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45. 동물실험①

조카가 강화에 있는 우주센터로 현장학습을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받은 책자를 내게 건넸다. 책을 보면서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장면을 보고 멈칫했다.

우주선에 탄 강아지 한 마리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개는 ‘최초의 우주개’라 불리는 ‘라이카’. 뭔가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그림에서 강아지는 웃고 있지만, 사실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어”라고 말해버렸다.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폭풍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돌아오지 못했고, 지금 라이카는 어디에 있나? 아주 혼란스러운 듯했다. 순간, 실수했구나, 싶었다. 조카는 여섯 살. 아직은 삶의 아름다움을 봐야할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사실대로 얘기해주었다.

1900년대 초부터 우주 공간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서 옛 소련과 미국 간에 그야말로 우주개발 전쟁이 일어났다. 어딘 가에 있을지 모를 에너지를 찾아, 또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로켓과 위성을 경쟁적으로 쏘아 올렸다.

과연 우주 공간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가. 초기 우주 개발자들에겐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사람 대신 동물이 그 실험대상이 되었다.

처음으로 우주선에서 죽음을 맞이한 동물은 ‘알버트’라는 벵골 원숭이였다. 1948년 미국이 알버트를 태운 로켓을 발사했는데, 우주선 안에서 산소 부족으로 죽고 말았다. 이후 미국은 10년 동안 일곱 차례 동물을 태워 우주로 내보냈지만, 살아 돌아온 동물은 없었다.

1957년 옛 소련은 인류 최초로 궤도를 따라 도는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 달 만에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이에 연구자들은 개를 태워 우주에 내보낼 계획을 세운다.

당시 모스크바 항공의학연구소에는 3년 전부터 훈련을 받아온 개가 있었다. ‘쿠드랴프카’라는, 버려진 거리의 개였다. 쿠드랴프카는 여러 마리의 개들 중,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고 영리해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할 개로 선발됐다. 쿠드랴프카는 이때부터 ‘라이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스푸트니크 2호 선실은 라이카가 겨우 앉았다가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라이카가 우주에서 살 수 있도록 산소 발생기와 이산화탄소 제거장치가 달려 있었고, 물과 음식을 공급하도록 설계됐다. 또 라이카의 맥박ㆍ호흡ㆍ체온 등을 감지하는 전극이 있어 라이카의 생존 정보를 지구로 송신하도록 했다.

1957년 11월 7일, 이날은 소련 혁명기념일이었다. 라이카는 정든 연구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선실에 올랐다. 발사는 성공했다. 한 달 간격으로 두 개의 인공위성을, 그것도 생명체가 탑승한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이다. 얼마 후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라디오로 짖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영리한 개 라이카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푸트니크 2호에는 처음부터 귀환 장치가 없었다. 소련은 라이카가 일주일 정도 생존했고, 독극물이 든 먹이를 먹고 편안히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라이카는 무중력상태인 우주에서도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숨을 거뒀다. 사람들은 라이카의 죽음을 슬퍼했고, 라이카를 ‘최초의 우주개’로 기리게 됐다.

그런데 2002년, 뜻밖의 자료가 공개됐다. 러시아 생물학연구소의 한 박사가 당시 라이카에 대한 데이터를 발표한 것이다. 자료는 발사 직후 라이카의 심장박동수가 세 배 이상 빨라졌음을 보여줬다. 라이카는 사실 가속도와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과 공포 속에 버티다 결국 5시간 여 만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조카에게 이 모든 얘기를 해줄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하지만 조카는 어떻게 라이카가 처음부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 건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냉혹한 어른들의 세계를 여섯 살 조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슬퍼하는 조카에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했다. 그래서 화분에 라이카 그림을 묻어 장례식을 치러줬다. 조카에게 이 얘기를 해준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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