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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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일본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외교장관이 만났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취임 후 첫 방일이기도 했던 이 자리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해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2017년 12월 이후 재개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었다. 새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 개선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로 강조돼 왔다고 하더라도 일본 측의 사죄와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재차 촉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본 언론으로부터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를 평가받는 굴욕까지 당하면서 박 장관은 방일 내내 수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국 측이 이렇게 저자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외교장관회담은 큰 성과 없이 끝났다. 오히려 ‘전쟁 가능한 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개헌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꼴만 됐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뀐 것이 없다. 강제동원 문제 해법에 있어서도 한국 정부의 ‘선 해결책 제시’가 먼저라는 주장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꿨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분향소에 찾아가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고, 도 넘은 찬사를 보냈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고 애쓰는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적어도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끌려갔고, 사망자와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의 피해 사실을 감추며 사도광산의 역사에서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라고 외면한다. 이곳이 오래된 금광이라는 사실만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군함도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강제동원 관련 역사를 숨기려는 일본의 시도는 멈출 기미가 없다. 그때마다 한국 사회에 반일 여론이 들끓지만 한시적이고 감정적이다.

정부 내에 대책팀이 구성되긴 해도 지속성을 갖지 못한 탓에, 논리를 생산하며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 일본의 역사 왜곡 세력에 대응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국내 언론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하다. 그 사이에 노령의 피해자들은 계속 사망하고, 유족들 조차 그들의 기억을 상실해 간다. 강제동원은 피해자 본인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겹쳐 있다. 그래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가족의 문제이고, 마을의 문제이고,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좀 더 정밀한 보존대책을 수립할 수 있음은 물론, 국제적으로 유산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에 따라 지속적인 관리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집착하는 건 이런 목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세계문화유산의 이름을 빌려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에 빈틈을 만들고, 그걸 통해 논리적 우위를 점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세계문화유산이란 구호 뒤에 숨은 일본 정부의 셈법이다.

인천육군조병창 역시 세계문화유산의 대상으로 거론 중이다. 학자들이 인천육군조병창과 미군기지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연결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이곳을 독립적으로 등재시키는 건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역사적 의미와 가치면에서도 독자적인 등재보다는 타지역 유산과의 연대를 통해서, 더 나아가 북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 유산과의 결합을 통해서 등재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건 미군기지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부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현장을 보지 않은 채 가치를 논할 순 없는 일이다. 다행히 미군기지는 완전 개방을 준비 중이다. 부평연습장을 거쳐 백년 간 이어 온 역사 공간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졌다.

예견된 일이지만 미군기지의 개방은 지역의 갈등을 촉발했다. 그 와중에 유네스코 등재 얘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건 그것이 선전구호의 하나처럼 등장해 공허하게 반복되며 피로감을 쌓는다는 점이다.

물론,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이 곧 역사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광고 영상을 트는 것처럼 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속성을 갖추며 역사적인 논리를 구축하고, 유산의 가치를 점검하며, 해결 가능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자료를 모아가는 게 순서다.

지역 내의 갈등을 해소시킬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과정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가능성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연못에 돌팔매질을 하듯이 툭 던져버리는 구호는 오히려 가야 할 물길을 막아 버린다. 그것은 일본의 셈법과 다를 바가 없다. 인천육군조병창은 일본의 군수공장이고, 캠프마켓은 미군의 군사기지다.

그 안에 있던 한국인들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오히려 역이용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직 역사에 등장하지 못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발굴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총독부의 망령이 살아나 박수칠 일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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