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교육기관, '능력시대 시대 노동자' 강의 진행
한국 노동시장 '가족주의'... 개인 이익 주장 어려워
돌봄 노동 저평가로 보상·사회적 평가 개선 미비
돌봄, 사회 존속 위한 '필수 노동' 가치 인정해야

인천투데이=김샛별 기자 | 코로나19 이후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저평가 받고 있다. 돌봄 역시 능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천의 노동자교육기관은 지난 9일 ‘키워드로 미리 보는 2022 노동 트렌드’ 강의를 진행했다.

이번 강의는 ‘능력주의 시대 노동자’를 주제로 한국 노동시장의 가족주의와 돌봄 노동을 주제로 다뤘다. 온·오프라인 동시에 진행했으며, 홍찬숙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강사가 강의를 맡았다.

강의하고 있는 홍찬숙 강사.(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강의하고 있는 홍찬숙 강사.(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태생적·환경적·문화적 우연성 영향 '능력주의' 어려워

홍찬숙 강사는 능력주의는 자신이 노력한다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위계가 대물림되는 신분제와 달리 능력주의 사회 안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지위를 성취할 수 있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태생적, 환경적, 문화적 우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찬숙 강사는 “태생적 우연성은 장애와 지능, 신체구조 등 타고난 특징을 뜻하며 환경적 우연성은 계층과 계급, 각종 차별 구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적 우연성은 한 사회가 어떤 것을 능력이라고 정의하는지를 뜻한다”고 부연했다.

한국 노동시장 특징 ‘가족주의’... 서구 ‘개인주의’와 구별

홍찬숙 강사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을 ‘가족주의’라고 설명했다.

유교 가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인보다 집단과 공동체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주의 중심의 서구 노동시장과 구별된다. 서구 노동자들은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자유롭게 주장한다.

홍찬숙 강사는 “서구 계급연대는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며 “노동자 개인과 부르주아 개인의 힘의 차이를 느낀 노동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이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 노동시장은 집단과 공동체 위주다. 이러한 집단과 공동체 내 신분 위계는 여전히 살아 있다.

홍찬숙 강사는 “같은 직장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존재하고, 임금을 측정할 때도 서열과 연고가 중요하다”며 “연공서열제는 ‘이 회사에 얼마나 오래 있었냐’를 따져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인성(人性)은 회사 방침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며 조직에 잘 적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청년 세대는 능력보다 연고를 중시하는 방식을 불공정하다고 여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본인들을 배제하는 원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능력주의를 주장하고,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교육기관은 ‘키워드로 미리 보는 2022 노동 트렌드’ 강의를 진행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교육기관은 ‘키워드로 미리 보는 2022 노동 트렌드’ 강의를 진행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돌봄 노동 수요 늘어났지만 평가·보상 개선 미미

기혼 여성의 경제 활동이 증가하면서 아동 돌봄 문제가 부상했다. 이로 인해 경제 활동 중 아동을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점차 늘었다. 

노인 돌봄 문제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떠올랐다. 한국은 2000년 65세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이후 2017년 65세 인구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됐다. 

이렇듯 돌봄 노동 수요는 꾸준히 느는 추세지만 종사자들의 사회적 평가나 보상, 지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홍찬숙 강사는 “돌봄 노동이 저평가돼 있어 사회적 평가나 보상 등이 개선되지 않는다”며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되는 도덕적인 의무로 여기고, 이러한 인식이 임금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화로 인한 노동 소멸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돌봄 노동’이다. 돌봄 노동은 대면 활동이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 노동의 디지털화에 집중할 때 이윤을 얻는 쪽은 기업이다.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계속 ‘저임금 단순 서비스직’으로 남게 된다.

“돌봄, 사회 존속 위한 필수 노동... 가치 인정해야”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

홍찬숙 강사는 “돌봄 노동은 사회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성 역할 규정에서 벗어나 돌봄 노동은 여성만 하는 것이 아닌, 남성도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바탕에는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인에게 돌봄을 의지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돌봄 노동이 저평가 받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성장 중심의 사회가 아닌 ‘삶’ 중심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와 동시에 한국 노동 시장에서 노동권 강화를 위해서 탈집단주의와 탈자유주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찬숙 강사는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돌봄과 타인 의존성 등을 완전히 배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을 남성하고 다를 바 없는 동등한 주체로 인정함과 동시에 돌봄을 모든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능력과 노동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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