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등 “위암 초기 수술받았다면 사망 안했을 것”
국가인권위, ‘위암·수술 가능 여부 안 알린 것 인권침해’
천주교 인천교구 “의혹 사실 아냐, 유가족에 사과했다”

인천투데이=장호영 기자│한국 사회와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의 큰 숲으로 불리며 존경받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신부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로부터 사망 관련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다.

유가족들은 고(故) 김 신부가 병원 주치의로부터 위암 진단 사실과 수술 가능 여부를 듣지 못해 병이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고, 사망 후 6시간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 병원은 천주교 인천교구 산하 종합병원으로, 인천교구와 주치의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주교 인천교구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
천주교 인천교구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6월 김 신부 유가족들이 진정인을 통해 제기한 ‘의사의 진단명 미고지로 인한 노인 인권침해 등’ 진정을 조사한 결과, 위암 진단 사실과 수술 가능 여부를 김 신부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김 신부가 사망 전 입원 중이던 종합병원 원장에게 주치의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주치의가 김 신부의 위암 진단 사실과 수술 가능 여부에 대한 설명 등을 하지 않아 헌법10조와 21조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과 알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201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천주교 인천교구가 설립·운영하는 요양시설에 입소했다. 이후 인천교구 산하 종합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고 2020년 4월 25일 새벽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과 진정인은 김 신부나 유가족들이 연명 치료 거부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에 서명한 적이 없음에도 주치의가 환자 상태의 호전을 위해 기관 내 삽관을 통한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김 신부가 당시 4월 25일 0시 2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있으나 사망 선언 직전 6시간 동안 환자 처치 내용 기록이 없어 의료진이 사망을 방치했거나 사망시각을 허위로 작성한 것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김 신부의 임종을 염려하는 동료 신부와 수녀,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겠다는 요청에 ‘코로나 진단 음성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거부해 단 한 명도 임종 기도조차 하지 못하고 선종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 사망 선행사인은 위출혈이 동반된 위암이다. 유가족들과 진정인은 2019년 10월 위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는 전이가 안된 상태이고 초기라 복강경 수술 등을 통해 치료가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 신부에게 위암 진단 사실과 수술 가능 여부를 알리지 않았고, 유가족에게 위암 진단 사실은 알렸면서도 수술을 강력하게 말리고 다른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한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진료기록에 ‘보호자와 상의한 결과 수술을 거부한다’고 기재한 부분도 부당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고 김병상 신부 추모제.(사진 출처 천주교 인천교구)
지난해 11월 열린 고 김병상 신부 추모제.(사진 출처 천주교 인천교구)

유가족들과 진정인은 “이 과정에 주치의가 환자 수술 여부를 가족과 의논하는 대신 천주교 인천교구와 1주일 이상 의논하고, 인천교구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해 수술 기회를 막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위암 초기 복강경 수술을 했으면 위출혈로 사망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신부가 이미 4월 24일 오후 6시에 사망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됨에도 인천교구와 주치의가 장례 일정을 위해 25일 0시 2분으로 사망 선언을 하는 등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주치의는 인권위 조사에서 “김 신부가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했고 직접 들어, 사전 동의서를 받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을 때 기관지 삽관이나 심폐소생술을 하지않고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드린 것”이라며 “위암을 고지했을 경우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등으로 상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질병정보와 미수술 결정을 고지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다.

또한 “4월 24일 오후 4시께부터 특별한 의료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곧 사망하는 상황이었는데, 장례위원장인 신부가 ‘신부의 장례 일정은 3일장으로 해야하는데 24일 사망하면 장례 미사가 불가능한 일요일인 26일에 장례 미사를 해야돼 최대한 사망시간을 늦춰 줄 것’을 요청했다”며 “간곡한 요청에 인공호흡기와 승압제 사용을 지속하면서 심박동수가 0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 25일 0시 2분으로, 기록을 조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천주교 인천교구 관계자는 “장례 일정 때문에 주치의에게 사망시간을 늦춰주면 좋겠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은 맞지만, 유가족들의 주장처럼 사망 시간을 조작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천주교 신부 사망 시 교구가 모든 책임을 지고 판단했기에 유가족과 소통을 잘하지 못하고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등 일부 잘못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유가족 뿐 아니라 의료진 외에는 당일 아무도 면회가 불가능 했다. 다만, 유가족의 문제 제기로 주보를 통해 잘못한 부분은 사과를 했고, 관련 신부는 징계 처분도 했다”며 “인권위 결정대로 병원측에 주치의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게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신부는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7년 유신헌법 철폐 요구 기도회를 주도했다가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냈다.

인천에선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초석을 마련했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와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는 등 평생 민주화와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