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교육기관, '나노 사회시대, 노동자' 강의 진행
“나노(nm)크기 만큼 파편화한 대한민국 노동자들”
기업단위 교섭 한계‧‧‧ 산별‧중앙집중 단체교섭 필요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의 입법자로 조합원만의 이익을 대변할 게 아니라 단체협약의 영향을 받는 모든 노동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천 노동자교육기관은 지난달 23일 ‘키워드로 미리 보는 2022 노동 트렌드’ 강의를 진행했다.

이번 강의는 ‘나노 사회시대, 노동자’가 주제였다. 한국 노동조합의 현실과 한계를 짚어보고 ‘정의와 연대를 위해 노동조합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로 다뤘다.

강의는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열렸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의를 맡았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나노(nm)크기 만큼 파편화한 대한민국 노동자”

이정희 연구위원은 한국의 노동환경을 나노 사회 시대로 표현했다. 노동자들이 나노 크기(10억분의 1m)만큼 작게 파편화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국내 노동조합 조직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4.2%에 그쳤다. 전체 조합원 수는 약 280만명이다.

지난 2019년 노조 조직률(12.5%)보다 1.7%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 약 85%에 달하는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자는 노조를 조직하고 구성해 집단성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주와 대등 관계를 취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특수고용 등 고용형태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게 파편화한 상태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편화한 노동자들은 노조로 집단화하지 못한 채 개별화됐다"며 "집단성과 대등성을 확보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노동조합 조직율과 조합원 수(사진제공 고용노동부)

기업단위 교섭 한계‧‧‧ 산업별‧중앙집중 단체교섭 필요

2020년 기준 노조 조직률을 사업장 별로 살펴보면 공공부문은 69.3%인 반면, 민간부문은 11.3%에 그쳤다.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을 보면 노동자 300명 이상 사업장 49.2%, 100~299명 10.6%, 30~99명 2.9%, 30명 미만 0.2%로 나타났다. 

30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현저하게 낮게 나타면서, 전체 노조 조직률이 14.2%에 그쳤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민간‧공공, 사업장 규모 등에 따라 노조 조직율 차이가 크다. 민간이 운영하며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노동조합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과 같은 파편화한 노동자를 규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기업 단위 교섭이 중심인 한국 노동시장에선 쉽지 않다"며 "산업별, 중앙집중적인 단체교섭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단위 교섭은 노조 활동을 기업이란 울타리에 가둔다.  또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데 그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기업이란 울타리를 넘어 파편화한 상태로 있는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이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기 위해선 산별노조와 같은 중앙집중적인 단체교섭 체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별‧중앙집중적 단체 교섭이란 지난해 9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보건복지부가 타결한 노정교섭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확산 후 최전선에서 버텨온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보건의료 인력 확충과 노동조건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하며 투쟁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기준 마련 ▲감염병 대응 의료인력에 생명안전수당 지급 제도화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 책임의료기관 지정 운영 ▲공공병원 신축·이전신축·증축 지원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수(ratios) 제도화 등을 정부가 받아들이며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보건의료노조 사례는 의미가 크다. 기업 단위를 넘어 다양한 의료 산업 종사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리고 성과를 거뒀다”며 “기업 단위를 넘어 연대한 노동자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중앙집중 단체 교섭이 산업 전반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임을 확인한 값진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노동자교육기관 회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교육기관 회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사진제공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이란 노‧사 간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

이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비조합원의 이익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대표와 사업주는 단체협약을 한다. 단체협약은 노동환경, 노동자의 의무, 사용자의 의무 등을 규정한 노동자와 사용자 간 협약으로, 국내법과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이 연구위원은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은 조합원에게만 적용하지 않는다. 단체협약은 조합원, 비조합원 모두 적용 받는다”며 “노조가 조합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단체협약을 적용 받는 모든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은 국회의원이 제정한다. 하지만 국민 모두에게 적용한다. 단체협약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이라는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단체협약의 입법자라고 자각하고 조합원만을 대변하는 역할을 넘어 비조합원을 위해서도 노력한다면, 노조는 단체협약에 적용 받는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산업별‧중앙집중 단체 교섭도 마찬가지다. 노조가 단체협약의 입법자라는 자각은 조직화 못하고 파편화한 노동자들을 묶어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