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재능대 손장원 교수, ‘문화재가 된 인천 근대건축’ 집필
발품팔며 문화재 근대 건축물 25개 도면 모아 기록... 지자체 최초
“인천 근대 건축, 시민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인천은 140여 년 전 개항 이후 세계 각국 외국인들이 몰린 곳이다.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며 상점·은행·주택 등 다양한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고, 도시 경관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문화적 특성이 차곡히 쌓여 유산이 됐다.

하지만 인천의 근대건축물들은 도시개발을 이유로 점차 사라졌다. 인천 산업사의 대표적 유산인 애경사가 안전진단 등급이 낮다는 핑계로 사라졌다. 인천의 조선업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던 신일철공소도 같은 이유로 철거됐으며, 신흥동 관사마을 일부와 오쿠다정미소는 개발에 밀려 무너졌다.

근대건축물의 문화유산 가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인천에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는 아직 미흡한 게 현실이다. 이런 고민 가운데 인천시가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근대건축물 도면을 모아 한데 묶었다.

인천 근대건축유산 25개 도면까지 한데 묶어...국내 최초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교수가 집필하고 인천도시역사관이 발간한 학술총서 <문화재가 된 인천 근대건축>은 인천의 역사와 특성을 이해하는 데 건축물이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기획됐다. 건축유산 총 25개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관공서’는 인천부청사(현재의 인천 중구청)를 비롯해 인천우체국과 인천세관 창고·부속동을 다뤘다. 2부 ‘공공시설’은 대한민국 수준원점, 송현배수지제수변실, 홍예문 등 근대에 만들어진 도시 기반시설을 소개한다.

3부는 인천의 ‘종교시설’로 구성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답동성당과 전통 한옥을 바실리카 양식으로 구현한 강화성당 등을 살펴볼 수 있다. 4부는 ‘교육시설’이다. 창영초등학교와 영화초등학교 본관동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은행이나 사무소, 관람시설물도 수록했다.

5부 ‘사무소·영업장’ 편은 일본 제1은행 인천 지점을 포함한 각종 은행과 대화조 사무소, 공화춘 등이 나온다. 6부 ‘관람 집회장’에서는 제물포구락부와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의 도면 등이 등장한다.

“사라지는 인천 근대건축물 안타까워...사명감으로 시작”

<문화재가 된 인천 근대건축> 저자 손장원 교수를 지난 9일 만났다. 그는 “사라지는 근대건축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사명감으로 도면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이번 책 발간을 계기로 인천 근대건축 자료와 문서 등 각종 자료 보관을 위한 인천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 교수는 인천의 군·구청으로 발품을 팔며 도면 대부분을 모았다. 책에 수록되진 않았지만, 일부 건물들은 도면이 없어 실제로 측량하기도 했다. 추후 보존을 위한 보수공사를 염두에 둬서라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정면·측면·평면 모두 포함했다.

일본우선주식회사로 사용되었던 인천아트플랫폼.
일본우선주식회사로 사용되었던 인천아트플랫폼.

손 교수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1885년 착공해 1888년 9월 완공됐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이 1894년에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본우선주식회사는 인천항 개항 이후 1885년 조선에서 해운업을 장악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인천 해운업을 독점했다고 보면 된다. 건물은 1층 규모에 벽돌로 지어졌으며, 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에 있다.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됐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이다.

인천 최초 학교는 창영초교...이색 한옥 교회 ‘눈길’

창영초등학교에 있는 3.1운동 기념비(사진 창영초교 홈페이지)
창영초등학교에 있는 3.1운동 기념비(사진 창영초교 홈페이지)

인천 3·1운동 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 건물도 포함됐다. 손 교수는 “현재 창영초교는 1907년 5월 6일을 개교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1896년으로 봐야한다”며 “강화군공립소학교(1896년)와 부평공립소학교(1899년)를 인천 학교 설립의 효시로 본다. 창영초교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영초교 전신인 인천공립보통학교는 1896년에 세워졌다. 이후 1906년 공포된 ‘보통학교령’에 따라 창영초교로 다시 개교했다는 설명이다. 1986년 한성사범학교 1회 졸업생 변영대 교사가 고종의 교지를 받아 첫 교원으로 발령받았다는 내용이 승정원일기에도 나온다. 당시 유일한 조선인만을 위한 학교였다.

100년 넘은 종교시설들도 많다.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들이 많이 눈에 띈다. 기독교가 국내 유입되던 초창기에는 서양 건축양식보다 한옥 교회가 더 많기도 했다.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강화읍에 있는 대한성공회 성당, 볼음도에 있는 감리교 서도중앙교회 등이 대표적인 한옥 종교시설이다.

손 교수는 “과거 한옥양식 교회는 더욱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옥은 유교를 의미하기 때문에 점차 서양식으로 건축믈을 개축했을 것”이라며 “특히 한옥을 바실리카 양식으로 구현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옥성당 중 단연 으뜸”이라고 말했다.

한옥양식으로 지어진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
한옥양식으로 지어진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

신흥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천주교 인천 답동성당은 건축 양식으로도 그렇고, 역사적 가치를 따졌을 때 인천의 명동성당으로 불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된 곳이며, 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들렀던 곳이다.

1987년 6월 10일 오후 4시 답동성당과 부평역 인근에서 국민대회 참가를 촉구하는 가두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때 집회에 참여한 인하대 학생 1000여 명도 주안역 근처 시민회관을 거쳐 부평역까지 도보로 행진하기도 했다. 현재 답동성당에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비가 세워졌다.

“시민들이 종이모형으로 근대건축 만들어 봤으면”

손 교수는 “재개발 사업을 앞둔 인천 내항 1·8부두 내에도 근대건축물이 많았다. 그러나 개화기에는 딱히 관공서의 건축허가가 없이 건물이 지어지고 건축대장도 남아있지 않아 대부분 철거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표적인 게 일제강점기 해운업체 삼신기선 인천사무소 건물이다. 삼신기선은 강화도·영종도·황해도를 오가는 선박을 운영했으며, 본사는 강화도에 있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서울 마포나루까지 가는 배를 운항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삼신기선 고객들을 뺏으려 여객선 이용 시 당시 귀한 목욕수건을 제공했지만, 조선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현재 삼신기선 인천사무소뿐 아니라 강화 본사 건물도 사라졌다.

인천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인천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손 교수는 “한국 건축계에 큰 획을 그은 김중업(1922~1988) 건축가가 1957년 삼신기선 인천사무소 자리에 지어진 인천해무청사(검역소)를 설계했다. 주로 곡선이 많은 습작식으로 지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건축물과 비슷한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199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손 교수는 “이번 총서 발간을 계기로 도면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 한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도면을 색칠하거나 도면을 활용한 종이모형물을 만들어 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인천 근대건축 도면을 한데 모아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현재까지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절 건축물들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있지만, 나중에는 1960년대부터 지어진 아케이드 상가 건물들도 우물이 될 수 있다. 미리 대비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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