게 1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해 놓고 휴일에 행사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끈기 있게 뭘 하지도 못 하는 성격인데 4년 지부 사무처장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좀 차갑고 의무감이라고 하기에는 좀 뜨거운 이 특별한 감정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모든 변호사가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이므로 민변 변호사라고 해서 특별한 변호사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민변합니다’라고 하면 ‘정치하시려나 보네요’라고 말하거나, 편향된 사람쯤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어 가끔은 헛헛하기도 하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정권 인사를 ‘민변이 도배했었다’라는 취지로 말씀까지 하시던데, 그럴 때는 ‘저희 정치단체 아닌데요’라고 말씀드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변은 나에게 ‘하얀 등대’ 같은 길잡이다. 항구에 등대 두개가 있다. 하얀 등대는 나가는 배 오른쪽에, 빨간 등대는 들어오는 배 오른쪽에서 안전한 항로를 안내한다.

민변은 필자가 법조인으로서 세상에 나아갈 때, 하얀 등대 같은 길잡이다. 변호사 경력이 쌓이다보니 가끔 적당히 타협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가진 민변 동료와 연대하는 단체들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도 한다.

2018년 민변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창립회원 한승헌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권변호사라 스스로 말하지 말라. 내가 의롭다 하여, 다른 이를 배척하지 말라. 민변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와 다른 이유는 ‘사서 고생’하기 때문이다.”

인천시민 여러분, 민변 변호사는 사서 고생한다고 하니, 앞으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장’에 ‘인천 민변’을 많이 불러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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