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서툴고 문화가 다른 이유 역사에 있어”
한국서도 이방인, 현실은 동포 아닌 외국인 취급
“고려인 공동체 키워 지역사회 도움 되고파”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인천 연수구 연수동에 함박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몇 년 전부터 고려인이 집단으로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고국’ 한국으로 이주했다. 6000명 정도가 함박마을에 산다.

고려인은 1860년대부터 농업이민이나 독립운동 등을 이유로 연해주나 사할린 등지로 이주해 거주하던 한인들이다. 이들은 1937년 소련 스탈리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국가(CIS)로 강제 이주 당해 척박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았다.

이들은 스스로 ‘고려인’이라고 부르면서 고국에 대한 애정을 다음 세대를 계속 이어가며 품어왔고, 고국인 한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어느 다른 동포들보다도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어보단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설 명절을 양력으로 지내고 이제 한국은 잘 지내지 않는 한식을 큰 명절로 보내는 등 언어와 문화에 차이가 있다.

함박마을에 거주 중인 고려인 이빅토르(40)씨는 고려인주민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머니가 한국어를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했다.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범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2013년 한국으로 이주했다.

이 빅토르 인천함박마을고려인주민회 회장(40)
이 빅토르 인천함박마을고려인주민회 회장(40)

“한국어 서툴고 문화가 다른 이유 역사에 있어”

한국말에 능통한 중국 등 다른 나라 동포와 비교하면 러시아어만 쓰는 고려인들이 얼핏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전승되지 않은 배경엔 고려인들만의 슬픈 역사가 있다.

이빅토르 씨의 증조부모 세대는 한반도 최초의 ‘이민세대’이자 ‘개척세대’였다. 19세기 말 함경도 농민들은 지방관료와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 러시아 프리모스크에 해당하는 두만강 넘너 연해주로 건너가 그곳의 황무지를 일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들이 러시아에 있었지만 언어와 풍습은 조선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인들이 말과 글을 잃게 만드는 비극은 1937년 일어났다. 그해 소련의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한인 18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당시 한인들은 시베리아 열차 화물칸에 실려 연해주로부터 약 6000㎞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 이주 당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소련은 학교에서 고려인에게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한민족의 노래를 부르는 것마저 막았다. 인의 문학작품도 검열해 강제이주를 연상케 하는 표현을 모두 삭제했다.

이 씨는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은 더 이상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학교에선 러시아어밖에 쓸 수 없었다. 고려인들은 강제이주란 아픔 속에서 언어를 잃게 됐다”며 “명절 등 여러 문화도 마찬가지다. 음력 기준으로 여러 명절을 지내는 한국과 달리 양력을 기준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인들은 음력 1월 1일인 설 대신 양력 1월 1일을 챙긴다. 또 양력 4월 5일인 ‘한식’을 가장 큰 명절로 지낸다. 한식을 '부모의 날(родительский день)'이라 부르며 온 가족이 모여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고려인이 문화가 조금 다르고, 한국어가 능숙치 못한 이유는 역사적인 아픔 속에 있다. ‘한국어도 잘 못하는 데 무슨 동포냐’란 생각보단 강제이주로 타지에서 버텨 온 우리의 아픔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려인들의 한식날 제사상 차림(사진제공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고려인들의 한식날 제사상 차림(사진제공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한국서도 이방인, 현실은 동포 아닌 외국인 취급

이 씨는 고려인들은 한국을 고국이라 생각해 찾았지만 정작 한국에선 동포가 아닌 외국인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 씨는 “한국 사회에서 고려인은 동포라기 보단 외국인에 가깝다. 비자만 봐도 그렇다. 고려인은 대부분 재외동포(F-4) 비자가 아닌 방문취업(H-2) 비자를 받는다. 방문취업(H-2) 비자는 단기비자로 3년에 한 번씩 본국과 한국을 오가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단기비자로 인해 정규직 취업이 어렵고, 건강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혜택도 받지 못한다. 현재 러시아가 국적을 가진 고려인과 중앙아시아 국적 중 대학을 졸업한 고려인에게만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한다”며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출·입국이 자유롭지 못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우린 이방인이었다. 고국이라 생각한 한국서도 우린 이방인”이라며 “우린 고려인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자긍심을 갖고 살아왔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왔다. 한국 정부가 조속히 비자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빅토르 인천함박마을고려인주민회 회장(40)
이 빅토르 인천함박마을고려인주민회 회장(40)

“고려인 공동체 키워 지역사회 도움되고파”

이 빅토르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고려인주민회는 지난해 4월 고려인 엄마들 모임단체인 인천엄마들, 함박마을 고려인상인회, 인천고려인청년모임, 고려인 할머니봉사단, 인천 고려인장애인부모모임 등 단체 5개가 모여 구성했다.

이 씨는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는 국내 최초 고려인이 주도해 만든 공동체 조직이다. 도움이 필요한 고려인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힘을 모아 해결하는 등 고려인의 권리를 회복키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봉사활동을 위해 봉사 위원회를 꾸렸다. 아직 함박마을 내 고려인을 대상으로만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지원 받은 물품을 각 가정에 전달하고,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돕고 있다”며 “아직 고려인을 대상으로만 활동을 하지만, 나아가 인천 지역 내 어려운 이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 고려인들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게 많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선 도움만 바랄 게 아니라 우리도 베풀고 도우며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 내 도움이 되는 고려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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